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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도 못 갚던 신세, 이젠 호텔 뷔페로 삼시세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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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선수단이 공중분해 될 뻔한 위기를 넘기고 고양 소노로 새 출발하는 김승기 감독(가운데)과 손규완(왼쪽), 손창환 코치. 장진영 기자

선수단이 공중분해 될 뻔한 위기를 넘기고 고양 소노로 새 출발하는 김승기 감독(가운데)과 손규완(왼쪽), 손창환 코치. 장진영 기자

“초가집에 살다가 기와집, 아니 아파트로 이사 간 셈이죠.”

25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만난 프로농구 고양 소노의 김승기(51) 감독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팀 공중 분해 위기를 넘긴 그는 모처럼 웃음을 되찾았다.

앞서 고양 소노의 전신인 고양 데이원이 모기업 재정난 탓에 파행 운영하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퇴출 당했다. ‘리조트 기업’ 소노 인터내셔널이 구원투수로 등판해 팀을 인수했고, 지난주 KBL(프로농구연맹)로부터 데이원을 대신할 프로농구 10번째 구단으로 승인을 받았다.

불과 석 달 전까지 선수들은 월급조차 받지 못했고, 밥값이 밀린 식당 앞을 지나가는 게 눈치 보여 멀리 돌아서 가야 했다. 손창환(47) 코치는 현역으로 입대한 선수들에게 밥이라도 먹여 보내려고 공사장 일용직까지 했다. 손 코치는 “아는 후배의 건설 회사에 5일간 나갔다. 입찰도 하고 시멘트도 날라 받은 돈으로 현역 입대한 김세창과 문시윤은 고기를 사 먹였다. 상무에 입단한 박진철과 조한진은 (막노동 소식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인지 식사를 끝내 고사하더라”고 했다.

지난해 매출액 8560억원을 기록한 소노는 리그 가입비 15억원을 일시불로 마련했다. 모기업 소유의 호텔(소노캄 고양)에서 선수단에 한 끼 최대 12만원짜리 뷔페를 삼시세끼 제공한다. 연봉 협상도 마무리 단계다. 선수단은 이달 말 거의 반년 만에 밀린 월급을 받을 예정이다. 고양체육관을 둘러본 서준혁 대명소노그룹 회장은 “시골 목욕탕 같은 지하 훈련장을 싹 바꾸겠다. 선수와 팬이 행복할 수 있게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소노는 향후 5년 간의 예산을 미리 편성하는 한편, 연고지 고양시에 경기장 명칭을 ‘고양 소노 아레나’로 바꾸자고 요청했다.

선수단이 공중분해 될 뻔한 위기를 넘기고 고양 소노로 새 출발하는 김승기 감독(가운데)과 손규완(왼쪽), 손창환 코치. 장진영 기자

선수단이 공중분해 될 뻔한 위기를 넘기고 고양 소노로 새 출발하는 김승기 감독(가운데)과 손규완(왼쪽), 손창환 코치. 장진영 기자

김 감독은 “그동안 눈칫밥을 먹으며 버텼다. 팬들이 선수단을 위해 싸준 장어덮밥은 눈물 나는 밥이었다. 선수들이 뷔페가 너무 맛있다고 좋아한다”며 웃었다. 손규완(49) 코치는 “올해 급여가 밀려 아내가 적금을 깼다. 감독님이 집사람에게 전화 걸어 ‘저를 믿고 따라오면 걱정 없을 것’이라고 안심 시켜줬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제가 팀에 데려온 매니저는 택배 일까지 했다. 만약 팀이 인수가 안됐다면 코치라도 다른 팀에 취업하길 바란 게 솔직한 심경이었다. 감사하게도 소노가 기존 선수단을 100% 인수하고, 급여가 적은 선수들은 올려줬다”고 했다.

소노의 팀 색상인 스카이 블루 넥타이를 메고 온 김 감독은 “전성현이 처음 국가대표에 뽑힌 뒤 선물해줬던 넥타이인데,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측했나 보다. 주황색(데이원 상징색) 넥타이는 아내가 중고 거래로 팔았다”며 웃었다.

선수단이 공중분해 될 뻔한 위기를 넘기고 고양 소노로 새 출발하는 김승기 감독(가운데)과 손규완(왼쪽), 손창환 코치. 장진영 기자

선수단이 공중분해 될 뻔한 위기를 넘기고 고양 소노로 새 출발하는 김승기 감독(가운데)과 손규완(왼쪽), 손창환 코치. 장진영 기자

소노는 가드 전성현과 이정현을 중심으로, 앞서 KT에서 뛴 제로드 존스와 미국프로농구(NBA) 드래프트 1순위 출신 앤서니 베넷, 필리핀 출신 조쉬 토랄바 영입을 거의 확정했다. 트레이드로 2명을 데려오고 신인도 뽑아 19명을 채울 계획이다. 김 감독과 손규완, 손창환 코치는 2015년 KGC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 8시즌 중 7시즌간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우승 2회, 준우승 1회를 이뤄냈다.

지난 시즌 월급이 밀리는 악조건 속에서도 4강행 기적을 쓴 김 감독은 “요즘 세상이 각박한데, 한 여자체육교사 팬이 써준 응원의 손편지를 읽고 눈물이 났다. 팀명인 ‘스카이 거너스’처럼 대포 쏘듯 하늘 높이 슛을 많이 쏘겠다. 쉽게 지지 않는 끈질긴 농구, 지난해보다 더 진한 ‘감동 농구’를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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