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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건물 사려면 노조 동의?…인국공 단협, 경영권 침해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난 2020년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원들이 국토교통부 앞에서 인천공항 비정규직 근로자의 일방적 정규직 전환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뉴스1

지난 2020년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원들이 국토교통부 앞에서 인천공항 비정규직 근로자의 일방적 정규직 전환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뉴스1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노사가 인사·경영권 침해 논란이 있는 단체협약(단협) 조항을 20여년 넘게 유지해온 사실이 확인됐다. 조합원뿐 아니라 간부와 임원의 전보·승진·교육 같은 세부 인사조치 사항은 물론 장단기 사업계획과 주요 자산의 취득 관련 사항까지 사전에 노조에 통지토록 한 것이다.

 2일 인국공과 공항업계에 따르면 인국공 노사가 맺은 단협 중 문제가 되는 조항은 ‘제8조 통지의무 및 자료제공’으로 여기엔 공사가 통지할 사항으로 모두 9가지가 열거돼 있다. 인국공 단협은 2년마다 체결된다.

 이 가운데 ▶임직원 교육, 출장, 신규채용, 전보, 승진, 파견, 휴직, 해고, 징계 상벌 등 인사조치 사항 ▶공사의 장단기 사업계획 수립 및 변경에 관한 사항 ▶주요 자산의 취득, 운용 및 처분에 관한 사항 등이 인사권과 경영권을 침해할 소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조합원이 아닌 간부와 임원 관련한 세세한 인사조치 사항을 사전에 제공하는 데다 각종 사업계획과 자산 취득 관련 사항까지 미리 노조에 알려주라는 건 인사권은 물론 경영권에 심각한 간섭이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정경오 변호사(법무법인 린)도 “너무 세세한 사항까지 노조에 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어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특히 장단기 사업계획은 회사의 경영비밀에 해당할 수도 있는데 자칫 외부에 유출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공기업의 단협과 비교해서도 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공기업 사장은 “인국공 사측이 노조에 통지해야 하는 내용 중엔 납득하기 어려운 사안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앙일보가 코레일과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공항공사, 국가철도공단, SR, 한국교통안전공단 등 국토교통부 산하 주요 공기업 7곳의 단협안을 분석했더니 조합원이 아닌 임원과 간부의 세세한 인사조치 사항까지 노조에 미리 알려주도록한  곳은 전무하다.

 또 예산 및 결산 관련 사항을 노조에 통보토록 단협을 맺은 곳은 있지만, 장단기 사업계획 수립과 변경에 관한 사항을 사전에 제공토록 명기한 공기업은 없었다. 주요 자산의 취득과 운용, 처분 관련 사항을 통지 항목에 놓은 곳 역시 인국공이 유일하다.

인천공항 전경. 연합뉴스

인천공항 전경. 연합뉴스

 게다가 문제의 단협항목에는 다른 공기업과 달리 '공사와 조합은...조합 내부방침에 소요되는 기간을 충분히 감안해 사전 통지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있다. 다른 7개 공기업의 단협에는 사전 통지 항목을 넣으면서 '조합 내부방침'을 언급한 경우는 없다.

 인국공 사측은 해당 항목이 단순 통지 사항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인국공 사정에 정통한 공항업계 관계자의 얘기는 다르다. 이 관계자는 "'조합의 내부방침'은 사실상 통지 사항에 대한 노조 차원의 동의 여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실제로 이 항목 때문에 인국공의 많은 처장과 팀장들이 인사나 정책결정전에 먼저 노조에 가서 설명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단순한 통지라면 다른 공기업처럼 단협에 '사전에 상대방에 통지해야 한다' 정도로만 넣으면 되지 뭐하러 '조합 내부방침'이라는 의미가 모호한 문구를 넣었겠느냐"며 "철도노조의 위세가 막강한 코레일에서도 이런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코레일 단협 항목. 자료 코레일

코레일 단협 항목. 자료 코레일

 코레일의 단협안 12조(통지의무)에는 '공사와 조합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상호 서면으로 통지한다'고만 돼 있다. 또 공사가 통지할 사항도 ▶제반 규정 개폐 ▶본부장급 간부 및 소속장의 임면과 보직 변경 ▶조직 및 직제 개편 ▶예산 및 결산서 ▶이사회 회의 결과 ▶확정된 열차운행계획의 변경 등 6개뿐이다. 사전 설명이나 협의를 요구하는 내용은 없다.

 인국공의 한 간부는 “노조가 사실상 인사와 경영에 깊이 개입하는 모양새이다 보니 임직원들이 인사 때나 중요한 정책 결정 때 노조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토부도 문제 소지가 있는 단협 항목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인국공 사측은 별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인국공은 "해당 단협 조항은 1998년 최초 체결 때부터 반영된 것으로, 노사 간 이슈가 된 적이 없으며 사측의 경영자율권을 침해할 여지는 없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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