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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무역화살 몰려올까 걱정/UR협상 먹구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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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루과이라운드(UR) 최종협상이 회담 중반을 넘기면서도 난항을 거듭,파국의 조짐을 깊게 하고 있다.
EC측은 4일에 이어 5일 저녁(이상 한국시간)에도 상공·농림장관 연석회의를 이곳 브뤼셀에서 소집,진전된 제안을 내놓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불러일으켰으나 회의결과는 기존입장을 고수,미국측의 기대에 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결렬땐 통상파고 더욱 악화/미­EC 대립에 70여 개도국 강한 불만
미·EC간의 이같은 첨예한 대립에 대해선 아직 양측이 양보할 땐 하더라도 막바지까지 버텼다는 사실을 자국 국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국내 설득용으로 삼기 위한 「의도된 위기」(managed crisis)라는 분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회담 막바지에 이른 브뤼셀의 분위기는 보다 비관으로 흐르고 있으며 농산물협상이 걸림돌이 됨으로써 서비스·섬유·관세인하·반덤핑·지적소유권 등 나머지 주요분야 회의도 정지된 상태다.
한국협상대표단도 이에 따라 협상다운 협상조차 못 해본 채 회담 결렬이 몰고올 파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가트(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사무국은 당초 이번 회담에 대해 두 가지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
첫째는 기대에는 못 미치더라도 정치적 타협을 통해 어느 정도 실질적 성과를 거두고 후속협상을 내년 2월까지 끝내거나 둘째는 이번 회담에서 정치적 절충에 실패,협상이 결렬되거나 협상기한을 연장해 각료회의를 다시 열 가능성을 예측했다.
현재의 회담진행 과정은 불행히도 이 가운데 후자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UR협상이 실패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세계무역질서가 깊은 혼란에 빠지는 것은 물론 여러 국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문제를 다루는 다자간 합의의 실패는 곧 모든 무역거래를 2개국끼리 번갈아가며 현안을 풀어가야 하는 까다로운 쌍무협상으로 옮겨와 한국이 겪는 통상압력은 훨씬 거세질 수밖에 없다.
UR협상이 타결돼 주요분야 중 섬유분야의 경우 무역자유화가 이뤄지면 후발개도국의 추격이 가열되긴 하나 우리 섬유산업의 위치상 선진국 시장에 보다 자유롭게 뛰어들 수 있어 유리할 게 틀림없다. 지적소유권분야도 미국의 압력으로 우리가 그 동안 시장을 열어준 것도 많지만 결코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또 관건인 농산물분야도 우리는 가트 BOP(국제수지) 조항을 졸업하면서 오는 97년까지 전품목을 개방키로 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협상에서 쌀 등 15개 품목의 시장개방 여부가 초점이긴 하나 문을 열 경우 국내외 가격차를 관세에 얹어 점진적으로 이를 줄여나갈 수 있어 무조건 개방하는 것보다 득이 되는 것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UR협상 결렬이 가져올 큰 문제는 각국이 무역·기술장벽을 높이 쌓고 공격적 무역정책을 강화,세계무역환경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은 EC에 대항,캐나다·멕시코와 북미 자유무역협정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으며 남미까지도 이에 포함시키기 위해 부시 미 대통령이 순방에 나서는 등 세계경제의 블록화 경향은 더욱 강화되는 조짐을 보여왔다.
세계무역환경이 이렇게 나빠질 경우 특히 한국과 같이 양자협상의 표적이 되는 나라는 설 땅이 없게 되는 것이다.
세계무역질서는 한편으로는 UR로 대표되는 다자간 협상을 해나가면서 한편으로는 EC·미주 등의 직열별 담쌓기가 계속되는 이중적 상황을 보여왔다. 따라서 UR의 결렬은 결국 공통의 이해조정보다는 이익집단간의 첨예한 대결양상으로 치닫게 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브뤼셀 현지에서는 이에 따라 남은 6,7일 회의에서 미­EC간 최소한의 입장완화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실정이다.
현지 UR 전문가들은 막상 협상이 결렬됐을 때 쏟아질 비난을 의식,EC의 태도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 미국도 중동사태에 독일·프랑스 등 EC 국가들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마당에 UR협상에 무조건 강경입장만 고수할 수 없으리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미 미·EC간의 대립으로 UR협상 자체가 교착상태에 빠진 데 대해선 5일 오후 70여 개도국들이 『협상부진책임이 개도국에 있지 않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회담이 결렬되는 사태를 피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이제 브뤼셀각료회담에 참석중인 각료들의 손을 벗어나 부시 미 대통령·콜 독일 총리·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등 주요국 정상들의 결단에 달려 있지만 결렬 회피가능성은 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브뤼셀=장성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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