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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총괄 장관 '167일 공석'...오늘 '이상민 선고' 주목되는 이유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24일 현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무단 점유하고 있는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 문희철 기자

24일 현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무단 점유하고 있는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 문희철 기자

“정부 부처가 스마트폰이라면 행정안전부(행안부)는 일종의 기지국이죠.”

"행안부 업무가 안 끼는 데가 없는 ‘홍반장’같다"며 행안부 직원이 한 말이다.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경제관계장관회의와 교육부총리가 주재하는 사회관계장관회의 양쪽에 고정 멤버로 참석하는 건 행안부 장관이 유일하다.

실제로 철도 사고가 생기면 국토교통부·행안부가 수습하고,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심해지면 환경부·행안부가 대응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난방 지원책을 마련하거나 기획재정부가 물가 관리 대책을 발표해도 행안부가 동석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심판 선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사건 첫 변론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사건 첫 변론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처럼 정부 네트워크망 역할을 하는 행안부 수장 자리가 167일째 공석이다. 지난해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대응 문제로 이상민 장관이 탄핵 소추됐기 때문이다.

장관이 공석이면 해당 부서 업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차관 권한대행 체제에서 충청·경북·전라 지역 호우 특보가 발효하는 등 이른바 ‘극한 호우’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행안부는 장관 부재 시 재난 대응·복구를 총괄·조정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 역할을 국무총리가 맡는 방안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는 올해 1기분 재산세 부과 과정에서 실수로 세금 수천만원을 덜 걷었다. 또 새마을금고 관리·감독을 제대로 못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모든 문제가 장관 공석 상황에서 발생했다. 장관은 공석이지만 탄핵 심판 선고 전엔 대통령이 장관을 해임할 수도 없고, 장관 스스로 사임도 불가능하다.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 정부와 자치단체를 지원·조율하는 업무도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시도지사 가운데는 다선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지냈거나 대통령 후보로 물망에 오르내리는 인물이 많다”라며 “중앙 정부와 지자체를 지원·조율하는 게 주요 업무인 부처 수장이 부재중이니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법적 권한·책임 명시해 혼란·재발 막아야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 강남구 자택을 나서며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스1]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 강남구 자택을 나서며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스1]

헌법재판소는 25일 이상민 장관 탄핵 심판을 선고한다. 파면 여부와 함께 판결 내용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와 같은 주최자 없는 축제에서 재난 관리 책임자 법적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혼란스러워한다. 다중 참여가 예상되지만, 주최자가 없는 지역축제는 공무원이 어디까지 역할을 할 지 기준이 필요하다.

지역축제 사고에서 정부·지자체·경찰·소방 등 유관기관 역할 규정도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처럼, 14명이 사망한 충북 오송 지하차도 사고 이후 유관기관은 핑퐁게임 중이다. 이 때문에 장관 탄핵 여부 판단보다 유관기관 법적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논의 중인 국회 본회의장. [사진 국회 캡쳐]

지난 2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논의 중인 국회 본회의장. [사진 국회 캡쳐]

사회적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공무원이 옷 벗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방재안전직렬 공무원이 권한만큼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책임소재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 장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재난안전법상 장관에게 특정 지역 다중운집 위험에 대한 구체적 주의(注意)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공무원들은 수사기관이 형사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해도 어떤 상황에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지 고민한다.

문희철 기자

문희철 기자

이번 헌재 판결은 재난 대응·입법 정상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직후 발의한 재난안전법 개정안은 반년 이상 국회 법안소위에 묶여 있다. 야당이 개정안 통과 시 이 장관 탄핵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해서다. 서울시청 앞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분향소가 불법 설치된 상태다. 이런 불편한 상황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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