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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나라 쿠바, 사랑과 낭만이 혁명처럼 넘치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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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호 27면

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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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과 여행은 늘 양가적이고 이중적이다. 사람들은 무서워하면서도 금기시된 곳에 가고 싶어 한다. 적성국가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우리에게 쿠바가 그런 곳이다. 코로나19로 조금 뜸해졌지만 여전히 쿠바 여행을 버킷 리스트로 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영화가 큰 몫을 했다. 독일 빔 벤더스가 만든 다큐멘터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쿠바를 철의 공산국가에서 재즈의 나라, 낭만의 나라, 열정의 나라, 그렇지만 가난한 나라라는 인식으로 바꿔 놓았다. 쿠바의 경제난은 7,80년대 저개발의 기억을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오히려 기이한 친근감을 느끼게 만든다. 사람들이 불편한 쿠바 여행을 감수하는 이유는 일종의 동질감 때문이다.

미국·쿠바 미사일 사태 다룬 영화도

2001년 개봉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미국의 음반 프로듀서 라이 쿠더가 쿠바 재즈를 재발굴하는 과정을 기록한 내용이다. 한국 관객들 중에는 난생 처음으로 콤파이 세군도와 아브라힘 페레르, 루벤 곤잘레스의 이름을 들은 사람들이 수두룩했지만, 이 한편의 영화로 그들을 마치 오래 전부터 들어 왔던 뮤지션인 양 받아 들였다. 쿠바 재즈는 이 영화로 한국 문화권에 영원히 귀속됐다. 사람들은 이제 쿠바하면 재즈와 시가, 모히토나 다이키리 같은 주류, 뮬라토라 불리는 쿠바인들의 피부 색깔, 매혹적이면서도 약간은 외설적인 그들의 살사 댄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쿠바는 어디까지나 혁명의 나라이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를 비롯한 일군의 젊은 지식인들은 부패한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았다. 카스트로 옆에는 세 명의 스타 혁명가들이 더 있었는데 2021년까지 실권을 잡았던 라울 카스트로(피델의 친동생)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1959년 혁명 9개월 만에 비행기 추락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실종)가 있고 무엇보다 전 세계인들의 추앙을 받던 혁명계의 로맨티스트 체 게바라가 있었다. 쿠바 혁명은 그다지 정교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대가 지나치게 썩은 탓에 스스로 무너지고 있던 상황에 편승해 일어난 정권 교체였다. 다만 강고한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던 4인방 혁명 주체들은 오히려 권력을 쥔 이후부터 자신의 나라가 지닌 사회구성체의 변화를 보다 더 면밀하게 연구하며 무수한 反혁명 세력과 싸워 나가면서 철통 정권을 지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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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역사적 사건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낳는다. 1961년 미국의 피그만 침공과 몽구스 작전의 실패, 그 직후인 1962년의 미-쿠바 미사일 사태 그리고 1963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 암살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도 그렇다. 미국의 자충수였는지 쿠바 공산화가 그만큼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쿠바 혁명이라고 하는 세계사적 사건이 완수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끝없이 지속되는 현재진행형의 정치적 변혁이라는 얘기도 된다.

미-쿠바 미사일 사태는 할리우드도 수많은 영화로 다뤄왔는데, 그 중 백미는 로저 도날드슨 감독이 만든 2001년작 ‘D-13’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배우를 실제 인물과 거의 흡사하게 변신시키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영화에 나왔던 브루스 그린우드와 스티븐 걸프는 각각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를 너무 닮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둘이 백악관 오벌 오피스 한편에서 쿠바 봉쇄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며 얘기하는 컷은 사람들을 1962년으로 돌려 보내기에 충분했다. 미국이 흐루시초프의 소련과 일촉즉발 핵 전쟁의 위기 직전까지 가 있던 때다.

케네디 형제는 결국 나토의 동유럽 미사일 기지를 터키 쪽으로 옮기고 흐루시초프는 쿠바 미사일 기지를 철수시키는 것으로 전격 합의에 이른다. 그러나 이 합의 과정은 미 군부 강경파, 미국 내 극우주의자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케네디는 이들 손에 암살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배후는 60년이 넘은 현재까지 미스터리다. 그 이야기는 올리버 스톤의 1992년 영화 ‘JFK’에서 상세하게 다뤄진다.

미국과 쿠바 간 미사일 사태로 쿠바 해안을 봉쇄하는 모습은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도 종종 다뤄져 왔는데, 역사적 사건을 다소 지나치게 윤색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 출신 매튜 본 감독의 2011년작 ‘엑스맨:퍼스트 클래스’는 미-쿠바-소련의 무력 충돌의 위기를 돌연변이 초능력자들인 X맨, 찰스 사비에 박사(제임스 맥어보이)와 에릭 랜서(마이클 패스밴더)가 헬 파이어 클럽을 만들어 막아 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이 둘은 이전, 곧 2000년에 이미 나온 ‘엑스맨 1’에서 울버린 등 초능력자들을 보호해 주는, 늙은 사비에(패트릭 스튜어트)와 초능력 악당 매그니토(이안 맥컬런)의 프리퀄 캐릭터들이다. ‘엑스맨’ 시리즈의 광팬들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목일 것이다.

