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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대만해협 위기 고조, 한반도에 튈 불똥 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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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철재 외교안보부장

이철재 외교안보부장

마부대(馬夫大)가 이끄는 청나라 선봉 기마대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넌 건 1637년 1월 3일 일이었다. 청군은 조선군이 지키는 산성을 내버려 두고 남쪽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닷새 만에 수도인 한양에 닿았다. 17세기판 ‘전격전’이었다.

청의 침공 보고에 강화도로 피난을 떠나려 했던 인조는 청군에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농성했지만, 2월 24일 결국 항복했다. 근왕군이 청군에게 모두 패했고, 식량도 떨어진 데다, 봉림대군 등 왕실이 피신한 강화도가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항전 의지를 잃었다.

중국, 대규모 군사훈련 끝마쳐
“싸울 태세 됐다” 대내외 선언

바이든 “전쟁 나면 개입” 맞불
주한미군 투입 사실상 불가피

중국은 북한의 도발 부추길듯
병자호란의 교훈 잊지 말아야

중원 정복에 앞서 한반도 공격

지난 7일 중국군 동부전구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가 ‘대만 포위’ 훈련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7일 중국군 동부전구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가 ‘대만 포위’ 훈련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인조는 청 태조를 삼전도에서 만나 3번 무릎을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렸다. 신하가 황제에게 예를 올리는 의식이었다. 그리고 청의 의복으로 갈아입은 뒤 청군을 위한 잔치를 열었다.

청 태조는 조선 포로 1만 명과 함께 철수했다. 이때 끌려간 이들은 인조를 보곤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라고 울부짖었다고 『인조실록』은 전했다. 역사에 기록된 병자호란의 전말이다.

당시 청이 조선에 쳐들어간 이유로 여럿이 꼽히지만, 명나라를 본격적으로 정복하기에 앞서 배후인 조선을 안전지대로 확보하려는 청의 전략적 의도가 가장 컸다. 그리고 병자호란 7년 후 명은 멸망했다.

중국 역사에선 전면전을 치르기에 앞서 사전정지 작업으로 한반도 국가와 전쟁을 벌인 사례는 병자호란뿐만이 아니었다. 한무제는 흉노 정벌 과정에서 고조선을 쳤다. 원나라는 고려를 먼저 복속시킨 뒤 남송을 정리했다.

옛일을 꺼낸 이유는 최근 대만 해협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든 묘한 기시감 때문이다. 대만의 위기는 한반도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중국은 이달 초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미국에서 회담을 열자 보복 차원에서 지난 8~10일 ‘대만 포위’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이 타이베이(臺北)를 방문했을 때도 중국은 일주일 동안 대만 주변에서 탄도미사일까지 동원해 최대 규모의 무력시위를 실시했다.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 전광판에서 항모 산동함이 대만 주변 초계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관영 뉴스가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 전광판에서 항모 산동함이 대만 주변 초계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관영 뉴스가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이 16~18일 대만 주변에 비행금지구역(NFZ)을 설정한다고 발표하면서 긴장감은 일촉즉발 상태까지 다다랐다. 그러다 중국이 NFZ 설정 시간을 16일 하루 27분으로 줄이겠다고 번복하면서 위기는 진정됐다.

중국이 당장 대만을 상대로 통일전쟁을 감행하려 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개전 예상 시점을 미래로 둔다면 가능성이 커진다는 게 문제다. 11일 사흘간의 대규모 훈련을 마친 중국이 “싸울 태세가 다 됐다”고 선언한 게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앞으로 대만 해협에서 양측이 붙는다면 미국은 분명히 대만을 도울 것이고 일본도 가세할 것이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에 전쟁이 나면 개입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세 번이나 “그렇다”고 답했다. 바이든의 기조에 대해 미국의 여야 간 차이가 없다. 미국이 대만에서의 전쟁에 개입한다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중립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전망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각계 전문가를 모아 대만 전쟁의 워게임을 벌였다. CSIS는 미국이 주한미군 4개 전투비행대대 중 2개 대대를 대만으로 보낸다고 설정했다. 지난달 미 의회 청문회에선 주한미군이 중국·대만 전쟁에 동원되는 것을 한국 정부가 허용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문의가 나왔다.

미국으로선 중국·대만 전쟁에 주한미군의 투입이 사실상 불가피하다. 중국과 가깝고 대만과 멀지 않은 한반도엔 지상군 중심으로 2만85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지상군의 핵심인 미 육군 2사단은 수송기로 긴급 공수가 용이한 스트라이커 장갑차 위주로 꾸려졌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선 양국의 협의 사안이라는 입장이지만, 미국 내부에선 미국의 독자적 권한이라고 보는 목소리가 들린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이 주한미군의 대만 투입을 전략적 상수로 여길 경우다. 중국의 전략가라면 대만과 전쟁에서 주한미군 상수를 상쇄할 카드를 고심할 것이다. 한·원·청과 같이 한반도에 직접 쳐들어가지는 못하겠지만, 중국은 대신 북한에 전쟁을 부추길 소지가 다분하다. 중국이 북한에 유류와 식량을 대준다는 조건에서다.

전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은 강도 높은 국지도발이나 무력충돌, 대규모 해킹, 무차별 테러 등으로 중국을 전략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가 전쟁 문턱까지 가 주한미군의 발목이 잡힌다면 북한은 중국을 위해 제 몫을 다한 셈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나 주한미군이 중국과 대만의 유사시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질문에 “전반적인 안보 상황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가장 시급한 관심사는 이 상황을 이용하기 위한 북한의 군사 행동일 것”이라고 답한 것도 이 같은 전망 때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전 세계적인 문제” 규정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단호히 반대한다”며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대만 문제에서의 중립은 결국은 중국 편들기라고 인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이 유사시 북한 카드를 꺼낼까 걱정하는 게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혹시라도 병자호란의 교훈을 오독하지 말았으면 한다. 천하가 명(미국)에서 청(중국)으로 넘어가는 데 깜깜했던 조선(한국)의 패착을 지금에 대입하는 것 말이다.

청군은 병자호란 18년 전인 1619년 요동의 사르후 전투에서 10만여 명의 조·명 연합군을 격파했다. 명은 이후 정치적 혼란기에 빠져 국운이 쇠했다. 1637년과 2023년은 상황과 맥락이 전혀 다르다.

이철재 외교안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