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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돌아온 괴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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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지난 2006년 봉준호 감독이 선보인 영화 ‘괴물’은 국내외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강물 속에서 튀어나와 둔치를 질주하며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괴물의 실감 나는 영상은 압권이었다. 여기에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지며 1000만 관객을 달성했고, 각종 영화제에서 작품·연기상을 휩쓸었다. 이제는 지구촌 문화 콘텐트의 대세로 자리매김한 ‘한류’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 비슷했다. 이후 봉 감독은 ‘기생충’으로 할리우드도 접수했다.

2일 메이저리그(MLB) 야구장에도 괴물이 나타났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6)이 캐나다 토론토 로저스 센터에서 열린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지난해 왼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이후 1년 2개월, 426일 만에 치른 복귀전이다.

류현진이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건 동산고 2학년이던 2004년 이후 18년 만이다. 30대 중반에, 그것도 앞서 수술한 부위에 다시 칼을 대는 건 선수 생명을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류현진은 과감히 수술대에 올랐다.

영화 ‘괴물’이 K컬처를 이끌었다면, 야구판 괴물은 K스포츠를 떠받쳤다. 대학 야구를 거쳐 곧장 빅 리그로 향한 선배 박찬호와 달리 류현진은 KBO리그에서 기량 검증을 마친 뒤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첫 사례다. 류현진이 ‘믿고 쓰는 KBO리그 출신’ 이미지를 만들면서 강정호·박병호·김광현·김현수·양현종·김하성 등 KBO리그 간판급 선수들이 줄줄이 빅 리그에 상륙할 수 있었다.

모르긴 해도 메이저리그판 ‘괴물 2’ 개봉을 준비하며 흘린 류현진의 땀과 눈물이 단순히 선수 개인의 자존심 회복을 위한 노력만은 아닐 것이다. KBO리그와 메이저리그를 이은 개척자로서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책임감이 상당 부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괴물의 컴백 첫 경기 성적표는 기대치에 못 미쳤다. 5이닝 9피안타 4실점, 투구 수 80개. 하지만 한 번의 경기만으로 올 시즌 최종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영화에서도 한강 둔치에 괴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주 살짝 지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