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펠로시 방문이 불문율 깼다"…中, 대만과 휴전선 맘대로 침입

중앙일보

입력

“대만 주변이 온통 중국의 군사훈련장이 돼버렸다.”

지난해 8월 2일 밤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전격 방문한 이후 1년 새 달라진 안보 현실을 두고 대만 현지에서 이런 탄식이 나오고 있다. 1979년 미국과 대만이 단교한 이후 처음으로 미 최고위급 인사인 하원의장(국가서열 3위)의 방문을 기점으로 중국의 군사적인 공세가 매우 거칠어졌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소속 로켓군 부대가 지난 4월 8일 대만 섬 주변을 봉쇄하는 대규모 연합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소속 로켓군 부대가 지난 4월 8일 대만 섬 주변을 봉쇄하는 대규모 연합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펠로시 방문 이틀 뒤 대만 상공을 통과하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사상 초유의 무력시위를 감행했던 중국은 이후 수시로 육ㆍ해ㆍ공 전력을 투입한 대규모 연합훈련을 벌이며 세를 과시하고 있다. 중국 군용기들은 중국 본토와 대만 사이에서 사실상 휴전선 역할을 하는 ‘중간선’을 제집 드나들듯 넘나드는 상황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창건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에도 J-16 전투기와 KJ-500 조기경보기 등 중국 군용기 13대와 군함 6척이 대만 주변에서 포착됐는데, 이 중 군용기 6대가 중간선을 무단 침범했다.

중간선뿐만 아니다. 영공 침범을 방지하기 위해 두는 방공식별구역(ADIZ)은 완전히 무력화되다시피 했다. 지난달 중순엔 72시간 동안 전투기ㆍ폭격기ㆍ무인정찰기(드론) 등 중국 군용기 73대가 대만 ADIZ에 침입했다. 당시 대만 주변 해상에는 중국 군함 9척도 포진하고 있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전문가들 사이에선 “펠로시 전 의장 방문 이후 중간선과 같은 양안 사이 불문율이 와해되면서 군사적인 균형이 깨진 상태”라는 진단이 나온다. 한마디로 ‘준전시상태’라는 의미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지난 4월 미국에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케빈 매카시 신임 미 하원의장의 회동 직후엔 중국은 대만 해상을 봉쇄하는 대규모 훈련에 나섰다”며 “필요에 따라 봉쇄를 비롯한 다양한 군사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등 대만에 대한 군사 압박 수위가 더욱 세밀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동부 해역 공략 

대만을 겨냥한 중국의 군사 활동 범위도 크게 확대됐다. 과거 인민해방군은 대만 북쪽의 동중국해와 남서쪽의 남중국해 주변에서 훈련했으나, 최근 1년 사이엔 대만 동부 앞바다, 즉 서태평양 해역에서 항공모함 전단을 중심으로 한 훈련을 늘리고 있다.

지난 4월 9일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의 대만 포위 연합훈련에 참가한 중국의 항공모함 산둥함에서 J-15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4월 9일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의 대만 포위 연합훈련에 참가한 중국의 항공모함 산둥함에서 J-15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 군용기들이 대만의 최후방인 대만 동부 해역까지 빠르게 침투하려면 대만 상공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경우 대만의 촘촘한 방공망에 요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최근 수년 새 중국이 수십 대의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는 항모 2척을 전력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실제로 지난 4월 중국의 두 번째 항모인 산둥(山東)함이 대만 동부 해역에서 전투기 이ㆍ착함 훈련을 실시했다.

이와 관련,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와 달리 강력해진 해ㆍ공군력으로 대만을 완전히 봉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강조하는 움직임”이라며 “내년 취역이 예상되는 세 번째 항모 등 중국의 해상 전력 강화가 대만 주변의 군사적 긴장을 끌어올리는 동인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육·해·공 모두 무인기 투입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대만 동부 일대에서 중국 군용기의 활동이 지난 3월부터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 중 다수는 무인정찰기였다. 특히 인민해방군 공군 및 로켓군이 운용하는 TB-001, 해군의 BZK-005, 육군의 CH-4 등 각군 드론이 모두 대만 동부 해안선을 따라 비행했다.

