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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교권 침해하는 조례 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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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교권 강화 대책을 주문하며 “초중등교육법 관련 교육부 고시를 신속히 마련하고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 조례 개정 병행도 추진하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불합리한 조례’의 구체적 명칭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진보 성향 교육감이 앞장서 왔던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사실상 전면 개편 지시로 받아들여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학생인권조례의 각종 독소조항이 교권 침해의 주요 원인이 돼 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사항은 직접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나왔다.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심각한 교권 침해 사례가 잇따라 알려지고, 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다. 이도운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는 일관되게 교권 강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며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개정이 최근 마무리된 만큼 다음 달 중 교육부 고시를 제정해 훈계 등 학생 지도의 구체적 방식을 규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교사의 학생 지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시한 법안이다. 교장과 교사가 학생의 학업과 진로, 인성 등에 관해 조언과 훈육 및 훈계를 통해 지도할 수 있도록 했다. 윤 대통령이 신속한 제정을 지시한 ‘교육부 고시’는 개정안에 대한 교육 현장의 구체적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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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학생인권조례 개정의 경우 지방 교육감과 최대한 협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교육부 고시의 제정 시한을 내달 중으로 못 박으면서 협상 시한을 사실상 제시했다. 조례 제·개정권은 각 지방의회에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다음 달 안으로 교육부 고시를 제정해 훈계 등 시행령의 구체적 위임 범위를 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보다 상위법인 교육부 고시에 교사의 학생 지도 범위가 명시될 경우, 인권조례로 막혀 왔던 학생 지도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대통령실은 학생인권조례의 독소조항으로 ‘차별금지’와 ‘소지품 검사 및 압수 금지’ 등 사생활 관련 조항 등을 거론했다.

교육부 “학생인권조례, 악성민원 근거 돼…교육활동 침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과 참석자들이 24일 서울 한국노총 빌딩에서 열린 교육부-교사노동조합연맹 교사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간담회에서 서이초 A교사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이날 이 부총리는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학생인권조례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과 참석자들이 24일 서울 한국노총 빌딩에서 열린 교육부-교사노동조합연맹 교사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간담회에서 서이초 A교사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이날 이 부총리는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학생인권조례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차별 금지 조항 때문에 열심히 노력한 학생에게 칭찬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소지품 검사도 금지돼 흉기성 물건을 들고 다녀도 압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를 조속히 개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장 차관은 “법령 및 고시에서 생활지도권,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규정·시행하더라도 학생인권조례 정비 없이는 교권의 근본적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 “권리 조항은 선생님들의 칭찬·질문을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데 활용되고, 사생활의 자유 조항은 정당하고 즉각적인 학생 생활지도를 어렵게 한다”며 불합리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례가) 현장에서는 교사의 어떤 정당한 교육활동을 침해할 수 있는, 또는 악성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아주 포괄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17개 교육청 중 6곳이다. 장 차관은 “서울·경기가 포함돼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며 “이념과 상관없이 교육 현장에 맞는 조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차관은 또 “교권 확립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실행력 담보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 피해 교원을 가해 학생으로부터 즉시 분리하고, 중대한 교육활동 침해 사항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개선하겠다”고도 했다. 일선 학교 선생님들의 생활지도 범위·방식 등 기준 등을 담은 고시안은 8월까지 마련하겠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장 차관이 언급한 고시안에 대해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의 권리가 규정돼 있지만, 문제는 권리에 대한 책임이 없기 때문에 교사들이 교육활동에 침해를 받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고시안에 들어갈 내용은 휴대폰 소지 및 사용이 교육활동을 저해한다고 판단되면 현재도 주의를 줄 수 있지만,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응하면 검사와 압수를 할 수 있도록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차관은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대해 “고시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법령이 정한 틀 내에서 어긋났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조례를 개정할 수 있는) 시·도교육감, 시·도의회와 상호 협의해 고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입장은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학생 인권이 보호되면서 교원의 교육활동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차관은 교육활동 침해 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련 법이 발의돼 국회 논의 중인데, 정부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 이번 기회에 입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해 학생과의 분리와 학생부 기재를 위해선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아동학대 면책권은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미 국회에는 조경태·이태규 국민의힘 의원 등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학생부 기재 등 일부 내용에 여야 이견이 있어 법 개정은 난항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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