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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교사 동료 “일부 학부모 ‘나 누군지 알지’ 압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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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호 08면

“선생님 고생 많으셨어요.” 21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정문 추모공간에 극단적 선택을 한 선생님을 추모하는 한 학생의 메모가 붙어 있다. 이곳에는 전날부터 동료 교사들이 보낸 근조 화환 수백개가 담장을 따라 길게 놓여 있고, 추모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도 빼곡하게 붙어 있다. [뉴스1]

“선생님 고생 많으셨어요.” 21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정문 추모공간에 극단적 선택을 한 선생님을 추모하는 한 학생의 메모가 붙어 있다. 이곳에는 전날부터 동료 교사들이 보낸 근조 화환 수백개가 담장을 따라 길게 놓여 있고, 추모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도 빼곡하게 붙어 있다. [뉴스1]

21일에도 서울 서이초에는 추모객의 방문이 이어졌다. 전날과 달리 교내에 추모 공간이 마련돼 목례를 하고 꽃을 놓는 조문객들이 줄이었다. 1500개가 넘는 근조화환이 학교를 둘러쌌고 학교 정문에 붙어있던 세상을 떠난 교사의 영면을 비는 메모 글은 담장을 넘어 내부 곳곳에 붙어있었다. 전날 하루 약 2300명이 서이초를 찾아 조문한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조용하던 학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갑작스러운 조문으로 잠시 소란해지기도 했다. 관계자와 10여분 간의 비공개 면담 후 학교를 나선 조 교육감에게 “교사를 지켜라”며 항의하는 추모객도 있었다. 조 교육감은 “일부 학부모의 갑질 민원 제기(의혹)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해보겠다”며 “저희도 교권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참담한 결과가 있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 조 교육감의 발언을 들은 한 초등 교사는 “조 교육감이 ‘교사들이 일과 외 다른 일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언급했지만 진정성 없는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학교폭력 업무 등은 방과 후에 따로 모이는 식으로 가욋일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과를 따지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것이다.

시교육청이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한 분향소에도 추모객이 끊이지 않았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서울 서초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교원들과 ‘교권 확립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 참석한 직후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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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사노동조합는 이날 서이초 전·현직 교원들의 제보를 공개하며 “고인이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숨진 교사와 함께 근무했던 A교사는 “고인이 학급에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어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B교사는 “학생끼리 다툼을 놓고 학부모가 고인의 개인 폰으로 수십 통의 전화를 해서 고인이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번호를 바꿔야겠다. 소름끼친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말했다. 서이초에서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했던 C교사는 “학교폭력 민원을 넣는 학부모 대부분이 법조인이었으며 ‘나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등의 말을 하는 학부모도 있었다”고 밝혔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서이초 뿐 아니라 전국의 학교 현장에서 ‘학부모 갑질’로 교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2년 전에도 부산에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신규 선생님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지난달 30일에는 서울 양천구의 공립 초등학교 교실에서 6학년 담임 교사가 제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교사노조에 따르면 이 학생은 교사의 얼굴과 몸을 여러 차례 가격·발길질 했고, 교사의 몸을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가위와 탁상 거울을 교사에게 던지기도 했다.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은 이 교사는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교단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지난달 23일에도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 담당 교사가 학생 D양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다른 학생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주의를 주자 의자에 앉아 있던 이 교사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잡아당겨 넘어뜨렸다. 이 교사는 목 부위에 큰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지난 4월부터 두달간 이어진 D양의 폭행으로 이미 치료를 받는 중이던 이 교사는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교사노조는 “학부모는 학생이 선생님을 싫어해서 한 행동이라며 책임을 교사에게 돌렸다”고 전했다.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하면서도 대응할 경우 학생이나 학부모가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아 계속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교사들의 설명이다. 교사노조는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공교육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교권 추락이 심각하다”며 “선생님들이 아동학대 신고로 괴로워하다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일이 없도록 여야가 하루 속히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촉구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안개정안은 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아동학대처벌법 등 8건이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정서적·신체적 아동 학대, 방임 행위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아동학대 범죄 처벌법 개정안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신고와 관련해 지자체·수사기관 조사 전 담당 교육청의 의견을 청취하는 단서 조항을 신설하는 등 교원 보호 장치를 두도록 했다.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에는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 교원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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