이에 대해선 “대만을 담당하는 중국 동부전구가 대만 침공에 대비해 육ㆍ해ㆍ공 합동 공격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리허설을 하는 것”(디플로매틱)이란 분석이 나온다. 인민해방군은 ‘중국판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로 불리는 베이더우(北斗)-3 위성항법장치에 연동하는 각군의 데이터링크를 통합해 첨단 공격 능력을 확보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무인기로 관련 정보수집 및 시험 활동을 늘리고 있다는 얘기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양 위원은 “중국이 미군과 같은 첨단 전장 환경을 구사하기 위한 ‘네트워크중심전(NCW)’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만을 핵심 테스트베드로 삼고 있다”고 짚었다.

중국이 무인기 투입을 늘리는 또 다른 이유로는 무인기가 유인기보다 확전 가능성 등의 '위험 부담'이 낮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중국이 다수의 무인기로 상시로 군사감시태세를 높여 해당 지역에 대한 군사적인 개입이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회색지대 전략’을 펴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또 중국이 무인기로 확보한 대만 동부 해안의 동영상을 공개하는 방식 등으로 대만 국민 사이에 불안감을 조성하는 일종의 심리전을 노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잠수함 8척 건조, 미국서 훈련 

지난 1년간 중국의 공세가 계속되면서 대만도 대비태세를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의 상륙작전에 대비한 방어훈련은 물론, 미국산 첨단 무기 도입 등 전력 강화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중국의 해군력 강화에 대응해 비대칭 전력인 잠수함 8척 건조에 3000억 대만달러(약 12조2640억원) 규모의 특별예산까지 편성했다.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압박으로 잠수함 수출 및 기술이전에 난색을 보이자 대만은 자국산 잠수함(2500~3000t급)을 건조 중이다. 초도함은 내년 5월께 진수할 예정이다. 기존의 구형 잠수함을 포함해 최종 12척의 잠수함 함대를 마련한다는 게 대만 측의 구상이다.

지난 2020년 11월 24일 대만 남부 가오슝의 조선소에서 자국산 잠수함 건조를 시작하는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20년 11월 24일 대만 남부 가오슝의 조선소에서 자국산 잠수함 건조를 시작하는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군과 군사협력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대만군은 지난 6월 제333기동여단을 미국으로 파견해 미시간주(州) 주방위군 훈련에 참가했다. 미국과 단교 이후 대만군이 미 본토에서 훈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어 대중국 격퇴 훈련인 ‘한광 39호’ 훈련(지난달 24~28일 실시)을 마친 제542기갑여단도 하와이의 미군 훈련시설에 조만간 파견될 예정이다. 대만에 주둔 중인 미군 수도 기존의 3배인 100명 수준으로 단교 이래 가장 많다.

대만군이 중국의 침공을 상정하고 지난달 24~28일 '한광 39호' 훈련을 실시한 가운데 중국의 상륙작전을 저지하기 위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만군이 중국의 침공을 상정하고 지난달 24~28일 '한광 39호' 훈련을 실시한 가운데 중국의 상륙작전을 저지하기 위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일각에선 중국의 침공을 상정한 미국과 대만의 군사협력이 역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역할을 변화시킬 변수로 지목한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이 일관되게 서태평양에서의 패권 확장 시도를 하고 있어 역내 미군의 역할도 이에 맞춰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 등 한반도 상황이 불안정한 만큼 주한미군이 직접 대만 군사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전문가들은 주한미군 보다는 일본에 주둔 중인 제3해병원정군(오키나와)과 제7함대(요코스카)가 유사시를 대비한 훈련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