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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또 터진 ‘묻지마 흉기 난동’에 시민들 떤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51호 30면

지난달 신림동 무차별 살상 13일 뒤

이번엔 분당 칼부림 사건 14명 부상

‘다중 대상 범죄’ 획기적 대책 내놔야

도심에서 행인을 흉기로 공격하는 범죄가 잇따라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그제 오후 6시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지하철 서현역 부근 AK플라자에서 최모(22)씨가 백화점 1, 2층을 다니며 9명을 흉기로 찔렀다. 이에 앞서 최씨는 승용차를 인도로 몰아 5명을 치었다. 최씨에게 습격당한 14명 중 12명이 중상을 입었고 두 명은 위중하다. 지난달 21일엔 서울 관악구 지하철 신림역 인근 상가에서 조선(33)씨가 행인들을 흉기로 공격해 20대 남성 한 명이 숨지고 세 명이 다쳤다. 불과 13일 간격으로 벌어진 ‘묻지 마 범죄’로 무고한 시민 18명이 죽거나 다쳤다.

어제 오전 10시 40분쯤엔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흉기 2개를 들고 다니던 남성이 시민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인터넷에는 서울 강남역과 잠실역·한티역을 비롯해 성남 오리역·서현역, 부산 서면역 등을 살인 장소로 예고한 글이 15건 넘게 올라왔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도 총력 대응에 나섰다. 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서현역 흉기 난동을 “무고한 시민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정부는 경찰력을 총동원해 초강경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강력·흉악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한 일상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흉기 난동 범죄에 대해 총기, 테이저건 등 정당한 경찰물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울과 경기 곳곳에 경찰 특공대와 기동대가 배치됐다.

그러나 이 정도로 시민들을 안심시킬지 의문이다. 지난달 신림동 살인 직후부터 모방범죄 우려가 제기됐다. 2018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때도 이를 본뜬 습격이 일어났고, 이번엔 “신림동에서 여성 20명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린 20대 남성이 구속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유사 범죄를 막지 못했다. 서현역에서 흉기를 휘두른 최씨는 경찰에서 “불상의 집단이 오래전부터 나를 청부살인 하려 했다”고 말하는 등 피해망상 증세를 보였다. ‘편집형 조현병(정신분열)’ 진단을 받았던 안인득이 2019년 경남 진주에서 이웃 5명을 살해한 사건을 연상시킨다.

일련의 범죄 추세를 볼 때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정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신설’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동서대 박외병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제 우리도 선진국형 ‘무동기 범죄’에 대비해 일본처럼 흉기 수색 권한을 강화하거나 미국처럼 범죄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신고 시스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장은 인파 밀집 장소에 경찰 배치를 늘리고 순찰을 강화하는 처방이 시급하다. 중앙대 이창무 보안대학원장은 “범죄는 동기와 기회가 일치할 때 발생하는데 사회적 동기를 단기간에 개선하긴 어려우니 기회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묻지마 범죄가 발생할 때 시민들의 대처 요령을 구체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범죄 공포가 확산하면서 시민들이 외국 자료까지 검색하는 실정이다. 최근 서울대 커뮤니티에는 테러 발생 시 대처 방안을 소개한 미국 정부 동영상이 올라와 관심을 모았다. 평소 길을 걸을 때 도망갈 루트를 생각하라든가(Run), 도망갈 길이 없으면 구조물을 찾아 몸을 숨기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하라는(Hide) 등의 요령을 담았다. 총기 테러가 많은 미국과 흉기 습격이 잇따르는 우리나라 현실에 차이가 있는 만큼 시민들이 숙지할 대처법을 널리 알려야 한다. 경찰 인력을 치안 대비 위주로 재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족의 안전한 귀가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가 돼가는 현실을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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