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총 아닌 사랑서 나온다, 세상을 바꾼 비틀스 노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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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27면

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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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시대에도 OST, 곧 삽입곡이라는 게 있다면 지금 우리의 주제곡은 비틀스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이다. 1970년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 ‘렛 잇 비’에 수록됐던 곡이다. 한국도 바야흐로 우주 시대이기 때문이다. 누리호가 만든 업적이다. 가사가 ‘딱’이다.

…내 주위에서 빛나는 1000만 개의 태양처럼 / 끝없는 불멸의 사랑이 / 우주를 넘어 오라고 / 나에게 자꾸자꾸 손짓을 하네.…

그러나 사실 전 세계 사람들이 흥얼거리는 이 노래의 가사는 바로 이 부분이다. ‘낫씽 고나 체인지 마이 월드(Nothing gonna change my world), 그 어떤 것도 내 세상을 바꿀 수 없어요’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가사는, 그리고 비틀스의 노래는, 더 나아가 비틀스라는 존재는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은 물론 온통 세상을 바꾸고 뒤흔들어 놓았다. 공산주의 체제를 효율적으로 공격하고 그 강고한 이데올로기의 벽을 무너뜨리는 일은 핵미사일 ‘따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동서 베를린 장벽을 해체한 것도,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당 서기장으로 하여금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노선을 가져오게 한 것도 비틀스의 노래였다. 심지어 러시아의 혁명 가수 빅토르 최 역시 철저하게 비틀스의 록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

비틀스의 노래는 ‘어크로스 더 월드’를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강한가를 혁혁히 증명해 냈다. 베트남 전쟁에서, 반독재 투쟁 시위에서, ‘월가(Wall Street)를 점령하라’와 같은 젊은이들의 반금융자본 데모 현장에서, 비틀스의 노래와 가사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비틀스 영화 큰 허들은 비틀스 자체

영화는 아직 비틀스라는 시대적 신(神)의 존재를 온전히 담아 내지 못했다. 기이하게도 이들의 전설적 노래나 활동 전반을 다루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은데 그건 다분히 매우 강고하고 완고한 저작권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비틀스의 영화를 만들려면 당연히 이들의 노래를 사용하게 될 것인 바, 그 사용에 대한 권리문제가 매우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등 멤버 둘이 아직 살아 있고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 유족들의 권리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비틀스라는 이름의 산업 규모가 웬만한 작은 국가의 1년 예산과 맞먹을 정도이니 법적 권리문제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할 것이다. 비틀스 영화의 가장 큰 허들(hurdle)은 당연히 비틀스 본인들 자체이다.

2007년 줄리 테이머 감독(화가 프리다 칼로를 다뤘던 ‘프리다’ 연출)이 만들고 에반 레이첼 우드와 짐 스터게스가 출연한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그런 점에서 유달리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2008년 국내 개봉 당시 단 2만 명의 관객에 불과했고, 미국 공개 당시 로튼 토마토 지수도 53%에 그쳐 평가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비틀스를 다룬 영화 가운데 이만한 작품도 없다.

무엇보다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비틀스 노래 33곡의 가사를 영화 전체의 스토리 라인으로 묶어 낸 ‘기발한’ 아이디어의 작품이다. 주인공 이름도 남자는 주드(노래 ‘헤이 주드’)이고 여자는 루시(노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이다. 루시의 오빠 이름은 맥스인데 역시 비틀스의 노래 ‘맥스웰스 실버 해머’에서 따온 것이다. 그밖에도 비틀스의 주옥같은 노래 ‘비커즈(Because)’를 비롯해 ‘썸씽(Something)’ ‘내 기타가 부드럽게 울릴 때(When my guitar gently weeps)’ ‘나를 실망시키지 마(Don’t let me down)’ 등이 줄줄이 나온다. 노래와 서사가 만날 때 만들어 내는 쾌감이 실로 삼삼하다. 이 영화는 일종의 뮤지컬 영화로 등장인물들이 춤을 추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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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짐 스터게스)는 리버풀 태생이다. 그의 생부는 세계2차대전 때 영국에 주둔했던 미군이었고, 미혼모 밑에서 자란 주드는 방황 끝에 아버지를 찾아 미국으로 온다. 대학교수라던 아버지는 잡역부로 살아가고 있다. 생계가 막막해진 주드 앞에 부유한 집안의 맥스(조 앤더슨)와 루시(에반 레이첼 우드)가 나타나고 셋은 뉴욕에서 히피 생활을 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주드와 루시는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곧 맥스는 월남전에 징집되고, 루시는 반전 데모에 앞장서게 되면서 셋의 우정과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리버풀 노동자 출신의 주드는 루시의 행동이 ‘배부른 아이들’의 관념적 충동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록 음악 줄기에 리버풀 록과 맨체스터 록이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이다. 리버풀 록의 대표가 비틀스이다. 맨체스터 록은 매드체스터 장르로 불리는데 양대 산맥인 밴드는 뉴 오더와 더 스미스이다. 매드체스터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로는 형제 멤버 간 갈등으로 악명이 높았던 오아시스도 있다. 리버풀 록이 60~70년대를 풍미했다면, 매드체스터는 80~90년대에 뜨고 졌다. 비틀스가 리버풀 록으로 미국을 향해 ‘브리티시 인베이전(비틀스로 시작된 미국 대중문화의 일대 변화를 가리키는 말)’을 감행했다면, 맨체스터 록은 밴드 너바나 등을 통해 미국 시애틀의 얼터너티브 록으로 이어지며 또 다른 미국(문화) 침략을 이루어 냈다. 이 얘기는, 영국의 가장 뛰어난 작가 감독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마이클 윈터바텀의 2002년 영화 ‘24시간 파티 피플’에 담겨 있다. 그룹 뉴 오더와 해피 먼데이즈를 발굴하고 매드체스터 장르를 만들어낸 음반 프로듀서 토니 윌슨과 ‘그 일당들’에 대한 영화였다.

