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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는 0원 “쫄면에 침”은 600만원...이런 벌금 차이, 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인터넷 댓글·후기, 유무죄 쟁점은

당신의 법정

 “사이코패스, 고학력 살인마.” 이런 비난을 받은 성형외과 원장이 6240만원의 손배소를 냈지만 환자는 한 푼도 물어줄 필요가 없다는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쫄면에 침 뱉어 나간다”고 배달앱 리뷰를 쓴 손님은 가게에 600만원을 물어줘야 합니다. 주방·홀 CCTV까지 뒤져 수사한 결과지요. 흔히 쓰는 리뷰·후기, 그 치명적 차이를 판례로 소개합니다.

당신의 법정

당신의 법정

#1 ○○아파트 어린이집이 4월에 오픈했는데 원장님이 아이들 간식도 딸기 한두 개, 반찬도 엄청 조금 나눠서 주고 (…) 보내기에 마음이 걸리는 부모 중 한 명입니다.

#2 (코 재수술 부작용을 겪고 있고, 해당 병원이 브로커를 이용해 홍보한다는 내용과 함께) 진짜 사이코패스 같아요. 고학력 합법적 살인마인가요. 하 진짜 상X라이.

모두 실제 고소당한 사례다. 어린이집 원장은 1억1244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성형외과 원장은 6240만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결과는? 위 글쓴이가 물어줄 돈은 8444만원(의정부지법 2월 선고), 아래 글쓴이는 0원(서울중앙지법 11월 선고)이 나왔다.

무슨 차이인가? 소비자로서 인터넷에 남긴 후기가 법정에 왔을 때 선고 결과를 가르는 차이는 ‘비방의 목적’ 여부다. 그런데 글쓴이의 마음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비방 목적인지는 어떻게 판단하는 걸까?

“리뷰 안 적었다고 쫄면에 침 뱉어서 나가고”→명예훼손 ○

“리뷰 안 적었다고 돈가스 소스도 안 보내네요”→명예훼손 ?

2021년 이종면(가명)씨는 ‘배달의민족’ 애플리케이션(앱)을 켜 한 식당에서 쫄면과 돈가스를 주문하고 무료 쫄면을 요청했다. 이 식당은 ‘리뷰 약속 시 무료 쫄면’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종면씨는 이전에 무료 쫄면만 받고 리뷰를 쓰지 않았다. 가게 주인 A씨도 이걸 알고 이번엔 무료 쫄면을 안 보냈는데 종면씨가 이런 리뷰를 올린 것이다.

종면씨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로 기소됐는데, ‘침 뱉어서 나가고’는 명예훼손으로 인정돼 벌금 600만원이 선고됐다. 다만 ‘소스도 안 보내네’는 무죄라는 판단이 나왔다(지난해 9월 울산지법 선고). 가게에서 쫄면에 침을 뱉었단 건 거짓이었고, 돈가스 소스가 빠졌던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거짓 리뷰는 비방의 목적으로 강력하게 연결되고 엄히 처벌받을 수 있다. 반면에 진실한 사실이거나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비방 글’이 아니란 판단이 나온다. ‘진실한 사실’이란 전체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는 의미로, 세부적으로 진실과 약간 차이 나거나 과장된 표현은 괜찮다(대법원 2002년 선고).

코 성형수술 후기에서 ‘살인마’ 같은 다소 거친 표현이 있었음에도 불법행위로 인정되지 않은 건 글 내용의 상당 부분이 (믿을 만한)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은 ▶본인이 겪는 수술 부작용과 관련된 내용은 주된 부분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고 ▶해당 인터넷 카페에서 같은 사람이 시기를 달리해 해당 병원 관련 긍정적인 글을 작성하는 등 글쓴이로서는 브로커를 고용해 홍보하고 있다고 믿을 만한 사정이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너 비방하려고 글 썼지?’란 의심을 씻고자 할 때 ‘아니야, 난 사실을 썼어!’라고 항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글이야!’는 더욱 강력한 항변이 된다. 코 수술 후기는 “브로커 부분은 일부 성형외과의 행태 등으로 사회적 문제와 관련돼 있고 공적 관심사에 대한 것”이고, 전반적인 글의 취지가 “코 수술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정보”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글로 인정받았다.

반면에 ‘어린이집 비방 글’의 경우 글쓴이는 들은 말을 옮긴 것이라 주장했지만 법원은 비방 목적이 강하다고 판단했다. 여기에는 글쓴이의 배우자가 해당 어린이집 전직 교사로, 퇴사 과정에서 실업급여 문제로 원장과 갈등이 있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의정부지법은 “최소한의 사실관계도 확인해 보지 않은 점 등에 비춰 착오로 보기 어렵고, 오히려 비방의 목적이 있어 보인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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