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하다. F&B산업에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가는 스타트업 이야기다. 로컬에서 먹거리 혁명을 일으키고, 소비자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가치 소비를 유도하고, 소외된 이웃과의 동행을 이끈다. 이들이 만들어낸 작은 틈이 세상을 바꾸는 큰 흐름으로 이어진다. 쿠킹은 F&B 흐름을 바꾸는 창업가를 소개하는 [뉴노멀을 만드는 F&B 리더들]을 연재한다.
사과 과즙의 달콤함이 풍부하게 느껴지는데, 알코올 도수도 적당하고 너무 맛있더라고요. 한국엔 맛있는 사과가 많은데, 왜 이런 술(사이더)이 없을까 생각했어요.”
로컬 크래프트 사이더하우스 ‘댄싱사이더’의 이대로(34) 대표는 사이더의 매력에 빠진 10년 전 그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떠올린다. 대학생 때부터 대가의 인터뷰나 자서전을 읽으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과 성공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하지만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 자신의 에너지를 쏟을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2013년 찾은 미국 보스턴의 양조장에서 운명적 존재를 만났다. 바로 사이더다. 한국에선 사이더하면 설탕을 넣은 탄산음료를 떠올리지만, 사실 사이더는 사과를 발효해 만든 과실주다. 사이더의 맛과 크래프트 사이더 시장이 급성장하던 당시 미국에서 빠른 속도로 사업 규모를 키워가는 친구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그는 창업을 결심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인턴부터 차근차근 사회 경험을 쌓았다. 5년간 금융업계에서 일하며 한국 사회의 구조를 익히고, 부지런히 F&B 업계 관련 시장조사를 했다. 그리고 서른이 된 2018년 댄싱사이더를 창업했다. 두 명의 공동창업자로 시작한 회사 직원은 25명으로 늘었고, 평균 10개의 사이더를 제조·판매하고 있다. 뉴욕 국제 사이더 품평회 NYICC를 비롯해 국내외 대회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품질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창업가 선배로서, 이 대표는 “절대 창업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대표를 만나 창업가로서의 삶과 주류 업계 현황, 사이더의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 창업을 말리는 이유는.
- 창업하려면 ‘신념’이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돈을 벌어볼까'라는 마음으로 사업에 뛰어든다. 돈을 벌겠다는 것은 목적이지, 신념이 될 수 없다. 신념이 없으면 시장 상황이나 내부 문제 등 다양한 어려움에 맞닥뜨리는 순간, 마음이 흔들린다. 결국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타협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신념은 굳게 믿는 마음이다. 돈을 버는 행위를 넘어, 그 돈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명확한 신념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다.
-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댄싱사어디 창업가로서의 신념은.
- 2018년 처음 쓴 사업기획서와 같다. ‘사이더 주종을 한국에 알려, 국내 소비자에게 사이더라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며,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해외에서 접한 좋은 것을 보면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아보카도 같은 식재료부터, 맛있는 샌드위치 브랜드, 휴대전화, 음악까지 다양했다. 사이더를 맛봤을 땐 ‘이렇게 맛있는 술이라면 한국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국의 문화나 미식이 빠르게 성장하는데도, 주류 시장은 소주와 맥주의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보고, 바꿔보고 싶었다.
- 연고가 없는 충주를 택한 이유는.
- 로컬에서 진정한 크래프트를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330㎖ 사이더 한 병에 두 개의 사과가 들어간다. 사과의 공급이 원활해야 가능한 일이다. 충주는 워낙 사과로 유명하다. 다행히 젊은이들이 지방에 와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주민뿐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응원하고 도와주려고 한다.
- 사이더가 미국이나 영국의 제품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 댄싱사이더가 만든 사이더는 한국 술이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는 몰트와 홉이 대부분 수입산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나는 사과를 착즙하고, 지역 농산물을 블렌딩해 만든다. 지역마다 그곳만의 식문화가 있는데, 한국에서 나는 사과로 만드니까, 한국 식문화와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이다. 한국의 사과 시장은 부사 위주로 형성돼 있는데, 이 부사는 특유의 단맛 때문에 해외에서는 디저트 애플로 불린다. 그래서 설탕이나 인공 재료를 넣지 않아도 맛있다.
- 주요 고객은.
