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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과학탐구2 과목 표준점수 못 낮추면 수능 ‘로또’ 될 우려”

중앙일보

입력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선택과목별 유불리 복병 만난 수능

“학교 친구들 사이에 수능 과학탐구 선택과목을 뭐로 정할지를 놓고 걱정을 많이 합니다. 이미 물리나 화학, 생명과학 등 과학탐구1 과목을 공부해왔는데 최근 수능 모의평가를 치르고 난 뒤 과학탐구2 과목으로 바꿔야 하는지 헷갈려서예요. 입시가 얼마 안 남았는데 이제 와 어려운 과목을 다시 공부할 수도 없는데….” (서울 강남구 광역자사고 3학년 이모군)

 “수능에서 선택 과목별로 이렇게 표준점수 차이가 크게 난다면 열심히 공부한 게 소용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요? 과거 영재고 입시나 올림피아드 준비를 해서 과탐2 과목에 자신이 있는 친구들은 이미 갈아탔어요. 이런 식이면 대입이 ‘로또’와 뭐가 달라요?.” (서울 송파구 일반고 3학년 박모군)

 지난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고3 학생들의 반응이다. 다음달 말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 접수가 시작되는데 수험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시한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과학탐구2 과목의 표준점수가 과학탐구1 과목보다 크게 높게 나오면서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기 때문이다.

모의수능서 선택 과목간 격차 최대  

 표준점수는 개인 점수가 전체 응시자의 평균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점수다. 시험이 어려워 평균이 낮으면 표준점수 최고점이 올라간다. 시험이 어렵지 않더라도 응시자의 전반적인 학업 역량이 낮아 평균이 낮게 나와도 마찬가지 현상이 발생한다. 자연계 학생들은 수능에서 과탐 두 과목을 골라 치른다. 그런데 평가원이 발표한 지난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 과탐2 과목의 표준점수 최고점이 과탐1 과목보다 17~27점이나 높게 나왔다. 수능이 도입된 이래 과탐1, 2 과목 간 격차가 이렇게 벌어진 것은 초유의 일이다.

 지구과학1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71점이었는데, 지구과학2에선 98점이었다. 마찬가지로 화학1은 71점인데 비해 화학2는 93점이었다. 물리와 생물 과목에서도 1과목과 2과목의 점수 차이가 각각 17점과 24점에 달했다. 이런 격차가 얼마나 큰지는 지난해 치러진 2023학년도 수능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지난해 수능에서 과탐1, 2과목의 차이는 1~6점에 그쳤다. 물리와 생물에선 1, 2과목의 차이가 1점에 불과했고 화학은 2점, 지구과학이 가장 컸어도 6점이었다.

 이랬던 점수 차이가 30점 가까이 벌어지게 된 것은 서울대가 자연계 학과 지원자에게 최소 과탐2 한 과목을 의무적으로 치르게 했던 제도를 올해부터 폐지했기 때문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서울대가 과탐2 의무 응시를 없애면서 자연계 상위권 학생들이 과탐1 과목으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과탐2 응사자 군에 변화가 생겼다”며 “과탐2 과목들의 평균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면서 표준점수 최고점이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표준점수 반영하는 대학 유불리 극심  

 실제 수능에서 선택과목 간 격차가 이렇게 발생한다면 대입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각 대학은 정시모집에서 수능 점수를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한다. 서울대를 비롯해 여러 대학이 표준점수를 그대로 쓴다. 대학에 따라 수학 등 일부 과목에 가중치를 두긴 하지만 표준점수 자체가 합산되기 때문에 과탐2 과목에서 20점가량 벌어지면 다른 과목에서 만회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입시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연세대·고려대 등 상당수 대학은 변환 표준점수를 쓴다. 변환 표준점수는 수능 성적표에 기재되지는 않지만 선택과목 간 유불리를 줄이기 위해 각 대학이 백분위 기준으로  보정하는 점수다. 표준점수를 그대로 반영하는 대학에 비해 격차가 많이 줄어들지만 과탐2 과목의 평균이 너무 낮을 경우 백분위에서도 과탐1 선택 수험생이 불리해지는 현상은 피할 수 없다.

 사실 이런 현상은 이미 4월 모의평가에서 확인됐다. 당시 시험에서 화학2, 지구과학2, 생명과학2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나올 수 있는 가장 큰 수치인 100점이었다. 물리2도 98점으로 추정됐다. 4월 모의평가는 평가원이 내지 않지만, 수능을 출제하고 과목 간 난이도 조정을 맡는 평가원이 낸 6월 모의평가에서까지 차이가 벌어지자 이 사안이 올해 정시모집의 최대 난제로 떠올랐다.

