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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제자에 폭행당했지만…선생님은 처벌 원치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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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달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담임교사를 무차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 양천구 초교에선 6학년생에게 맞은 교사가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었다. 교권이 무너진 교육 현장의 민낯이다.

24일 부산시교육청과 부산교사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부산 북구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A군이 수업 중 교사 B씨를 폭행했다. 음악 시간이 아닌데 악기 연주를 하려는 A군을 말린 게 이유였다. A군에게 맞은 B씨는 가슴뼈가 골절되는 등 3주간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다쳤다. 지난 3월에도 B씨는 흥분 상태인 A군을 말리려고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가 몸부림치던 아이 뒤통수에 맞아 가슴뼈 골절 소견을 받았다.

연도별 교권침해 건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교총]

연도별 교권침해 건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교총]

교육 현장에서 교사가 폭행 등 교권을 침해당하면 해당 학교가 교원권익보호위원회(교보위)를 열 수 있다. 하지만 B씨 사건 땐 두 차례 모두 교보위가 열리지 않았다. 당사자인 B씨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B씨를 상담한 부산교사노조 측은 “위원회가 열리면 A군 또한 경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B씨는 이런 조치가 A군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을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부산시교육청 집계를 보면 2018년부터 올해 5월까지 부산 초·중·고교에선 교보위가 487건 열렸다. 모욕·명예훼손으로 인한 위원회 개최가 277건으로 가장 많았다. 성적 굴욕감·성폭력범죄(62건), 상해·폭행(54건)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라는 게 교육 현장의 얘기다. 부산교사노조 관계자는 “위원회 개최가 결정되기만 해도 부모가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사례가 많다. B씨 또한 이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교권 침해 논란이 재차 불거졌지만, 교육 현장에선 오래전부터 ‘비극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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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체벌 금지를 명문화한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의회를 통과한 게 시작이었다. 다음 해 3월엔 직접 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 제정 이후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로 지정된 게 결정타였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권본부장은 “교원이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로 지정된 이후 오히려 가해자로 지목되는 현상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고발돼 수사를 받은 사례는 1252건에 달했다. 최근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했다는 한 교사는 “학부모에게 칼이 있는데 휘두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냐”고 말했다.

반면에 교사를 보호할 장치는 전무한 수준이다. 교보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게 교사 대부분의 반응이다. 또한 교사가 상대 학부모를 무고로 고소하는 등의 방어권을 쓰기도 어려운 분위기다.

경기도의 한 초등 교사는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하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돼야 하므로 교사가 병가를 내거나 직위해제 조치를 받아야 하고, 최종 판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며 “무고로 학부모를 고소한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본 교원에겐 아무런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향후 직장생활을 고려하면 추가 소송을 진행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교원단체가 ‘생활지도 면책권’을 담은 법 개정을 요구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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