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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스터도 먹는 MZ병사..."최전선 사수" 눈빛은 겁먹지 않았다 [정전 70년 한미동맹 7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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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4월 강원도 철원의 제6보병사단(청성부대) 식당. 신태욱 병장(현재 전역)이 열심히 오징어를 볶고 있었다. 이날 부대 점심 메뉴는 흰밥에 소고기뭇국, 닭볶음탕, 오징어볶음, 파김치. 전날 점심의 메인 메뉴는 미나리 삼겹살 구이였다. 내일은 불고기 버거로, 크림 스프, 치킨 텐더 샐러드, 쿠키, 사이다와 함께 나올 예정이었다.

제6보병사단(청성부대) 소초 식당에서 취사병 신태욱 병장이 오징어를 볶고 있다. 이날 점심 메뉴로 흰밥, 닭볶음탕에 쇠고기뭇국, 오징어볶음, 파김치가 나왔다. 박영준 작가

제6보병사단(청성부대) 소초 식당에서 취사병 신태욱 병장이 오징어를 볶고 있다. 이날 점심 메뉴로 흰밥, 닭볶음탕에 쇠고기뭇국, 오징어볶음, 파김치가 나왔다. 박영준 작가

과거에 군대 식사를 낮춰 부르는 ‘짬밥’은 맛없기로 악명 높았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다.

지난 2월 제7보병사단(칠성부대) 급양담당관인 김선찬 중사는 “사단 영양사가 식단을 짜는데, 소초 사정에 따라 바꿀 수 있다. 용사(병사)들 입맛에 맞는 메뉴나 반찬을 제공할 수 있는 예산도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찾은 당일 부대의 점심 메인 메뉴는 전복 갈비탕이었다. 김 중사는 “한 달에 한 번 랍스터를 배식하고 있다”며 “취사병들과 단톡방을 만들어 선호도 조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MZ 세대가 좋아하는 마라탕도 내놨다”고 말했다.

제22보병사단(울곡부대)에서 병사 개인의 선호에 따라 다양한 양념과 향신료, 조미료를 고를 수 있도록 모아놓은 조미료 카트. 박영준 작가

제22보병사단(울곡부대)에서 병사 개인의 선호에 따라 다양한 양념과 향신료, 조미료를 고를 수 있도록 모아놓은 조미료 카트. 박영준 작가

제22보병사단(율곡부대)엔 각종 양념ㆍ향신료ㆍ조미료를 따로 모아놓은 카트를 식당에 가져다 놨다. 개인의 식성을 최대한 고려한 조처다. 지난 4월 막 부대 배치를 받은 제25보병사단(비룡부대) 윤호준 이병(현재 일병)에게 ‘지금 무엇이 가장 먹고 싶냐’고 묻자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어떨 땐 사회보다 더 잘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이처럼 ‘병식’(병사들의 식사)이 부쩍 좋아진 이유가 있다. 부실한 군 급식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군 당국이 신경을 쓴 덕분이다. 군 관계자는 “특히 2021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 격리 장병에게 준 형편 없는 식사 사진이 소셜미디어로 퍼진 뒤로 많이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제21보병사단(백두산부대) 소초에서 일과가 끝난 뒤 헬스장에서 최성훈 상병이 턱걸이를 하고 있다. 박영준 작가

제21보병사단(백두산부대) 소초에서 일과가 끝난 뒤 헬스장에서 최성훈 상병이 턱걸이를 하고 있다. 박영준 작가

제21보병사단(백두산부대) 소초에서 일과가 끝난 뒤 개인 시간을 즐기고 있는 장병들. 오준서 상병이 책을 읽고 있다. 박영준 작가

제21보병사단(백두산부대) 소초에서 일과가 끝난 뒤 개인 시간을 즐기고 있는 장병들. 오준서 상병이 책을 읽고 있다. 박영준 작가

대대 본부나 중대 본부엔 점심시간과 일과 후만 여는 PX가 들어가 있다. 7사단의 김선일 병장은 박격포반 계산병이면서 PX병을 겸하고 있다. 김 병장은 “‘몸짱 열풍’이 불어서인지 단백질 보충제를 많이 찾고, 선크림과 화장품도 인기 상품”이라고 말했다. 물론 최전방의 격오지를 돌아다니는 이동식 PX인 ‘황금마차’는 여전히 운행 중이다.

