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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6·25 영화 ‘도곡리 다리’ 67년 뒤 다시 소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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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6호 27면

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한국전쟁 얘기를 하겠다 하면 흔히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를 떠올리겠지만, 영화가 좋은 점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똑같은 기억을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특이하게도 6·25 하면 제니퍼 존스와 윌리엄 홀덴이 나왔던 1955년 영화 ‘모정(慕情)’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영화 올드 팬이고 60~70년대에 비범하게 영화를 즐겨 보던 사람들이다. 20·30대 젊은 층 중에서 이 영화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정의 ‘모’는 ‘어미 母’가 아니라 ‘그리워 할 모’이다. 남자가 한국전쟁에 가서 죽기 때문이다. 영어 원제를 생각하면 영화의 분위기가 좀더 명확해진다. ‘사랑은 수많은 찬란한 무엇(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이다. 전쟁의 시대라 한들, 사랑은 언제나 사랑이며, 사랑만이 두 남녀를 구원하고 세상을 구해낸다는 것이다.

해변 바위 뒤의 수영복 러브 신 유명

사진 1(왼쪽), 사진 2

사진 1(왼쪽), 사진 2

‘모정’은 한 수인(Han Suyin)이 쓴 1952년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홍콩의 여의사 수인이 홍콩주재 미국기자 마크와 사랑에 빠진다. 여자는 영국-중국인 혼혈이고 남자는 유부남이다. 둘은 당시로서는 금기의 사랑에 도전하고 뭇 시선을 견디며 그 결실을 맺어 간다. 남자는 아내에게 간신히 이혼 허락을 받을 참이다. 그 순간 본사에서 한국전 취재 지시가 떨어진다. 여자는 남자를 한국에 보낸 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지만 곧 그가 사망했다는 편지를 받는다.

전설의 여배우 제니퍼 존스(‘무기여 잘있거라’)와 당대 최고의 훈남배우였던 윌리엄 홀덴이 해변 바위 뒤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빼어나다. 사랑스럽다. 이런 식의 러브 신은 버트 랭카스터와 데보라 카가 나왔던 1953년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1950년대의 남녀가 서로의 반라(半裸)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고 또 그나마 만지고 부빌 수 있는,  인기 있던 곳이 후미진 해변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모정’은 두 남녀의 해변 신과 저 언덕 너머 나무 밑에서 남자를 기다리는 수인, 곧 제니퍼 존스의 애절한 표정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영화이다. 수인은 바로 그 언덕에서 남자의 사망 통지서를 받는다. 한국전쟁은 머나 먼 이국의 중년 남녀에게도 비극을 안겨 준 세계사적 사건이었던 셈이다. 한국전쟁은 분노를 남긴 것이 아니라 무수한 슬픔을 남겼다. 가외로 1952년의 홍콩의 생활상이 보여지는데 2020년대의 지금보다 더욱 화려하다. 그점만으로도 놀랄 만한 작품이다.

6·25 전쟁을 영화 속에 꼭꼭 숨겨 놓은 작품들이 요즘에도 더러 나오고 있다. 미국의 현존하는 작가주의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의 기록될 만한 2021년의 수작 ‘리코리쉬 피자’에서도 한국전쟁 얘기가 나온다. 주인공 알라나(알라나 하임)는 늙은 퇴역군인 잭 홀덴(숀 펜)과 그의 부하였던 사람 렉스(톰 웨이츠)로부터 이야기 상대를 해주는 대신 저녁 식사를 제공받는다. 이 때 두 중년남이 떠드는 얘기가 도곡리라는 곳에서 기총 소사를 했던 때의 무용담이다. 도곡리는 현재도 남아있는 곳이다. 북한의 원산 인근에 있는 강원도 법동군 마전리(행정구역 개편)인데, 할리우드는 1954년 윌리엄 홀덴과 그레이스 켈리를 기용해 ‘원한의 도곡리 다리’라는 영화를 찍었다.

중부전선에서 교착 상태를 보이는 전쟁의 가도는 도곡리 철교를 누가 점령하느냐에 달려 있었던 모양이다. 미 항공모함 항공대 대위 해리 브루베이커(윌리엄 홀덴)는 이 철교를 공습해 폭파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도곡리 철교는 난공불락으로 유명했는데 북한군의 대공포 공격이 엄청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해리 대위는 도곡리 공습에 성공하고 귀환 중 북한의 대공포를 맞고 추락한다. 영화 ‘원한의 도곡리 다리’의 줄거리이다. 제목에서 ‘원한의’는 한국에서 붙였다. 원제는 그냥 담백하게 ‘도곡리 다리, The Bridges at Toko-Ri’이다.  2021년 이 얘기를 소환한 ‘리코리쉬 피자’에서 숀 펜의 배역 이름이 잭 홀덴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나름으로 윌리엄 홀덴과 1950년대 한국전쟁 영화에 헌사를 바치고 있는 셈이다.