- 20~30대, 그리고 여성이 많다. 일반적인 주류와는 셀링 포인트가 다르다. 특히 댄싱사이더의 소비자는 세계대회 수상 이력을 보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 술병을 봤을 때, 예쁘거나 귀여우면 산다. 마음에 들면 SNS에 인증한다.
- 댄싱사이더의 라벨이 상당히 독특하다.
- 한국의 사과로 만든 애플사이더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라벨 디자인의 캐릭터나 배경, 유머적인 요소를 우리 민화에서 찾았다. 맛에 따라 민화의 어떤 캐릭터가 어울리지 고민했다. 예를 들어 부사로 만든 달콤한 사이더인 '스윗마마'는 소나무 옆에 선 금빛 하이힐을 신은 엄마 오골계가 동전 닢을 흘리는 모습을 그렸는데, 20세기 잘나가는 워킹맘을 표현하고 싶었다. 반대로 댄싱파파는 아기 호랑이를 등에 업고 있는 아빠 호랑이를 담았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요즘의 아버지 모습을 표현했다.
- 게임 회사부터 요리연구가까지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는데, 기준은.
- 꼭 F&B 브랜드와의 협업을 고집하지 않는다. 게임회사 넥슨처럼 우리를 전혀 모를 것 같은 소비자가 모여있는 카테고리의 브랜드는, 우리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니까. 반대로 사이더와 페어링 하면 좋은 푸드 관련 브랜드도 훌륭한 파트너다. 무엇보다 댄싱사이더와 핏이 잘 맞는지도 살핀다. 최근 와디즈 펀딩을 통해 선공개한 김형석 프로듀서의 버츄얼 밴드 사공이호의 데뷔 1주년을 기념해 협업한 ‘사공이호’가 대표적이다. 버츄얼 밴드 특유의 톡톡 튀는 개성과 독특한 세계관, 여름이나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사이더와 잘 어울렸다. 댄싱사이더 최초의 체리사이더로, 체리의 달콤한 맛에 이어, 뒤따라오는 은은한 솔잎 향의 밸런스가 좋다.
- 창업 5년 차인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뭔가.
- 제조부터 판매, 마케팅 유통, 자금 확보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초기엔 제조업의 특성상 원료 수급부터 원가 관리, 원하는 퀄리티를 유지하기 모두 쉽지 않았다. 규모가 작은 회사가 마케팅 활동에만 집중하기도 어려운 데다, 사이더 자체가 생소하다 보니 이를 알리기도 여전히 어렵다.
- 댄싱사이더만의 해결법은.
- 처음엔 앰배서더 커뮤니티 등 여러 시도를 했는데 회사의 규모가 작아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제조업은 역시 품질로 말해야 하니까, 제품 개발과 품질 향상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한다. 자사몰이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온라인 판매를 통해 취합되는 데이터와 의견, 탭하우스나 행사 등 오프라인에서 들은 내용을 내부에 공유하고 소통하며 개선한다. 이외에도 고객이 댄싱사이더라는 브랜드와 애플사이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행사나 페스티벌에 나가기도 한다.
- 조직 구성원들과는 어떻게 소통하고 가치를 공유하는지 궁금하다.
- 조직은 직원이 실수를 해도, 대표인 내가 실수를 해도 서로 기다려줄 수 있는 신뢰가 필요하다. 또한 회사의 신념과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우리는 술이라는 물질적인 것과 브랜드라는 비물질적인 것을 동시에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제조·마케팅·영업·인사·재무 등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신규 입사자에게 수제맥주 회사 브루독(BrewDog)의 공동 창업자, 제임스 와트의 책『창업의 시대, 브루독 이야기』을 선물한다. 이책엔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지은이의 생각이 잘 정리돼 있어서, 도움이 된다.
- 앞으로 계획은.
- 브랜드 색을 견고하게 만들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오래도록 살아남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 10월엔 4종의 사이더를, 8월 중순엔 사과를 증류시켜 만든 애플 브랜디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댄싱 22’라는 이름의 브랜디는 처음 선보이는 사과 증류주로, 깔끔하고 가성비가 좋다. 그동안 애플사이더 전문 양조장으로서 쌓아온 노하우로 어떻게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고민해왔는데, 사과 증류주라면 기존 우리의 기술과 노하우를 활용해 우수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창업을 결심했을 때부터 단시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부터 매년 한국 사람의 1%에게 사이더를 알리면 10년 후엔 10%의 사람이 댄싱사이더를 알지 않을까.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