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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명태가 사라진 바다, 그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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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혹시 시간이 되면 오는 15일까지 계속되는 국립민속박물관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에 가보시라. 조명치란 한국인의 밥상 3대 어종이라 할 조기·명태·멸치를 합쳐 부른 말. 입구에서부터 왁자한 시장 소음, 뱃노래, 어류 설명 등이 어우러져(모두 녹음된 소리다) 여느 전시장과 달리 흥겨움이 배어난다. 약품처리를 한 진짜 생선이 좌판에 쌓여 있고, 어느 해안가 덕장을 옮긴 듯 코를 꿴 명태 수십마리가 달려 있다. 밥상 위 ‘조명치’에서 시작해, 어획·가공·유통·판매의 현장과 이에 얽힌 사람들의 애환이 펼쳐진다.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의 전시장에 마치 해안가 덕장을 옮긴 듯 코를 꿴 명태가 줄줄이 걸려 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의 전시장에 마치 해안가 덕장을 옮긴 듯 코를 꿴 명태가 줄줄이 걸려 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세계 1위란 걸 이번에 알았다. 멸치 소비량도 세계 1위다. 놀라운 건 서유구(1764~1845)가 『난호어목지』에서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이어져 나라에 넘쳐난다”고 했던 명태 어획이 십수년 전부터 ‘0’이란 사실이다. 1917년 총 어획량의 28.8%에 달했는데 이젠 전량 수입된다. 지난해 수산물 총수입량(121만 7969t) 가운데 냉동 명태가 4분의1(33만 6287t)에 달했다. ‘전라도 명태’라고 불린 조기도 마찬가지. “연평도에 물이 마르면 말랐지 내 주머니 돈이 마르랴”(‘니나노타령’)고 할 정도로 조기잡이가 흥했던 서해에서 자취를 감췄다. 요즘 제사상에 조기랍시고 오르는 건 아프리카까지 가서 찾아낸, 맛·모양새가 비슷한 수입 물고기다.

“국내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었던 1970~80년대에 노가리 남획이 심각했던 건 사실이다. 다만 명태가 러시아 베링해에선 그대로 잡히면서 함경도 바다에 와서 산란하고 올라가던 행태가 바뀐 것은 다른 이유다.” 해양문화를 오랫동안 심층 조사·연구하고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창일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주범으로 꼽히는 건 기후변화. 지난 50년간(1968~2018) 우리 바다 표층 수온은 1.23도 올랐는데 연 상승분(0.024도)이 전 세계 상승분(0.009도)보다 약 2.5배 높다. 특히 동해는 1.43도나 올랐다. 명태가 내려오지 않는 대신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오징어·멸치 어획량이 대폭 늘었다.

물론 기후변화가 아니라도 우리 삶이 100년 전과 같을 리 없다. 일례로 조·명·치 같은 회유성 어류가 일시적으로 모일 때 맞춰 만들어진 어로(漁撈) 노동요는 이제 민속의 한 장면으로만 남았다. 어업의 기계화·산업화에 따라 사람들이 떼로 모여 고기를 잡지 않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수십년 새 확 바뀐 우리 삶과 그럼에도 변치 않는 입맛의 고집을 느끼게 된다. 언제까지 갈까. 쉬이 잡히던 물고기가 사라지고 수입도 한계에 이르면 우리 밥상은 어떻게 될까. 기후변화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