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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집어삼킨 하천과 불과 5m...산사태 대피소도 '불안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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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경북 예천군 은풍면 금곡1리경로당. 산사태취약지역 대피소로 지정된 이곳은 집중호우로 범람한 하천과 불과 5m 정도 떨어져 있다. 지난 15일 폭우가 내렸을 때 경로당 사방이 침수됐다. 김정석 기자

18일 경북 예천군 은풍면 금곡1리경로당. 산사태취약지역 대피소로 지정된 이곳은 집중호우로 범람한 하천과 불과 5m 정도 떨어져 있다. 지난 15일 폭우가 내렸을 때 경로당 사방이 침수됐다. 김정석 기자

“마을회관 뒷산에도 커다란 금이 가있는데 불안해서 어떻게 여기서 밤을 지새울 수 있겠습니까?”

18일 오전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2리마을회관.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난 진평리 주민이 대피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홍화영(72·여)씨는 “주민들은 낮에는 마을회관에 머무르지만, 밤이 되면 읍내에 있는 숙소를 가든지 지인 집으로 간다”며 이같이 말했다.

홍씨는 “지난 15일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산사태가 났을 때 많은 주민이 이곳으로 대피했다. 마을회관 앞에 산에서 떠내려온 나무나 구조물 등이 쌓여 급류를 막아줘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마을회관도 산사태에 휩쓸려 내려갔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대피소 지정된 경로당도 사방 침수돼 고립”

이곳에서 자동차로 20분쯤 떨어져 있는 예천군 은풍면 금곡1리경로당도 사정은 비슷했다. 경로당에서 만난 김명옥(88)씨는 “새벽에 비가 쏟아져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전봇대가 급류에 휩쓸려 가면서 전기가 모두 나갔다”며 “주민 일부는 경로당으로 대피했지만, 경로당 주변이 금세 침수돼 오도가도 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18일 경북 예천군 감쳔면 진평2리마을회관. 산사태취약지역 대피소로 지정된 이곳은 지난 15일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까스로 피해를 면했다. 김정석 기자

18일 경북 예천군 감쳔면 진평2리마을회관. 산사태취약지역 대피소로 지정된 이곳은 지난 15일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까스로 피해를 면했다. 김정석 기자

18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2리마을회관 인근이 산사태로 초토화된 모습. 김정석 기자

18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2리마을회관 인근이 산사태로 초토화된 모습. 김정석 기자

진평2리마을회관과 금곡1리경로당은 모두 산림청이 지정한 ‘산사태취약지역 대피소’다. 산사태 취약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이 유사 시 대피할 곳이다. 산사태정보시스템에서 리(里) 단위로 대피소를 검색할 수 있다.

지난 15일부터 쏟아진 집중호우로 사망·실종자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마을 대피소를 살펴본 결과 대피소 역시 하천 범람이나 산사태에 취약한 곳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천 범람에 직접 노출되거나, 산사태로 초토화된 현장에 대피소가 인접한 게 상당수였다.

산사태 현장서 불과 10여m 떨어진 대피소

대피소가 마련된 지경터노인회관으로 대피한 은풍면 금곡리 한 주민은 “폭우가 내릴 때 건물 옆으로 1m가량 깊이 물길이 생겨 급류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밖에 감천면 벌방리 노인복지회관은 산사태로 마을이 휩쓸려 내려간 곳과 불과 10여m 떨어졌고, 금곡1리경로당도 5m 정도 바깥에 하천 범람으로 도로 일부와 다리 난간이 유실된 상태였다. 벌방리에서는 이번 산사태로 2명이 실종됐다.

18일 경북 예천군 감쳔면 진평2리마을회관. 산사태취약지역 대피소로 지정된 이곳은 지난 15일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까스로 피해를 면했다. 마을회관 뒤로 산사태 가능성이 있는 언덕이 위치해 있어 주민들은 밤마다 경로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머무르고 있다. 김정석 기자

18일 경북 예천군 감쳔면 진평2리마을회관. 산사태취약지역 대피소로 지정된 이곳은 지난 15일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까스로 피해를 면했다. 마을회관 뒤로 산사태 가능성이 있는 언덕이 위치해 있어 주민들은 밤마다 경로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머무르고 있다. 김정석 기자

게다가 실종자 3명이 발생한 은풍면 은산리는 따로 산사태취약지역 대피소가 지정돼 있지 않았다.

행정안전부 산사태 행동요령에 따르면 산사태취약지역에 사는 주민은 산사태 경보 발령 시 대피소로 반드시 대피하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집중호우로 하천 범람이나 산사태가 일어났을 때 이들 대피소 역시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사태 취약지역 대피소는 원칙적으로 토석류가 흘러내리는 확산 범위 바깥, 침수 피해를 피할 수 있는 고지대 등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한다”면서 “대피소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인근 학교 등 임시 거주 시설을 정해 주민을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수도·전기 끊긴 대피소…“사흘 만에 복구”

대피소 안전과 별개로 이재민이 머무르고 있는 경로당·마을회관 등 대피소 환경 개선도 시급하다고 한다. 집중호우로 전기와 수도 시설이 파괴된 지역은 대피소에 물과 전기가 끊겨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좁은 장소에 이재민 수십명이 머무르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각종 감염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18일 오전 경북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 지경노인회관. 산사태취약지역 대피소로 지정돼 있는 이곳은 지난 15일 집중호우가 내렸을 때 노인회관 옆으로 큰 물길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김홍범 기자

18일 오전 경북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 지경노인회관. 산사태취약지역 대피소로 지정돼 있는 이곳은 지난 15일 집중호우가 내렸을 때 노인회관 옆으로 큰 물길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김홍범 기자

진평2리마을회관에 대피한 한 주민은 “폭우가 쏟아진 지난 15일부터 어제(17일)까지 사흘간 수도와 전기가 끊겨 난감했다. 지금도 수돗물에 황토가 섞여 나오는 상황”이라며 “장마나 태풍을 앞둔 시기에는 대피소 운영이 즉시 이뤄질 수 있도록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기상이변에 따른 재해 관리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17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 주재 집중호우 대처 점검 회의에서 “단기간 기록적 폭우와 평균을 훨씬 넘어서는 폭우가 지속돼 예측하기 힘든 신종 재난이 발생한 만큼 중앙정부와 함께 합동 연구조사를 하고, 대책을 모색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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