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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해킹한 中, 이때 美가 찾은 '미스터 외교관'…한국과도 인연

중앙일보

입력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 지난 5월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는 모습이다. 뉴스1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 지난 5월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는 모습이다. 뉴스1

중국이 일본의 안보 기밀을 해킹했음을 미국이 확인했다는 워싱턴포스트(WP)의 7일(현지시간) 보도엔 중요한 이름이 하나 등장한다.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지난 5월 방한 직전 서울에 와서 정상회담 의제를 막판까지 조율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WP가 전한 사건은 2020~2021년 인민해방군(PLA) 소속 해커들이 일본의 군사 역량 및 작전 계획 등 핵심 정보를 목표로 정보망에 수차례 침투한 사건이다. WP는 "일본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해킹 중 하나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양한 경로로 중국의 해킹 사실을 포착한 미국이 조용히 연락을 취한 일본 측 핵심 인물이 아키바 다케오 국장이다. 당시 직책은 외무성 사무차관(한국의 외교부 차관 격)이었다. 2021년 말, 그는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으로 영전했다. 총리 직속으로 국방 및 안보 관련 사항을 다루는 최고위 조직으로, 사무국장은 한국으로 따지면 대통령실 안보실장과 같은 위상을 갖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제공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제공 대통령실

WP에 따르면 아키바를 파트너로 지명한 미국 측 핵심 인사는 앤 노이버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다. 제아무리 미ㆍ일 동맹이 확고하다고 해도, 미국은 중국의 일본 해킹 정황을 어떻게 포착했는지는 기밀이기에 알려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 정부에 기밀 정보망을 공유해 함께 해킹 상황을 해결하자고 설득해야 했다. 노이버거 보좌관이 팬데믹 셧다운이 한창이었던 2021년 11월 도쿄를 조용히 방문한 까닭이다. WP는 "아키바는 일본 특유의 견고한 관료주의의 핵심 인물"이라며 "아키바와 노이버거는 당시 아베 정부의 국방력 증강 기조에 따라 힘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아키바가 미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현명하게 해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키바는 뼛속까지 외교관이다. 일본경제신문(日経ㆍ닛케이)은 "아키바 국장은 외무성 안팎 모두에서 '미스터 디플로맷(Mr. Diplomat)'으로 통한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 축구선수를 꿈꾼 적도 있으나, 명망 있는 외교관을 다수 배출한 명문 에이코 가쿠엔(栄光学園) 고교를 졸업하며 진로를 외교로 정했다. 1958년생인 그가 외무성에 입성한 것은 1982년, 만 24세 때였다. 이후 외무성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한국으로 치면 외교부 1차관인 외무성 사무차관까지 올라갔다. 정무직인 외무상, 즉 장관이 아닌 직위로는 가장 높은 자리인 사무차관을 아키바는 2018년 1월부터 3년 넘게 지켰다. 닛케이에 따르면 "최장수 사무차관"이다.

지난 6월 일본 도쿄에서 한자리에 모인 한미일 국가안보실장. 오른쪽부터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오른쪽)이,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뉴스1

지난 6월 일본 도쿄에서 한자리에 모인 한미일 국가안보실장. 오른쪽부터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오른쪽)이,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뉴스1

한반도 이슈에서도 역할을 했다. 대표적 사례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의 방북 당시였다. 당시 북ㆍ일 정상회담 이후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 선언'을 채택했는데, 닛케이에 따르면 이 선언문의 원안을 작성한 인물이 아키바였다. 닛케이는 아키바가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 임명 당시 기사에서 "아키바는 어려운 상황에서 실마리를 찾는 '아이스 브레이커'"라며 "북ㆍ일 정상회담은 아키바 본인이 자원해서 간 것"이라고 전했다.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왼쪽)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 뒤로 아베 신조 총리와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현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 등의 모습이 보인다. [중앙포토]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왼쪽)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 뒤로 아베 신조 총리와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현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 등의 모습이 보인다. [중앙포토]

아키바는 아베에 이어 기시다 정권에서도 총리의 핵심 오른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ㆍ일 관계 복원의 시동을 걸었던 지난 5월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시다 총리가 먼저 보낸 인물도 아키바 국장이었다. 아키바 국장은 5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을 용산 대통령실에서 만난 자리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한ㆍ일 협력의 확대를 희망하며, 기시다 총리의 방한이 성공리에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아키바 국장은  "최근 수단에서 한국 정부가 교민 구출 작전을 펼치면서 일본 국민도 함께 이송해줘서 감사하다"거나 "윤 대통령의 국빈 미국 방문의 성공을 축하한다"고도 전했다. 양국 관계 당면 현안은 아니지만 한국 국민의 마음을 사기 위한 다양한 코멘트를 준비한 것이다. 한ㆍ일관계에 있어서도 그 특유의 아이스브레이킹 외교 기술을 선보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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