‘원한의 도곡리 다리’는 1952년에서 54년 사이에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꽤나 많이 만들어졌음을 시사한다. 그만큼 한국전쟁은 세계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1949년 모택동에 의한 중국 공산화는, 1917년 레닌의 러시아 혁명만큼 충격을 준 일대 사건이었다. 곧 이어질 1959년 쿠바 카스트로의 공산화까지 세상이 온통 레드 콤플렉스에 빠지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실제로 세계는 이후 1973년의 베트남 공산화, 1975년의 캄보디아 공산화 등으로 이어졌다. 한국전쟁은 바로 그 중간 길목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얘기가 약간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지만 1956년에 나온 돈 시겔의 SF명작 ‘신체 강탈자의 침입, The invasion of body snatchers’에서 지구를 침공한 외계의 존재는 우리 아닌 다른 것, 우리와 생각과 이념이 다른 어떤 존재, 곧 공산주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그렸다기 보다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에 대한 공포’, 그 히스테리를 그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영화 속 ‘외계인=공산주의’는 이후 ‘외계인=핵 공포=타인, 이민자’의 의미로 확장돼 계속해서 리메이크 돼 왔다. 때로는 ‘바디 에일리언’(아벨 페라라 감독, 1997)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인베이젼’(니콜 키드먼 주연, 2007)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 시작은 1950년대였으며 화두의 중심은 공산주의였고 그 계기가 바로 한반도에서 벌어진 남북 전쟁이었다.

출장 간다고 나간 뒤 영영 못 돌아와

한국전쟁이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뛰어난 작품이 그리 많이 나오지는 못했다. 그나마 자신의 과작(寡作: 적은 수의 작품) 중 대표작을 한국전쟁의 얘기로 만든 이가 강제규 감독이었고 그게 바로 ‘태극기 휘날리며’이다. 이 작품 이상의 한국전쟁 영화는 현재까지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데 장훈 감독이 만든 2011년 영화 ‘고지전’ 정도가 화제와 관심을 모았다. 잘 살펴 보면 두 작품 모두 매우 정교하게 진영 논리에서 탈피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두 영화 모두 남이냐 북이냐를 넘어 남이거나 북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얘기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국방군과 인민군을 오가야만 했던 남자(장동건)의 이야기이다. ‘고지전’은 교착상태에 빠진 전황에서 낮에는 남한군 밤에는 북한군의 것이 되는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6·25 전쟁 이야기는 현실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영화가 오히려 그 극적인 긴장감과 몰입감을 만들어 내기 힘들다. 실제 전쟁을 겪었던 세대들이 6·25전쟁을 다룬 영화를 오히려 꺼리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강제규의 진짜 걸작은 2014년에 불현듯 내놓았던 26분짜리 단편 ‘민우씨 오는 날’이다. 이 짧은 영화는 분단 세대를 한 마디로 ‘철철’ 울게 만든다. 1950년 6월24일쯤 어느 날 아내 연희(문채원)는 남편 품에서 일찍 눈을 뜬다. 남편 민우(고수)는 오늘 출장을 다녀 올 거라 했다. 그녀는 살금살금 부엌으로 가 찬합에 이런저런 나물과 반찬을 가지런히 넣으며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싼다. 골목 어귀를 나서는 남편에게 손을 흔들던 아내는 신혼의 여자 누구나가 그렇듯 남편이 못내 아쉬워 골목 어귀까지 달려 좇아가 남자의 팔짱을 낀다. 둘은 간신히 해어진다. 그리고 영원히 헤어진다. 여자는 이제 늙었다. 연희는 이제 할머니이다. 그녀는 치매에 걸렸으며 자신이 여전히 신혼집 골목길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쟁영화가 꼭 전투만을 그리라는 법은 없다. 전투 장면 하나 없이도 충분히 참혹하고 비극적이다. 너무 슬픈 일들이 떠올려져 전후 세대조차 펑펑 울게 만든다. 누가 수인의 가슴에 못을 박았는가. 도곡리 다리에서 죽은 원혼들은 어떻게 됐는가. 연희의 마음에 피멍을 들게 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증오와 분노, 복수는 다 부질없는 일이다. 우리의 아내, 우리의 자식이 민우 씨 오는 날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더 이상 다치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이나 심지어 전쟁에 준하는 사태라도 벌어지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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