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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철근 빼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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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성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윤성민 정치에디터

윤성민 정치에디터

철근 콘크리트의 발명은 바벨탑에서 멈춘 인류의 높이를 향한 꿈을 자극했다. 그전까지 주요 건축재료는 벽돌과 콘크리트였다. 성경에 따르면 바벨탑도 벽돌에 역청을 발라 올렸다. 콘크리트는 응회암 분말, 석회, 모래를 물에 섞는 방식으로 고대부터 사용됐다. 로마 판테온 신전의 주 자재도 콘크리트다. 문제는 높이. 건물이 높아질수록 벽돌은 무한대로 커져야 했고, 콘크리트는 인장력에 약해 무너질 위험이 커졌다.

해법은 우연한 곳에서 나왔다. 프랑스 정원사 조제프 모니에가 잘 깨지지 않는 화분을 만들기 위해 콘크리트 안에 철망(철근)을 넣어 화분을 만들었다. 모니에는 1855년 이 기술로 특허를 얻고, 이를 활용해 계단과 교량 등을 만들었다. 5층 정도에 머물던 건축물은 20층을 훌쩍 넘기 시작했다. 압축력에 강한 콘크리트와 인장력에 강한 철근이 서로 약점을 보완한 결과다. 1931년 미국 뉴욕에 들어선 381m 높이의 세계 최고층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엔 철강재만 약 5만7000톤 사용됐다. 철근은 ‘더 높게’라는 인류의 욕망을 실현해줬다.

하지만 허술한 욕망은 허물어지는 법이다. 1968~1972년 서울에 집중적으로 지은 도시 빈민을 위한 시민아파트가 그랬다.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이 추진한 사업이었는데, 대부분 산 위에 건설됐다. 위험하고 주민도 불편하지 않겠냐는 의견에 김 시장은 “높은 곳에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니냐”고 답했다고 한다. 김 시장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육사 후배다. 박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에 김 시장은 와우아파트도 마포구 와우산 중턱에, 그것도 6개월 만에 지었다. 이 아파트는 준공 4개월 만인 1970년 4월 오전 6시40분쯤 무너졌다. 33명이 사망했다. 조사 결과 철근 70개를 넣어야 할 기둥에 5개밖에 안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철근 빼먹기’가 논란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조사 결과, LH가 발주한 아파트에서만 15곳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됐다. 경기 양주회천의 LH 단지는 154개 기둥 전체에 철근이 없었다. 민간 시행 아파트는 더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더 높게’라는 인류의 꿈을 앞당겼던 철근이, 지금 한국 사회에선 ‘더 싸게’라는 건설업자의 욕망을 부추기는 도구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