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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새장에 갇힌 ‘56789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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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상하이에서 IT 관련 회사를 운영하는 중국인 친구가 왔다. 코로나19로 못 만난 지 4년여 만이다. “요즘 비즈니스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100명 넘던 직원을 40명으로 줄였다”고 답했다.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단다. 친구는 “국유기업 쪽만 잘 나가…”라고 덧붙였다. 그의 표정에서 중국 민영기업의 현실을 읽게 된다.

수치가 보여준다. 상반기 중국 국유기업의 고정자산 투자는 8.1% 증가했다. 그런데 민영기업은 오히려 0.2% 줄었다. 민영기업이 새로운 일을 꾸미지 않는다는 얘기다. 중국에 ‘56789 경제’라는 말이 있다. 민영기업이 전체 세수의 50%, GDP의 60%, 혁신 기술의 70%, 도시 고용의 80%, 기업 수의 90% 이상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위축됐는데 경제가 잘 풀릴 리 없다.

‘창업도 당과 함께!’ 광둥성 선전(深圳)의 한 창업센터 로비에 설치된 구조물. [중앙포토]

‘창업도 당과 함께!’ 광둥성 선전(深圳)의 한 창업센터 로비에 설치된 구조물. [중앙포토]

‘새장 경제(鳥籠經濟)’라는 말도 있다. 새를 새장에 가둬 키우듯, 민영기업은 국가가 설정한 테두리 안에서만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기업관이다. 개혁개방은 새장을 넓히는 과정이었다. 덕택에 민영기업은 더 자유롭게 활동했고, ‘56789’를 실현했다.

시진핑(習近平) 시대에는 달랐다. 새장은 오히려 촘촘하고, 좁아졌다. 2017년 이후 중국은 회사 내 당 조직을 빠짐없이 건설하도록 민영기업을 압박했다. 종업원들은 CEO(최고경영자)의 지시도 따라야 하고, 당 지부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2중 명령체계다. 그런가 하면 국가는 소액 지분을 사들여 이사회에 참석하고, 경영에 간섭한다. IT 기업에서 특히 심했다.

“중국 금융에는 아예 시스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2020년 11월 말 알리바바 총수 마윈(馬云)은 중국 금융의 취약성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이는 새가 새장을 찢고 날아가려는 몸짓으로 해석됐다. 후과는 가혹했다. 세계 최대 규모로 진행되던 마윈의 앤트그룹 상장은 무산됐다. 알리바바·텐센트 등 빅 테크 기업 규제가 표면화한 것도 그때부터다. IT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일자리는 사라졌고, 청년실업률은 높아졌다.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과 민영기업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등의 민간 부양책을 최근 발표했다. 새장을 넓혀주겠다는 거다. 상하이 친구는 “회복되더라도 이전의 활기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3~4년 이어진 규제로 IT 생태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혁신을 해도 결국 새장일 뿐”이라는 체제의 한계를 실감한 중국의 청년 기업가는 여전히 날개를 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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