리버풀과 맨체스터 모두 영국 북서부에 있는, 잉글랜드의 주요 도시이다. 리버풀은 전형적인 항구 도시로 개방적인 곳이고, 맨체스터는 일종의 ‘빼박’ 공업도시로 산업혁명의 발흥지이다. 항구도시의 자유스러움과 낭만을 비틀스가 대표해 왔다면 노동자 도시의 진보성·공격성은 맨체스터의 록음악들, 얼터너티브 밴드가 담당해 온 셈이다. 이 두 도시는 평소에도 엄청 경쟁을 벌이는데 리버풀FC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응원 열기도 살벌한 수준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영화는 맨체스터보다 리버풀의 얘기에 좀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리버풀이 좀 더 ‘말랑하고’ 서사가 대중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러브 스토리는 노동자 도시보다 항구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연인이 떠나고 돌아오는 것은 정서적으로 항구이지 공장이 아니다. 우리 제목으로 ‘필름 스타 인 리버풀’. 원제가 ‘필름 스타는 리버풀에서 죽지 않는다(Film Stars Don’t Die in Liverpool)’였던 영화에서 50대 여배우 글로리아(아네트 베닝)는 리버풀에서 20대 배우 지망생 피터(제이미 벨)를 만나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둘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데 그녀는 죽기 전 피터를 다시 만나기 위해 리버풀에 오지만 정말로 죽기 전에는 리버풀을 떠난다. 글로리아는 리버풀에 사랑을 남기고 간다. 비틀스의 리버풀은 그런 곳이다.

한국도 민주화운동 때 널리 향유

비틀스는 세계 혁명 그 자체였다. 세계 영화계도 이들 때문에 일대 변화를 겪었는데 미국의 아메리칸 뉴 시네마나 독일의 뉴 저먼 시네마, 프랑스의 누벨바그가 그것이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대표작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을 향해 쏴라’는 여전히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워렌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열연했던, 연인 갱단 보니와 클라이드의 이야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2019년 존 리 행콕 감독이 ‘하이웨이 맨’이란 영화로 확장시켰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둘, 케빈 코스트너와 우디 해럴슨은 남녀 2인조 강도 보니와 클라이드를 추격해 사살하는 보안관으로 나온다. 이 모든 이야기의 유래는 어떻게 보면 비틀스와 비틀스가 만든 문화에서 비롯된 셈이다.

1962년부터 1970년까지 단 8년의 밴드 활동만으로 비틀스는 냉전을 해체하고 프라하의 봄을 만들었으며 신좌파 운동과 프랑스 6.8 혁명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도 비틀스의 노래들은 어김없이 향유됐다. 비틀스의 대표곡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뿐(All we need is love)’이다. 일본의 ‘난폭한’ 소설가 무라카미 류의 얘기처럼 사회 변화를 위한 혁명에 필요한 것은 총과 폭력이 아니라 사랑과 상상력이다. 모든 혁명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지론은, 그래서 틀린 것이 됐다. 모든 변화는 사랑(노래)과 상상력(영화)에서 나온다. 그것이야말로 비틀스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남겨 준 유산 중의 유산이다. 바야흐로 록페(록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많이들 흥청거리기를. 그 자유의 몸짓을 만끽하시기를.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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