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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 안 왔으면 둥둥 떠내려갔지"…할머니가 고마워한 사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당에 물이 들어찬 줄도 모르고 자고 있었어. 경찰 양반이 안 왔으면 둥둥 떠내려갔을 거야. 미안하고 고마워.” 지난 15일 0시쯤 침수 피해를 입은 이천시 장호원읍 오남2리 주민 최영분(88) 할머니는 닷새 만인 20일 낮 자신을 등에 업고 구출해준 이천경찰서 장호원파출소 경찰관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일 0시15분쯤 침수된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오남2리 마을에서 최영분(88) 할머니가 자택에서 잠을 자다 출동한 고재중 이천경찰서 장호원파출소 순찰2팀장 등에 업혀 구출됐다. 닷새 뒤인 15일 낮 마을 입구에서 고 팀장과 최 할머니가 구조 당시 모습을 재현했다. 손성배 기자

지난 10일 0시15분쯤 침수된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오남2리 마을에서 최영분(88) 할머니가 자택에서 잠을 자다 출동한 고재중 이천경찰서 장호원파출소 순찰2팀장 등에 업혀 구출됐다. 닷새 뒤인 15일 낮 마을 입구에서 고 팀장과 최 할머니가 구조 당시 모습을 재현했다. 손성배 기자

시간당 10~20㎜의 강한 비가 내려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청미천에 홍수주의부가 내려진 15일 0시15분쯤, 장호원파출소 순찰2팀 고재중 팀장(경감)은 경기남부경찰청 112상황실의 ‘코드1’ 지령을 받고 오남2리로 달려갔다. 고 팀장과 부사수 최재원 경장은 제방 둑에 순찰차를 세워두고 거동이 불편한 홀몸 노인이 거주하는 집을 우선 수색했다. 14일에만 120.9㎜의 비가 내려 저지대인 오남2리 80가구 중 절반 가량의 집에는 마당까지 물이 들어찬 상태였다.

지난 10일 0시15분쯤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청미천 인근 오남2리 마을이 물에 잠겼다. 이 마을에 사는 최영분(88) 할머니는 대피 안내 방송을 듣지 못하고 잠을 자다가 출동한 장호원파출소 순찰2팀 고재중 팀장 등에 업혀 구조됐다.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지난 10일 0시15분쯤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청미천 인근 오남2리 마을이 물에 잠겼다. 이 마을에 사는 최영분(88) 할머니는 대피 안내 방송을 듣지 못하고 잠을 자다가 출동한 장호원파출소 순찰2팀 고재중 팀장 등에 업혀 구조됐다.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둑 바로 아래 거주하는 서주분(85) 할머니 집엔 침대 매트리스까지 물이 차 할머니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고, 최 할머니는 마을회관에서 나오는 대피 안내 방송을 듣지 못해 거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파출소 직원들은 장화를 신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얼른 옷을 챙겨 입고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고 팀장은 대문이 잠긴 홀몸 노인들의 집 담벼락을 넘어 창문을 열고 할머니들을 등에 업어 구출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침수 지대를 헤집고 다닌 지 30여분 만에 홀몸 노인 5명을 집에서 모두 구출했다. 침수 피해·우려 가옥 주민 30여명이 마을회관으로 대피 완료했다는 무전도 때마침 들렸다. 고 팀장은 “얼른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내 키만 한 담벼락도 훌쩍 넘었다”고 말했다. 고 팀장은 2011년 10월 창설된 옛 경기경찰청 직할 남한강경찰대인명구조 요원으로 2016년까지 재직했고, 대한적십자사 라이프가드와 대한인명구조협회 자격증을 보유한 수난 구조 전문가다.

15일 청미천에 홍수주의보가 발령된 가운데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오남2리 마을이 물에 잠겼다.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15일 청미천에 홍수주의보가 발령된 가운데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오남2리 마을이 물에 잠겼다.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닷새 만에 다시 만난 고 팀장에게 최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항상 건강하시고 부자 되시라”는 덕담을 건넸다. 고 팀장은 “무섭거나 힘들거나 도움받을 일이 있다 싶으시면 112에 신고하시라”고 답했다. 고 팀장은 최 할머니와 구출 당시 모습을 재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향인 전북 정읍에 홀로 계신 85세 노모가 떠올랐다고 한다.

이번 침수 피해는 마을 배수 펌프장 용량을 넘어설 정도로 집중적으로 비가 쏟아지고 청미천 수위가 높아지면서 발생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원광희 장호원파출소 소장은 오남2리 마을에 물난리가 난 것은 50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15일 침수 당시 현장 활동을 지휘한 원 소장은 “50년 전 제방 둑이 낮았을 당시에 청미천이 범람해 인근 학교로 대피했던 기억이 있다”며 “마을 주민들이 한 분도 다치시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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