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영어권 서점에서 뜨겁게 주목 받는 신간엔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얼굴이 선명하다. 신간 『더 시스터(The Sister)』 얘기다. 외교ㆍ안보 엘리트의 산실, 미국 터프츠대 플레처 스쿨의 이성윤 교수가 쓴 영문 원서로, 제목이 말해주듯 김여정 부부장을 대해부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은 이른바 '백두혈통'으로 북한 권력지도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 급의 권력을 누려왔다. 그런 김여정에게만 집중해 300쪽이 넘는 책을 글로벌 독자를 위해 펴낸 건 이성윤 교수가 최초다.
이 교수가 가장 편안하게 구사하는 언어인 영어로 쓴 이 책은 지난달 출간 후 미국 뉴욕타임스(NYT)부터 영국 이코노미스트까지 주목하고 있다. 북ㆍ미 정상회담 대표단의 얼굴이었던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역시 "김여정에 대해 이 책을 통해 많이 배웠다"고 호평해왔다고 한다. 그를 이메일 인터뷰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 김여정 부부장에 초점을 뒀다는 착안점이 흥미롭다.
- "김여정은 북한이라는 남성 중심의 폭력적인 정치지형에서 권력을 잡은 첫 여성이다. 젊고 스마트하며 가혹한 김여정은 전 세계적으로도 핵을 통해 권력을 쥔 첫 여성 폭군(despotess)이다. 그는 여성이면서 젊다는 특징 때문에 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김여정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극단적으로 비난할 때도, 사람들은 젊고 날씬하며 아름다운 여성이 하는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안에 내재된 젠더 차별적 성향이 김여정에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 김여정 부부장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는.
- "2018년 겨울올림픽 개막식 당시 그가 방한하면서다. 김여정은 전근대적 절대군주 체제의 범죄자 폭군이었던 이미지에서 탈피해 평양에서 온 매력적인 공주로 변신에 성공했다. 김여정이 갖고 있는 이 상반된 이미지는 현대 정치 인물 중에서도 흥미로운 연구주제다. 언젠가 김여정은 또 한국과 미국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의 친오빠보다 그가 더 부드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진무구한 오판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그가 속한 절대 왕정의 외교 수단 중 가장 강력한 병기이기 때문이다."
- 김여정 부부장이 책을 읽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 "농담이지만, 아마도 좋아하지 않을까? 내가 자신을 가장 위험하고도 야심찬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여정과 이(리)설주의 관계도 끊임없는 화두인데.
- "김정은과 혼인 관계라는 점에서 이설주 역시 파워가 막강하다는 점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그는 '백두혈통'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2019년 김정은과 김여정이 (백두혈통의 상징인) 백마를 타고 나타났을 때, 백마엔 북한이라는 디스토피아의 상징인 별 다섯 개가 뚜렷이 박혀 있었지만, 이설주의 말엔 별이 없었다. 이설주가 김여정에 대해 질투를 느낄 수는 있겠으나, 그들은 리그 자체가 다르다."
- 김여정 부부장이 오빠를 밀어내고 최고 권좌에 앉으리라는 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데.
- "추측일뿐이긴 하지만, 불합리한 억측만은 아니라고 본다. 절대왕정에서 암투와 살인은 항상 있어왔다. 북한의 역사 또한 친인척 암살을 포함한 살인으로 점철돼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딸이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있다. 김주애는 결혼을 해도 본인의 성스러운 성인 '김'을 포기할 일이 없을 것이다. 백두혈통이라는 점도 바뀌지 않는다."
- 대북 정책에서 유의할 점은.
- "2018년에 특히 그랬지만, 위협적인 이웃(북한)과 잘 지내보고자 하는 한국의 특정 세력 사이에선 '북한이 이번은 다를 거야'라고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천안함 폭침이나 핵 및 미사일 도발 등에도 불구하고 한국엔 북한의 지도자들을 믿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를 '서울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한국에 반복적으로 최면을 걸어왔다."
- 미국 외교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우선순위가 점점 밀리고 있는 게 현실인데.
- "우크라이나 전쟁부터 중국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북한이 우선순위에서 내려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는 북한에 유리할 따름이다. 북한은 결국 평화협정을 요구할 것이며, 그 협상의 전면에 내세우는 인물은 김여정일 것이다."
- 북한 관련 또 다른 계획은.
- "다음 프로젝트는 '평양 플레이북'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북한의 지도자들이 역사적으로 덩샤오핑(鄧小平), 마오쩌둥(毛澤東)이나 니키타 흐루시초프, 도널드 트럼프 등 다른 지도자들과 어떤 개인적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분석하는 내용이다. 평양을 보다 적극적인 주체로 그리면서 북한이 세계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들여다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