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철제 패널 물류센터 실내 34도, 작업 5분 만에 온몸이 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서울 전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31일 오전 서울시내 한 공사장 현장에서 건설노동자가 헬멧을 벗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전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31일 오전 서울시내 한 공사장 현장에서 건설노동자가 헬멧을 벗고 있다. [연합뉴스]

기온이 섭씨 35도까지 치솟은 지난달 29일, 경기도 화성시 쿠팡 동탄 물류센터(센터) 내부는 뜨거운 공기로 가득했다.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들이 열기를 뿜어냈고, 작업자들은 찜질방에 온 듯 힘겹게 숨을 뱉어냈다. 내부 온도계 숫자는 야외와 다를 바 없는, 34.1도에서 34.6도 사이를 오갔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린 이날, 기자는 센터에서 출고된 물건들을 분류하고 택배차에 전달하는 일용직 근무에 지원해 9시간 동안(교육·휴식시간 포함) 일했다. 2시간가량 교육을 받고 오전 10시30분부터 작업에 투입됐다. 컨베이어벨트 밑으로 들어가자마자 함께 온 일용직 7명의 얼굴에 땀이 흘렀고, 채 5분도 안 돼 온몸이 젖었다. 센터 곳곳에 대형 선풍기와 지름 약 3m의 실링팬이 있었지만, 바람이 닿지 않는 곳이 태반이었다. 기계는 쉴 시간을 주지 않았고, 긴장과 부담은 몸의 열기를 끌어올렸다. 포장을 마친 물건이 위쪽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지면 ‘토트’(조립식 플라스틱 박스)에 담아 다시 아래쪽에 옮겨 실어야 한다. 물건이 4~5개만 쌓여도 경고음과 함께 주황색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경고가 반복되면 관리자가 찾아와 “빨리 하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오전 11시20분, 컨베이어벨트가 멈췄다. 12시10분까지 50분의 점심시간. 수천 명의 작업자가 일제히 지하 1층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어 저마다 손에 아이스크림을 쥔 채 더위를 식혔다. 직원들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2~3시간이 더위의 고비라고 말했다. 다음 휴게시간은 오후 2시부터 2시20분까지였지만, 폭염이 극성이던 이날은 10분을 추가로 쉬게 해줬다.

센터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는 곳은 1층 안내데스크, 2·3·4층 휴게실과 화장실 정도다. 한 직원은 화장실을 나서며 “여기서 제일 시원한 곳이 화장실”이라고 말했다. 작업 공간 중에 에어컨이 있는 곳은 A동 1.5층 포장 업무 공간뿐이다. 다른 작업자에겐 이곳이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정작 포장 업무를 하는 계약직 김모(41·여)씨는 “정수리만 시원하고, 한 발짝만 옆으로 가도 땀이 질질 흐르고 속옷이 다 젖는다”며 “머리 외 몸에는 습진이랑 무좀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쿠팡은 혹서기에 얼음물, 식염 포도당, 아이스크림 등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철제 패널로 이뤄진 창고형 건물을 뚫고 들어오는 열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쿠팡은 물류센터의 개방된 공간 특성상 에어컨을 설치해도 효과가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 측은 “에어컨 설치가 힘들면 휴식 시간이라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체감온도 33도 이상이면 시간당 10분, 35도 이상이면 15분씩 휴식을 제공하도록 권고한다. 쿠팡 측은 “법정 휴게시간 외 추가 휴게시간을 부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동헌 쿠팡 노조 동탄분회장은 “열을 식힐 휴게 공간이 있어도 쉴 시간이 없으니 무용지물”이라고 반박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물류회사는 빠른 시간에 많은 물량을 채우는 것이 우선시되다 보니 살인적인 폭염 속에 기본적인 휴식시간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고용노동부가 행정 단속을 통해 휴식시간 권고사항을 지키도록 독려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