지난 1월 찾은 해발 1296m의 향로봉의 부대 생활관엔 뜨거운 온수가 나왔다. 이처럼 고지의 소초에서도 물 걱정을 안 한다. 제12보병사단(을지부대) 유일호 중령은 “아래에서 급수관으로 끌어올린 물을 정수장에 일시적으로 저장했다가 각 소초로 보낸다. 소초에선 보일러로 물을 데운다”고 설명했다.

소초의 생활관엔 9명이 개인 침대에서 잔다. TV, 셋톱박스와 에어컨이 완비됐다. 근무가 끝난 병사들은 휴대폰으로 가족들과 통화하거나 게임을 즐겼다. 2020년 7월부터 병사들도 일과 후 휴대폰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면서 달라진 병영 풍경이다.

그렇다고 해서 병사들이 휴대폰에만 빠지진 않는다. 소초마다 마련된 간이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는 병사들이 많다. 제21보병사단(백두산부대) 박성준 병장은 “철책선 경계가 힘들어 체력을 단련해야 하기도 하지만, 멋진 몸을 만들고 제대하고 싶은 생각에 헬스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독서실인 북카페에서 밤늦게 공부하는 학구파 병사들도 자주 보였다.

제7보병사단(칠성부대)애서 철책선을 지키는 형 변정수 병장(왼쪽)과 동생 변진수 병장. 촬영 당시 계급은 상병이었다. 강원도 춘천에서 나고 자란 형제는 2022년 4월 나란히 입대한 뒤 최전방 근무를 자원했다. 올 10월 함께 제대한다. 박영준 작가

제7보병사단(칠성부대)애서 철책선을 지키는 형 변정수 병장(왼쪽)과 동생 변진수 병장. 촬영 당시 계급은 상병이었다. 강원도 춘천에서 나고 자란 형제는 2022년 4월 나란히 입대한 뒤 최전방 근무를 자원했다. 올 10월 함께 제대한다. 박영준 작가

최전방의 병사들이 휴대폰을 만지고 있다고 해서 이들이 편한 군 생활을 보내고 있는 건 전혀 아니다. 다들 피하는 최전방 근무를 이들은 자원해서 왔다. ‘최전방 수호병’으로 불리는 이들은 훈련소에서 지원을 받아 뽑은 뒤 심리검사 등을 통해 가장 우수한 병사를 가린다. 이들은 철책선 초소에 경계를 서거나 과학화 경계 시스템 장비를 운용한다. 제대할 때까지 최전방에서만 근무해야 한다. 대신 일반 병사들보다 매달 최대 사흘씩 휴가를 더 쓸 수 있다.

7사단의 변정수·진수 상병(현재 병장)은 형제 최전방 수호병이다. 같은 부대에서 같은 생활관을 쓴다. 2022년 4월 12일 함께 입대해 올 10월 11일 함께 제대한다. 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고 있다. 부모님도 걱정을 덜 하신다”고 말했다.

최전방 수호병이 다는 패치. 육군

최전방 수호병이 다는 패치. 육군

여건이 나아졌지만, 최전방의 삶은 아직도 고되다. 툭하면 출동이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걸 때마다 긴장감이 높아진다. 특히 가족과 함께 사는 장교·부사관 등 간부는 주변에 편의시설이 부족한 게 애로 사항이다. 대형 마트로 장을 보러 가려면 1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가는 지역도 있다. 그래도 최전방 장병들은 “내가 최전선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복무를 이어가고 있다.

제21보병사단(백두산부대)의 대대장 이동환 중령은 “MZ 세대가 나약하다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잘 설명해주면 MZ 세대들은 정말 열심히 한다”고 밝혔다. 이 중령은 “특히 북한과 마주하는 최전방에 있으니 적이 누구며,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 확실히 깨닫는다고들 말한다”며 “참으로 대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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