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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밀려도, 실력은 안 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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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공중 분해 위기에 놓인 프로농구 고양 데이원 선수들. 주장 김강선(오른쪽) 등 선수들은 KBL 지원을 받아 고양체육관에서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전민규 기자

공중 분해 위기에 놓인 프로농구 고양 데이원 선수들. 주장 김강선(오른쪽) 등 선수들은 KBL 지원을 받아 고양체육관에서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전민규 기자

지난 21일 경기도 고양체육관 지하의 보조경기장. 공중 분해 위기에 놓인 프로농구 고양 데이원 선수들이 훈련 중이었다. 소속팀이 사라져 유니폼도 제각각이었다.

지난해 8월 고양 오리온을 인수해 창단한 고양 캐롯은 모기업 대우조선해양건설의 재정난으로 인해 가입비 지연 납부, 선수단 급여 체불을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 16일 프로농구 역사상 최초로 제명 당했다. 앞서 지난 3월 캐롯손해보험이 네이밍스폰서 계약을 해지해 구단명도 고양 데이원으로 바뀌었다.

선수들은 지난 19일부터 훈련을 재개했다. 밀린 체육관 대관료만 1억7000만원에 달하는데, 프로농구연맹 KBL이 선수들을 지원하기 위해 한 달에 800만원 내고 대관해줬다.

공중 분해 위기에 놓인 프로농구 고양 데이원 선수들. 전민규 기자

공중 분해 위기에 놓인 프로농구 고양 데이원 선수들. 전민규 기자

훈련 후 만난 포워드 최현민(33)은 기자에게 “월급을 4개월 동안 못 받은 적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지난 2월부터 밀린 선수 급여는 10억원이 넘고, 협력업체 체불액도 3억원이다. 주장 겸 가드 김강선(37)은 “선수들이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았다. 월세가 밀린 선수를 위해 동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농구화 구매와 세탁도 사비로 했다. 밥값이 밀린 식당 앞을 지나가는 게 눈치 보여 돌아서 갔다. 난 가장으로 자식도 있는데 집에 들어가기도 미안했다”고 했다. 가드 한호빈(32)은 “좌우명이 ‘긍정’인데도, 머리가 한 움쿰 빠진다”고 했다.

데이원 선수는 총 18명인데 이날 10명만 훈련에 참여했다. 전성현과 이정현은 대표팀에 차출됐고, 6명은 군입대 했거나 예정이다. 김강선은 “4명은 일반병으로 갔다. 상무 농구단에 간 (박)진철이가 ‘형들이 잘 싸워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2009년 전신인 대구 오리온스에 입단해 15년째 원클럽맨인 김강선. 전민규 기자

2009년 전신인 대구 오리온스에 입단해 15년째 원클럽맨인 김강선. 전민규 기자

대우조선해양건설의 김용빈 회장과 데이원스포츠의 허재 스포츠총괄 대표, 박노하 재무총괄은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한호빈은 “밀린 월급을 준다고 해서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원통하고 힘들다”고 했다. 2009년 전신인 대구 오리온스에 입단해 15년째 ‘원클럽맨’인 김강선은 연고지 이전 등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지난 14일 선수들을 이끌고 국회에서 기자회견에 나섰던 김강선은 “TV에 아들이 죄인처럼 나와 어머니가 가슴 아파하셨다.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나은데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했다.

부실한 구단을 승인해 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KBL은 뒤늦게 인수할 새 기업을 찾을 때까지 선수들 보호에 나섰다. KBL이 6월부터는 선수들 월급을 일단 선지급한다. 한호빈은 “선수들이 다시 모여 훈련하게 돼 ‘으쌰으쌰’ 하고 있지만, 막상 집에 가면 허탈감에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 저희가 원하는 건 2가지다. 밀린 급여를 받는 것, 하루 빨리 인수 기업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농구팬들이 ‘힘내요’라는 문구가 적힌 커피와 빵을 보내주면서 “우리 연고지(고양)을 떠나도 좋으니 새 팀을 구하길 바란다”고 말해줬다.

공중 분해 위기에 놓인 프로농구 고양 데이원 선수들이 훈련을 재개했다. 전민규 기자

공중 분해 위기에 놓인 프로농구 고양 데이원 선수들이 훈련을 재개했다. 전민규 기자

KBL은 농구단 유치에 관심이 있는 부산시와 박형준 시장과 논의 중이다. 그러나 연간 최소 60억원~90억원이 운영비가 드는 후원기업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다음달 21일경 18명은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9팀으로 흩어지게 된다.

데이원은 지난 시즌 급여 체불에도 불구하고 4강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감동 농구’를 선보였다. 김강선은 “최악의 경우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루빨리 재창단돼 다시 한번 감동 농구를 보여드리고 싶다. 우리는 배고픔을 겪어본 선수들이라서 더 잘할 수 있다”고 했다.

공중 분해 위기에 놓인 프로농구 고양 데이원 선수들. 전민규 기자

공중 분해 위기에 놓인 프로농구 고양 데이원 선수들. 전민규 기자

▶‘공중 분해 위기’ 고양 데이원
2022년 8월: 오리온 인수해 ‘고양 캐롯’ 창단
2022년 12월: 데이원의 모기업 대우조선해양건설 경영난 악화
2023년 2월: 선수단 급여 체불 시작
2023년 3월: 네이밍스폰서 캐롯이 후원 계약 중단

2023년 6월: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제명
              KBL 지원으로 훈련 재개 및 인수 기업 물색 중(불발시 7월 특별 드래프트)

▶김강선이 ‘원클럽맨’으로 뛰면서 겪은 일
2009년: 드래프트 8순위로 대구 오리온스 입단
2011년: 야반도주하듯 연고지 대구서 고양으로 이전
2016년: 고양 오리온 소속으로 챔프전 우승
2023년: 고양 캐롯 주장으로 4강 진출 이뤄내
         임금 체불 이어지자 선수단 이끌고 국회서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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