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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의 마법, 사라져가는 문화유산 되살리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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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호 18면

이탈리아 ‘데카스텔리’의 전통문화 계승

(왼쪽부터) 이탈리아 금속 명가 ‘데카스텔리’ 부대표 프란체스카 첼라토, 글로벌 마케팅 책임자 페데리카 벨라토. 최영재 기자

(왼쪽부터) 이탈리아 금속 명가 ‘데카스텔리’ 부대표 프란체스카 첼라토, 글로벌 마케팅 책임자 페데리카 벨라토. 최영재 기자

120여 개의 섬과 177개의 운하, 391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베니스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수로를 따라 아름다운 광장과 미술관, 오래된 성당 등 볼거리가 즐비하다. 하지만 현재 베니스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홍수, 그리고 운하를 오가는 수많은 배들이 만들어내는 너울이 건물과 도시를 이루고 있는 석조 기반을 침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2100년경 베니스는 해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탈리아의 금속 명가 ‘데카스텔리(DeCastelli)’와 ‘자넬라토·보르토토 스튜디오’가 협업한 전시 ‘트레이싱 베니스(Tracing Venice)’는 바로 이 위기를 목격하면서 시작됐다. “2017년 두 디자이너를 처음 만나 가구 디자인을 함께하면서 공통 화제를 발견했죠. 기후변화로 위협받고 있는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어요.” 6월 29일부터 7월 29일까지 서울 반포동에 위치한 ‘포모나앤코’ 사옥에서 열리는 ‘트레이싱 베니스’ 전시 개막 차 방한한 데카스텔리의 부대표 프란체스카 첼라토의 말이다.

베니스, 해수면 높아져 침수 위기

베니스 대성당 바닥 타일 모자이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완성한 금속 벽장식들. [사진 데카스텔리]

베니스 대성당 바닥 타일 모자이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완성한 금속 벽장식들. [사진 데카스텔리]

‘베니스의 흔적을 찾아서’라는 뜻의 전시는 베니스 성 마르코 광장에 있는 대성당 바닥 타일 모자이크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프로젝트다. 서기 829년 건축된 성 마르코 대성당은 비잔틴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약 2000㎡의 바닥에는 다양하고 복잡한 기하학 형태의 모자이크들이 장식돼 있다.

“사라져 가는 문화유산을 현대인의 일상에 맞게 재창조해 보자 결심했지만 우리에게도 큰 도전이었어요. 원래 대리석 소재였던 타일을 금속으로 바꿔서 다양한 색을 내고 정교하게 짜 맞추는 일은 많은 연구가 필요했으니까요.”

금속 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젝트에는 함께한 디자이너들의 이력도 큰 도움이 됐다. ‘자넬라토·보르토토 스튜디오’는 스위스 로잔예술대학에서 만난 조르지아 자넬라토와 다니엘레 보르토토가 2013년 설립했다. 두 사람은 첫 컬렉션 이름을 ‘아쿠아 알타(Acqua Alta·베니스에서 해수면 상승으로 일어나는 침수 현상)’로 했을 만큼 베니스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다. 또 루이 비통과 함께한 협업 프로젝트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에서 가죽을 대나무처럼 엮어 램프와 가구를 디자인할 만큼 다양한 소재와 공예기술 탐구에 열심이다.

베니스 대성당 바닥 타일 모자이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완성한 금속 벽장식들. [사진 데카스텔리]

베니스 대성당 바닥 타일 모자이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완성한 금속 벽장식들. [사진 데카스텔리]

‘트레이싱 베니스’ 전에 걸린 여섯 작품은 자넬라토·보르토토 두 디자이너가 대성당 바닥 타일 모자이크를 재해석한 디자인을 내놓으면, 금속 명가 데카스텔리의 장인들이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마법같은 과정을 통해 완성됐다.

베니스에서 한 시간 떨어진 이탈리아 북부 도시 트레비조에 본사를 둔 데카스텔리는 전통 금속공예 기술을 기반으로 시장과 고객의 요구에 맞게 모던한 디자인을 연구·개발해 온 세계적 금속 명가다. 구리·황동·철 세 종류의 금속을 이용해 생활 디자인 가구와 건물·인테리어 내외장재를 개발한다. 지금의 회사와 브랜드는 프란체스카의 아버지 알비노 첼라토가 2003년 시작했지만, 가문의 역사는 19세기 초부터 지금의 프란체스카까지 5대째 이어지고 있다.

베니스 대성당 바닥 타일 모자이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완성한 금속 벽장식들. [사진 데카스텔리]

베니스 대성당 바닥 타일 모자이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완성한 금속 벽장식들. [사진 데카스텔리]

“프레스 머신, 레이저 커팅 등 현대 기술·기계를 적극 활용하지만 우리만의 차별화된 기술은 전통 수공예가 기반이죠. 지금도 산화처리, 브러싱 등의 과정에선 오랜 시간 숙련된 장인들이 금속 종류의 특성과 목적에 맞게 손으로 직접 작업하면서 노하우를 반영하죠.”

금속의 산화처리 과정에는 금속, 산화제, 물이 필요하다. 금속 표면에 산화제를 뿌리고, 물을 끼얹거나 물에 담가 산화를 멈추기를 반복하며 원하는 질감과 패턴을 만들어 가는 게 기본. 산화과정 자체는 이렇게 단순하지만 속도·방법·시간 등의 노하우에 따라 표현되는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즉, 장인의 손길과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차별화된 효과를 만들어 낸다. 금속 명가로서의 자부심은 결국 장인들의 솜씨로 판가름 난다.

데카스텔리, 5대 이어온 금속 명가

‘데카스텔리’의 금속 프레임 소파. [사진 데카스텔리]

‘데카스텔리’의 금속 프레임 소파. [사진 데카스텔리]

프란체스카는 “재료를 다루는 장인의 숙련된 기술과 본능적인 터치를 통해 데카스텔리만의 자연스러운 색감과 패턴이 만들어진다”며 “똑같은 물방울이라도 그 밑에 있던 바위 표면에는 제각각 다른 모양의 패턴이 새겨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마케팅 책임자인 페데리카 벨라토는 “구리의 경우 산화처리뿐 아니라 불을 이용해서도 패턴을 만든다”며 “구리 표면을 불로 완전히 구운 다음, 불에 구워진 부분의 표면을 자연스럽게 벗겨내면 패턴이 만들어지는데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다보니 모든 개별 조각 하나하나가 똑같은 게 없다”고 했다.

“금속은 일반적으로 차가운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기계’에 많이 쓰여서 그럴 뿐, 나무나 도자처럼 자연(흙)에서 온 소재입니다. 지구의 선물이죠. 이걸 어떤 색감과 질감으로, 어떤 형태와 디자인으로 표현하는지에 따라 전해지는 감성의 온도는 전혀 달라지죠. 베니스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품은 흔적(트레이싱)을 만나보면 분명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 거예요.”

2019년 베니스에서 처음 열렸던 ‘트레이싱 베니스’ 전시는 밀라노를 거쳐 프랑스 리옹, 스위스 취리히, 영국 런던, 덴마크 코펜하겐에 이어 현재 서울에서 일곱 번째 전시를 열고 있다. ‘포모나앤코’ 사옥에선 전시와 함께 데카스텔리 가구와 인테리어 공간도 감상할 수 있다.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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