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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이상민, 참사 발언 부적절했지만 파면할 정도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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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헌법재판소는 25일 9명의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인 유남석 헌재 소장을 포함해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 등 이른바 ‘진보’ 성향 재판관들까지 일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및 품위유지 의무 위반은 있으나 탄핵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이 장관의 탄핵심판 사건을 ①사전 재난 예방조치 ②참사 발생 뒤 사후 대응 ③참사 이후 발언 등 세 부분으로 나눠 탄핵사유 인정 여부를 판단했다.

헌법재판소가 25일 서울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공판에서 재판관 9명의 전원일치로 기각했다. 이날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과 헌법재판관들이 선고 공판에 참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가 25일 서울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공판에서 재판관 9명의 전원일치로 기각했다. 이날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과 헌법재판관들이 선고 공판에 참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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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석·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세 부분 모두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은 없었다고 봤다. 5인 다수로 채택된 법정의견이다. 이들은 ‘참사를 막기 위해 사전 예방조치를 취할 수 있었으나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선 “용산경찰서나 용산구청에서 혼잡 관리와 관련해 별도 보고를 하지 않았고, 언론도 핼러윈 인파를 보도하면서 다중밀집사고를 예상하지는 못했다”며 “개방된 장소에서, 주최자 없는 대규모 자발적 행사의 다중밀집사고 예방을 위해 구체적 조치를 했어야 한다고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후 대응에 대해서도 “소방·경찰 등이 지원돼 중대본·중수본의 역할이 실질적으로 수행됐다”며 재난안전법이나 국가공무원법의 성실의무 위반,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들은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다”는 이 장관의 참사 이후 발언에 대해선 “전체적으로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어 부적절하고 경솔한 발언이거나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의문스러운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참사 다음 날 정확한 정보를 수집·파악할 시간적 한계가 있었고, 참사 원인이나 경과를 왜곡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골든타임 발언은 국정조사 위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한 발언”이라며 “문제 발언 후 즉시 사과하고 유사한 취지의 발언을 다시 한 바 없고, 기억에 반해 거짓을 말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한 진술은 아닌 점 등을 고려하면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반면에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이 장관의 사후 재난대응과 일부 발언들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와 품위유지 의무를 각각 위반했다고 밝혔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들은 이 장관이 참사 당일 밤 경기도 일산에 거주하는 수행비서가 오기를 기다려 현장으로 출발한 결과 이튿날 0시42분 열린 대통령 주재 긴급상황점검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1시5분에야 현장지휘소에 도착했다는 걸 문제로 지적했다. “최초 보고부터 85~105분의 귀중한 시간을 원론적 지휘에 허비해, 국가는 물론 국민의 신뢰를 손상했고 공무원의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재판관 3명은 다만 “이 장관의 사후 대응은 긴급상황에 재난 및 안전관리 총괄조정 책임자로서 기대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도 “법 위반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나 해악의 정도가 중대해 국민의 신임을 박탈하여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 재판관 4명은 이 장관의 참사 원인 및 골든타임 발언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참사 발생의 원인을 오인하게 하거나, 피해 발생 및 확대에 관한 경찰이나 소방공무원의 의무나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발언”이라며 “이는 재난 및 안전관리 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품위손상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이에 대해서도 “이 장관의 사후 발언이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한 건 맞지만,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사유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들은 “참사 이후 이 장관의 발언들에 책임 회피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재난 상황에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지만, 국민의 신임을 박탈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은 아니다”고 봤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도 이날 헌재 방청석에 앉아 선고를 지켜봤다. “9인 재판관 전원 기각으로 판단한다”는 선고가 끝나고 재판관들이 나간 뒤에도 유가족들은 흐느끼며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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