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중 갈등 심해지면 한반도 전쟁…한·일 나서야" 日노학자 제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지난 1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강연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지난 1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강연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끝나지 않은 전쟁, 6ㆍ25의 정전(停戰) 협정 70주년이었던 지난달 27일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의 『한국전쟁 전사』번역본이 나왔다.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6ㆍ25 발발의 원인과 과정을 집대성한 노작이다. 특정 이데올로기의 프레임에 묶이지 않고 미국과 러시아 및 북한의 자료까지 파고들어 쉽게 풀어냈다. 올해 만 85세로 평생을 한반도를 둘러싼 현대사에 천착해온 그의 연구가 맺은 열매다.

6ㆍ25는 한국에선 한국전쟁, 북한에선 '조국해방전쟁', 일본에선 조선전쟁, 영어권 일각에선 잊혀진 전쟁으로 불린다. 그만큼 특정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바라보면 곡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와다 명예교수의 이번 저작은 그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했다는 점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와다 명예교수 본인은 진보 성향이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 "한반도 통일에 큰 열정을 가졌던 인물"이라고 평가한 부분 등이 그러하다.

그는 한ㆍ일 관계 등에서 일본 내 소신 발언을 다수 해왔으며, 한국에선 '일본의 양심'으로도 불린다. 번역본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그를 지난 1일 동북아역사재단 학술회의에서 만났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정전 협정 70주년이지만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였다. 이어 "전쟁의 지속으로 인한 특수한 적대 상태로 인해 십자가를 짊어지는 사람들은 결국 남북의 사람들"이라며 "이웃 국가들은 (전쟁의 종식을) 도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와다 교수는 또 남과 북의 대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현시점에서의 남북 대화가 어려운 점은 누구보다도 그가 더 잘 안다. 그럼에도 그는 "남과 북이 전쟁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고 반성하는 것은 어렵지만 5년, 10년을 끈기있게 계속하면 변화는 틀림없이 온다"고 말했다.
와다 명예교수 본인이 겪은 일화도 소개했다. 그가 과거 썼던 만주 항일 운동에 대해 썼던 책이 김일성 등에 대한 언급으로 인해 북한에 의해 금서로 지정됐으나, 북한 내 학자들의 토론 등을 거쳐 금지령이 풀렸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와다 명예교수는 "내 책이 금지됐다고 알려줬던 인물은 (북한 주체사상을 만든) 황장엽 선생"이라며 "(한국으로 망명하기 전) 일본에서 나를 만나 '당분간 책은 서랍에 넣어두라'고 하더라"고 회고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대화가 어렵긴 하지만 중요한 건 믿는 마음"이라며 "현재 남북 대화가 어렵다면 일본 등을 참여시키거나, (비교적 갈등 소지가 적은) 고대사 연구부터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그러나 호응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제로에 가깝다. 와다 명예교수 역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 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북한이 어디에서 자금을 융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상황"이라며 "북한과 미국의 지도자들의 오판으로 인해 또 다른 전쟁이 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이 또한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점쳤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지난 1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3시간 가까이 유머를 섞어가며 강연을 이어갔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와다 하루키 교수는 지난 1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3시간 가까이 유머를 섞어가며 강연을 이어갔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그는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한반도에서 벌인다면 미국과 중국은 살아남겠지만 남북 뿐 아니라 일본의 모든 사람들은 끝장이다"라며 "꼭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한ㆍ미ㆍ일 공조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의 삼각 공조를 잘 구축하고, 그 안에서 미국이 중국에 과도한 적대시 정책을 펴지 않도록 설득하며 안정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며 "미국과 중국 나아가 러시아의 대립의 최전선에 서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이라고 강조했다.

한ㆍ일 관계 관련해서 그는 "일본에 대해선 추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頭をなでる)'는 일본어 표현과 같은 행동도 필요하다"며 "추궁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은 변하기 어렵고, 다른 접근방법도 시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