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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도 태평양 국가"…마크롱, 뉴칼레도니아에 가는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태평양 도서국 순방에 나섰다. 프랑스를 ‘태평양 국가’라 부르면서 인도·태평양 지역 내 안보전략 비중을 강화하던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순방을 계기로 자국의 지정학적 존재감을 부각하면서 중국 견제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 등은 마크롱 대통령이 24일 프랑스령인 뉴칼레도니아를 도착하고, 이어 29일까지 인근 독립 국가인 바누아투와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한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뉴칼레도니아를 방문한 건 지난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 프랑스령이 아닌 바누아투 등 태평양 도서국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연합뉴스

佛, 인태 지역 '지정학 정통성' 재정비

디플로매트는 이번 순방이 프랑스의 '역설적 지위'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뉴칼레도니아를 포함해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왈리스 푸투나 등 도서국을 자치령으로 두고 있다. 이곳엔 프랑스 국민 200만여 명이 살고 있고, 군 병력 7000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보유한 나라도 프랑스다.

디플로매트는 “하지만 이 지역에서 프랑스의 외교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면서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순방을 통해 흔들리고 있는 프랑스의 지정학적 정통성을 재정비하는 게 1차 목적”이라고 전했다.

특히 첫 순방지인 뉴칼레도니아는 2018년(독립 찬성 43.3%), 2020년(46.7%), 2021년(3.5%) 세 차례에 걸쳐 프랑스로부터 분리 독립을 위한 국민 투표가 진행됐다. 뉴칼레도니아와 프랑스는 1998년 뉴칼레도니아의 자치권 확대에 대한 ‘누메아 협정’을 맺었다. 2018년 말까지 독립 찬반을 묻는 투표를 시행하고, 부결될 경우 의원 3분의 1 이상 요구가 있으면 2차례 더 투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1·2차 투표 때는 독립 찬성 의견이 40%를 웃돌며 3차 투표에서 독립이 가결될 것이란 전망이 커졌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과 선거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불거지며 친(親) 독립 세력인 원주민 카나크 인들이 투표를 전면 보이콧했다. 결과적으로 뉴칼레도니아의 프랑스령 잔류가 결정됐지만, 분리독립 단체들이 투표 결과에 불복하고 있어 프랑스의 지배력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2018년 마크롱 대통령이 뉴칼레도니아에 방문해 카나크 인들과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018년 마크롱 대통령이 뉴칼레도니아에 방문해 카나크 인들과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뉴칼레도니아에 中 영향력 견제

프랑스는 뉴칼레도니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뉴칼레도니아의 수도 누메아의 항구에는 지난해 8월부터 130m의 부두가 건설 중이다. 프랑스의 핵추진 항공모함 ‘샤를 드골’이 오는 2025년 방문할 예정으로, 프랑스엔 인도·태평양 안보의 핵심 거점이다.

중국도 눈독 들이고 있다. 뉴칼레도니아엔 전 세계 공급량의 10%를 생산하는 수익성 높은 니켈 광산이 있다. 프랑스 국제관계 분석가인 바스티앙 반덴다이크는 “이미 솔로몬제도 등 여러 태평양 도서국이 중국의 위성국가가 됐다”면서 “프랑스라는 보호막이 사라지면 뉴칼레도니아도 중국에 복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디언은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뉴칼레도니아를 방문하는 동안 연설을 통해 양국이 함께 하는 미래상을 제시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각 정당 대표들을 만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분리독립 이슈를 잠재우려 노력할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망했다.

지난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므낫세 소가바레 솔로몬 제도 총리가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므낫세 소가바레 솔로몬 제도 총리가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가 태평양에 있다" 메시지

이어 마크롱 대통령 27일 바누아투, 28일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한다. 프랑스 대통령로서는 첫 방문이다. 프랑스 정부 관계자는 “마크롱 대통령이 두 나라에서 프랑스만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지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격전지로 떠오르면서,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나라들에 프랑스를 ‘균형 잡힌 강대국’이자 이들이 손잡을 수 있는 ‘실용적이고 새로운 선택지’로 내세우겠단 의도다. 엘리제궁 역시 “(두 나라) 방문의 목적은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프랑스를 (핵심 플레이어로) 재참여시키는 것”이라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호주가 프랑스와의 잠수함 건조 계약을 취소하고 미국·영국과 오커스(AUKUS)를 결성한 것을 계기로 독자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세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칼레도니아 주재 호주 총영사를 역임한 데니스 피셔 호주국립대 유럽연구센터 객원연구원은 “이번 마크롱의 순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면서 “태평양 도서국에 ‘프랑스가 태평양에 있다’는 메시지를 직접 보여주기 위한 행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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