6월 모의평가 과탐2 표준점수 최고점, 과탐1보다 17~27점 높아
지난해 수능 격차 1~6점, 서울대 과탐2 의무 폐지로 파장 커질 듯
교육평가원 "9월 모의평가와 실제 수능에서 차이 줄이려 노력 중"
과탐2 '문과침공' 부추길 소지, 표준점수 쓰는 의대 입시도 영향권

 과탐 선택 과목의 유불리가 이런 정도로 벌어지면 자연계 상위권 수험생들의 쏠림 현상이 우려될 정도로 선호도가 높은 의대 입시에도 영향을 미친다. 올해 전국 의대 중 표준점수를 그대로 사용하는 대학은 서울대·울산대·건국대·부산대 등 13곳에 달한다. 실제 수능에서도 과탐2의 표준점수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과탐 한 과목의 성적만으로도 합격 여부가 판가름 날 여지가 있다.

 자연계 수험생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른바 이과생의 ‘문과 침공’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수능 선택과목별 점수 차이는 이미 국어와 수학 영역에서 나타났다. 지난해 수능에서 수학의 표준점수 최고점이 국어보다 11점 높았었다. 당시 “국어를 다 맞아도 수학에서 삐끗하면 치명타”라는 말이 나왔던 이유다.

 그런데 올해 역시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수학이 국어보다 15점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탐2 과목의 표준점수가 치솟자 일선 교사들은 “수학의 비중이 높아진 것만도 문과 침공 현상을 낳았는데, 과탐2로 날개를 달아준 것”이라거나 “지난해 과탐2로 수능을 봤던 N수생이 올해 과탐2를 선택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일부 사교육업체는 “중위권 이하 수험생은 과탐2를 선택한 뒤 아는 것 몇 개 맞추고 나머지는 모두 한 번호로 찍고 나와도 과탐1보다 표준점수를 높게 받을 것”이라거나 “서울대 정시 인문계 침공을 위해선 자연계 학생들이 필수 응시 과목인 제2외국어를 3번으로 찍고만 나와도 표준점수 차이를 이용해 합격할 수 있다”고 컨설팅해주기도 한다. 대입이 운과 요행의 영역이 될 지경이다.

킬러 문항밖 '시한폭탄' 터질 우려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는 본지에 “일부 대학의 제도 변화 등으로 인해 지난해 6월 모의평가보다 중위권 이상 학생들의 과탐2 응시가 줄어들어 표준점수 최고점이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6월 모의평가에서 나타난 학생들의 학업 수준 및 과탐 과목 선택 동향, 졸업생들의 참여 정도 등을 반영해 9월 모의평가 및 수능에서는 선택과목별 표준점수 최고점 차이를 축소할 수 있도록 출제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 수능에서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평가원의 이런 계획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서울대 입학본부에서 입시를 담당했던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과 교수는 “과탐2 표준점수가 너무 높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의도적으로 쉽게 출제해 평균을 높여야 하는데 쉽게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며 “이 상황을 보정하려고 문제를 과도하게 쉽게 내면 오히려 표준점수가 너무 떨어져 반대 현상이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선택형 수능이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대입제도 전반에 대한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발언 이후 정부가 국어 등 수능 과목별 난이도 조정과 사교육업체 세무조사 등에 열심이지만 올해 수능의 시한폭탄은 엉뚱한 곳에서 터질지 모른다.

"선택형 수능 대신 공통 영역 9등급 절대평가로"

서울대 입시에 오랫동안 관여했던 김경범(사진) 서울대 교수는 과학탐구2 과목의 표준점수 최고점 상승 현상에 대해 “선택형 수학능력평가를 개선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육과정평가원이 실제 수능에서 과학탐구1, 2 과목 간 격차를 조정할 수 있을까.

“과탐2 때문에 부각된 것일 뿐 이런 문제는 이미 있었다. 지난해 수능에선 국어보다 수학의 표준점수 최고점이 높아 유불리가 나타났다. 선택형 수능을 없애고 공통 영역으로 시험을 보도록 바꿔야 예측 가능성이 커진다.”

-서울대가 정시모집 자연계 과탐2 최소 한 과목 응시 제도를 없앤 영향이라는데.

“서울대의 제도 변화에 따라 심화과목인 과탐2를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고교 교육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문제다.”

-대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앞으로 대학들은 학과 단위로 뽑는 대신 모집단위를 크게 바꿀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만큼 대입 제도 전반을 고민할 시점이다.”

-2025학년도부터 고교 학점제가 도입되면 고1만 상대평가이고 2학년부터 성취평가로 바뀌는데.

“고1을 마치고 원하는 대학에 갈 내신이 나오지 않는 학생들은 2학년부터 수능 준비에 매달릴 텐데, 학점제와 고교 교육과정이 어떻게 작동을 할 수 있겠나.”

-대입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고 보나.

“수시모집을 없애고 새로운 수능을 만드는 게 방법이다. 새 수능은 공통 응시 영역만으로 9등급 절대평가제를 해야 한다.”

-대학이 우수 학생을 가려낼 수 있겠나.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내신은 고1밖에 없으니 그걸 보고, 2~3학년 동안의 학업 역량은 수능과 학생부로 평가하면 된다. 대학은 면접도 하니 충분히 가능하다.”

글=김성탁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