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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 서울 강남 아이들 섬진강변 학교로 간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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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섬진강변에 있는 덕치초등학교 4~5학년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중 세 명의 어린이는 서울 강남 등에서 전학을 왔다. 임실=장정필 프리랜서

#장면1=서울 강남에 살면서 강북의 유명 사립 초등학교를 다니는 기효(10)는 오후 3시 학교수업이 끝나자마자 스쿨버스를 타고 집 부근으로 이동한다. 1시간 30분 동안 논술학원에서 수업을 받은 뒤 영어학원으로 옮겨 한 시간 동안 회화 교습을 받는다. 오후 7시쯤 집에 와 1시간30분 수학 과외를 하고, 30분 동안 후다닥 저녁밥을 먹은 뒤 학교.학원 숙제를 한다. 밤 10시부터는 첼로 레슨이나 수학 등 보강수업을 받는다.

#장면2=기효는 오후 3시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잔디가 깔린 운동장으로 달려 나간다. 한 시간 동안 친구들과 공을 차기도 하고 땅 따먹기 놀이를 하면서 신나게 논다. 오후 4시부터는 엄마와 함께 마을 밖 밭에 나가 고구마와 배추 뿌리를 뽑아 그 자리에서 깎아 먹는 등 생태 체험을 즐긴다. 오후 6시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독서와 숙제, 일기를 쓴다.

초등학교 4학년 안기효군의 최근 2주 새 뒤바뀐 생활 모습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기효는 입학경쟁률 5대 1의 사립 초등학교에 다녔다. 함께 전학 온 같은 반 김민주(10)양은 서울 서초동 원명초등학교에 다녔다. 활달한 성격으로 친구 사이에 인기가 높고, 성적도 반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았다.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58) 시인이 교사로 재직 중인 전교생 31명의 전북 임실군 덕치면 덕치초등학교에는 최근 2주 새 6명(서울 5명, 임실읍 1명)의 학생이 전학을 왔다. 본지에 소개된 '도시친구들, 농촌으로 유학 오세요'(10월 23일자 14면) 기사를 보고 마음이 움직여서다.

전북 임실군 덕치초등학교의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소개한 본지 10월 23일자 14면.

김용택 시인은 "전학 온 아이들은 서울 강남에서도 성적도 좋을 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자연과 함께 공부하는 새로운 유형의 전학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효 엄마인 이부희씨는 "숨 돌릴 틈 없는 공부 스케줄에 하늘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학원을 도는 '뺑뺑이 생활'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효 엄마는 아이를 미국으로 유학 보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기러기 가족의 아픔을 겪는 것보다는 정신력.체력을 함께 키울 수 있는 시골이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주변에선 "남들은 강남으로 못 와서 난리인데 왜 거꾸로 가느냐"며 말리기도 했다.

기효 엄마는 처음엔 학교의 양해를 얻어 현장체험학습을 하는 셈치고 등교를 시켰다. 그러나 첫날부터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는 곧바로 전학을 시켰다. 우선은 1년 정도 이 학교에 다니게 할 생각이지만, 아이가 원할 경우 더 있을 계획이다.

시골로 전학온 지 2주밖에 안 됐지만 아이들은 벌써 확 달라졌다. 서울에서는 일기에 늘 학원 스케줄을 나열하던 기효는 '태권도' '선생님' '파리' 등으로 매일 제목이 바뀐다. 또 하루 30분~1시간씩 컴퓨터 게임을 즐기던 민주도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재미가 없다"며 컴퓨터를 멀리한다.

기효는 "솔직히 처음에는 서울을 떠나기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산.들판을 맘껏 달리고 뛰노는 시골 학교가 훨씬 재미있고 즐겁다"며 환하게 웃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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