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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폭염에 ‘생존게임’ 된 망신살 잼버리 대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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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 내 병원에서 온열 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 내 병원에서 온열 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그늘도 없는 찜통 더위에 온열 환자 속출

행사 준비도 부실, 안전 대책 신속 보완을

전북 부안의 새만금 매립지에서 진행 중인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서 온열 질환 등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한낮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도 대규모 야외 행사를 강행한 데다 주최 측의 운영 미숙까지 겹친 탓이다. 그제 대회 개영식에선 100명이 넘는 온열 질환자가 발생했다. 대회 첫날인 지난 1일에도 한꺼번에 400여 명의 온열 질환자가 쏟아졌다. 참가자가 대부분 10대 청소년이란 점을 고려하면 여간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참가자들 사이에선 “축제가 아니라 생존게임”이란 말까지 나온다. 조직위는 “어느 나라 잼버리에서든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명했지만 안이한 판단이다.

사실 폭염에 대한 경고는 대회 시작 전부터 있었다. 대회 기간인 8월 초순은 통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더운 시기다. 바다를 메워 조성한 새만금 야영장은 애초부터 숲이나 나무 같은 자연 그늘이 거의 없는 곳이다. 한낮 땡볕을 피하기 어려운 야외에서 행사를 진행하면서도 냉방장치나 샤워실 등은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지난달 쏟아진 장맛비로 곳곳에 물구덩이까지 남아 있어 야영장은 흡사 한증막을 방불케 한다는 참가자들의 경험담도 올라왔다.

사전에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상황에도 조직위의 행사 준비는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숫자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청소나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한다. 천으로만 살짝 가려놓은 일부 시설은 옆에서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더운 날씨에 먹을 것과 마실 것까지 부족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조직위에서 식자재를 받아 끼니를 해결하는데, 일부 구운 달걀에서 곰팡이가 피었다고 언론에 제보한 참가자도 있었다.

부실한 행사 운영이 자칫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자국 청소년 안전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국가에선 이번 일을 심각하게 볼 수 있다. 이미 영국은 행사 기간 폭염과 폭우 등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서한을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영국은 이번 대회에 해외 참가국 중 가장 많은 4500여 명의 대원을 보냈다.

새만금 잼버리는 우수한 한국 문화와 자연환경을 세계에 알린다는 명목으로 유치한 국제 행사다. 세계 159개국에서 온 참가자는 4만3000여 명에 이른다. 국내에선 1991년 강원도 고성 잼버리에 이어 32년 만의 대회다. 그런데 부실한 운영으로 참가자들의 불만이 쏟아진다면 한국에 대한 홍보는커녕 불신만 초래할 게 우려스럽다. 한덕수 총리는 어제 대회 공동위원장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이번 대회가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며 참가자 안전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행사가 한국을 홍보하는 기회가 될지, 국제적 망신이 될지는 남은 기간이라도 정부와 조직위가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