쿠바 혁명의 과정을 진지하고 면밀하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체 게바라의 혁명적 생애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미국의 거장 스티븐 소더버그가 만든 ‘체 게바라 1,2부’이다. 원래 3시간 짜리 영화지만 국내에서 소개될 때는 두 편으로 나뉘어 상영됐다. 원래 제목은 ‘체(Che)’이다. ‘체’는 친구를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여보게’, ‘자네’라는 뜻이다.

청년 게바라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게바라는 쿠바 태생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출신이고 이름도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이다. 원래는 의대생이었지만 남미의 빈곤한 민중들의 삶을 여행을 통해 목격하고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일으킨다. 그 직전까지의 모습은 바로 체 게바라를 낭만파로 인식하게 만든 브라질 출신 월터 살레스 감독의 2004년작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 나온다. 멕시코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여기서 젊은 대학생 게바라를 연기하는데 그는 훗날(2019) 미국 내 반 카스트로 세력을 제거하는 쿠바 비밀조직 이야기인 넷플릭스 영화 ‘와스프 네트워크’에 비밀 요원으로 나와 스스로 친 쿠바적 성향이 꽤나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와스프 네트워크’는 프랑스 작가주의 감독인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작품으로, 쿠바 혁명과 그 이후에 대해 세계 영화 지식인들의 시각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 ‘체 게바라’는 오프닝 장면부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데, 혁명 직후 미국의 여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게바라와 완전 판박이었기 때문이다. 소더버그는 게바라 역의 푸에르토리코 출신 배우 베네치오 델 토로를 완벽에 가깝게 변신시켰다. 카메라 워크도 꽤나 인상적인데 최초 컷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게바라의 군화를 클로즈업 한 후, 그가 입에 물고 있는 시가로 컷을 옮기고 그 다음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베레모로 이동한 후 점점 카메라를 뒤로 빼면서 게바라를 보여주는 식이었다. 인물의 역사성을 극대화한 촬영이었다.

‘체 게바라1,2’는 쿠바 혁명 성공의 도화선이 된 산타 클라라 전투를 사실적으로 재현한데다, 1964년 UN 연설 장면을 100% 있는 그대로 재현해 낸 것으로 역사 영화의 필견의 역작에 등극했다. 체 게바라는 이 UN 연설 직후 카스트로와 혁명 동지들에게 편지를 남기고 쿠바를 떠나 자신만의 영구혁명론을 실천하기 위해 아프리카 콩고로 떠난다. 콩고 이후 볼리비아 농민 혁명을 이끌기 위해 다시 남미로 돌아 왔지만 볼리비아 군대에게 체포돼 사살됐다. 1967년 그의 나이 39살 때이다.

쿠바의 산타 클라라는 체 게바라의 묘역 때문에 관광 명소가 됐다. 게바라의 시신은 사후 30년만인 1997년에 쿠바로 돌아와 안장됐다. 산타 클라라 묘역에 있는 게바라의 거대 동상을 보고 있으면 옛날의 혁명은 참으로 젊은 사람들이 했다는 생각과 추억, 회한에 잠긴다. 만약 게바라가 카스트로처럼 90 가까운 생을 살았다면 자신의 혁명이론을 수정했을까, 유지했을까. 게바라는, 공산혁명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는 트로츠키 식 영구혁명론주의자였고, 카스트로는 스탈린과 북한식 일국 사회주의론자였다. 게바라가 살아 있었다면 카스트로와 계속 동지적 관계였을까 아니면 정적이 됐을까. 쉽게 예단하기 어려운 일이다.

쿠바에 관한 한 가장 ‘오염된 낭만주의’를 담고 있는 영화는 시드니 폴락이 만든 1990년 영화 ‘하바나’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레나 올린이 나온다. 다소 억지스러운 멜로 영화인데, 이상하게 매혹적이다. 마이애미에 사는 도박사 잭(레드포드)은 쿠바 카지노에 가서 인생 막판을 건다. 그러나 아바나로 가는 크루즈 안에서 쿠바 혁명가의 아내 바비(올린)를 만나 불륜에 빠진다. 바비의 남편은 암살당하고 바비는 체포되는데 잭은 자신의 목숨과 수십년 도박으로 벌어 온 돈을 걸고 여자를 구한다. 그러나 여자를 미국으로 데려오지는 못한다. 여자가 조국 쿠바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러브 스토리, 특히 혁명의 러브 스토리란 현실적이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쿠바 영화하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나 ‘체 게바라 1, 2’ ‘D-13’보다 ‘하바나’를 꼽는 사람이 꽤 있다. 혁명도 낭만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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