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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뉴먼이 즐긴 술은…" 브로드웨이 명물 바텐더, 이젠 못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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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테일러(왼쪽)와 리처드 버튼(오른쪽)에게서 받은 반지를 보이며 웃고 있다. 둘 모두 뉴욕의 한 바텐더를 유독 좋아했는데, 사르디스라는 곳의 바텐더 조(Joe)가 그 주인공. [중앙포토]

엘리자베스 테일러(왼쪽)와 리처드 버튼(오른쪽)에게서 받은 반지를 보이며 웃고 있다. 둘 모두 뉴욕의 한 바텐더를 유독 좋아했는데, 사르디스라는 곳의 바텐더 조(Joe)가 그 주인공. [중앙포토]

배우 폴 뉴먼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하이네켄을 준비했다. 리처드 버튼이 그 앞에 앉으면 마티니를 만들 채비를 했다. 미국 브로드웨이 극장가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 사르디스(Sardi's)의 바텐더, 요시프 페트르소리치(78) 얘기다. 크로아티아 이민자인 그는 이름인 요시프(Josip)에서 따온 영어식 별명, 조(Joe)로 유명하다. 스물셋에 일을 시작해 55년을 꼬박 배우와 연출가는 물론 관광객들을 위해 칵테일을 만들었다. 그의 은퇴 소식은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주말판에서 크게 다뤘을 정도로 브로드웨이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한 시대의 종언이었다. NYT와 정치 성향은 정반대인 폭스뉴스도 6일 "바텐더 조의 (칵테일 무제한) 해피 아워의 아쉬운 끝"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가 바텐더 조의 은퇴 소식을 전한 기사 일부. 빨간 재킷은 그가 55년 입은 유니폼이다. [the New York Times]

뉴욕타임스(NYT)가 바텐더 조의 은퇴 소식을 전한 기사 일부. 빨간 재킷은 그가 55년 입은 유니폼이다. [the New York Times]

사르디스는 브로드웨이의 오랜 명물이다. 1921년 문을 연 뒤, 극장가와 함께 성장했는데, 무대 연습 전후에 한 잔 걸치러 오는 극작가며 배우와 감독의 발걸음이 잦았다. 사르디스에서 일하던 스태프가 이들의 모습을 캐리커처로 그려 벽에 장식하면서 레스토랑은 더 유명해졌다. 조는 크로아티아에서 혈혈단신으로 이민을 온 직후, 영어를 할 필요가 없는 일을 찾다가 사르디스에서 바텐더 조수로 취직했다.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었더라도 그의 쾌활하고 부지런한 성정은 낭중지추였으니, 곧 사장의 눈에 들어 바텐더가 됐다. 사르디스의 바텐더와 웨이터는 새빨간 재킷을 유니폼으로 입는데, 조는 이 옷을 반세기 넘게 입은 셈이 됐다.

영어에 자신이 없던 대신, 그는 부지런함을 무기로 삼았다. 단골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기억해뒀다가 그들이 자리에 앉으면 바로 준비해 감동을 줬다. 그는 NYT에 "폴 뉴먼은 조용한 신사였는데 항상 부인과 함께 와선 하이네켄 맥주를 마셨고, 리처드 버튼은 묵묵히 앉아 마티니를 석 잔, 많을 땐 다섯 잔을 쭉 들이켰다"고 말했다.

폴 뉴먼. 하이네켄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중앙포토]

폴 뉴먼. 하이네켄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중앙포토]

버튼과 한때 결혼했던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바텐더 조를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테일러에 대해 그는 "인간적인 사람이었다"며 "생판 모르는 남자가 술에 취해 구토하며 쓰러졌는데 테일러가 사람들을 불러 도와준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유명한 손님만 찾아온 건 아니다. 그는 NYT에 "손님들이 유명하건 아니 건, 내겐 다 같은 사람"이라며 "유명하다고 신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바텐더 조의 은퇴를 다룬 CBS 뉴스 캡처. [CBS New York]

바텐더 조의 은퇴를 다룬 CBS 뉴스 캡처. [CBS New York]

그의 칵테일 솜씨와 언변은 사르디스의 자랑이 됐다. 팬데믹 시절과 레스토랑이 잠시 경영난을 겪었던 때를 제외하고 바텐더 조는 거의 매일 나와서 수백 명의 칵테일을 만들고, 손님과 대화하고 사진을 찍는다. 배우 매튜 브로더릭은 NYT에 "언제 한 번은 조 혼자 바에서 일하고 있는데 60명의 손님이 연극 후 들이닥쳤다"며 "효율적으로 주문을 받고 칵테일을 만들어내는 막힘없는 모습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고 말했다. 그 자신이 좋아하는 술은 뭘까. 그는 NYT에 "나는 술을 잘 못 한다"며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 한 잔이면 족하다"며 웃었다.

그의 은퇴는 많은 이들에겐 아쉬운 소식이다. 그 자신에게도 그렇다. 그는 NYT에 "은퇴를 앞두니 감사한 마음, 슬픈 마음이 교차한다"며 "이곳에서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다시 태어나도 바로 이곳으로 일하러 오고 싶다. 이 직장은 나를 위한 곳이고, 나는 이곳을 위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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