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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동족상잔의 비극·진영 갈등, 우리와 닮았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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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20면

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사진 1. [사진 각 영화사]

사진 1. [사진 각 영화사]

국토의 분단과 민족 상잔의 비극이 우리만큼 격렬했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가 바로 아일랜드이다. 정확한 명칭은 아일랜드 공화국, 곧 리퍼블릭 오브 아일랜드이다. ‘리퍼블릭’이란 단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왕정이 아니다. 그러니까 영국=잉글랜드의 왕이 통치하는 곳이 아니라 별도로 독립된 공화 국가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하면 아직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영국과 같은 나라이거나 적어도 미국처럼 연합된(united) 국가라고 생각한다. 너무 붙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영국의 국호는 영어로 ‘유나이티드 킹덤 오브 그레이트 브리튼 앤 노던 아일랜드(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이렇게 아직 북아일랜드가 영국령으로 돼 있는 데 따른 착시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별도의 독립국가이며 국기도 다르고 월드컵 축구 팀도 따로 있다. 영국과는 근 100년을 싸웠고 특히 북아일랜드 분쟁은 많은 유혈 사태를 낳았다. 비극의 에피소드가 차고 넘친다. 당연히 무수하게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아일랜드 독립의 역사, 북아일랜드 분쟁의 역사는 복잡다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를 다룬 영화를 보는 일도 종종 해석해 내기 어렵다. 역사를 모르면 영화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북아일랜드의 분쟁 다룬 영화 많아

예컨대 비교적 최신작인 2022년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가 대표적이다. 이니셰린이란 이름의, 아일랜드 해안 주변의 외딴 섬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내용이다. 가상의 섬이다. 밴시는 일종의 여자 요정 혹은 정령으로 가족의 죽음을 예고해 준다. ‘이니셰린의 밴시’에 나오는 마을의 (약간 정신이 이상한) 노파가 바로 밴시인 셈이다. 이 영화는 사실 스토리만으로는 도통 앞뒤 이유를 짐작하기가 어려운 작품이다. 평소 절친으로 지내는 파우릭(콜린 패럴)과 콜름(브렌단 글리슨)이란 두 남자가 있는데, 어느 날 콜름이 파우릭에게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한다. 다시는 말을 않겠다고 하면서 그 의지의 표현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다. 콜름은 나중에 자신의 한쪽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잘라 낸다. 파우릭은 콜름이 왜 이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화로 오해를 풀려고 한다. 그러나 파우릭이 그럴수록 콜름은 더욱 더 화를 낸다. 영화는 114분의 시간 동안 내내 둘의 신경전을 그려 간다. 관객 상당수는 이들이 왜 이러는지 짐작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거의 이해할 수 없다. 이 영화가 국내 개봉 당시 불과 2만6692명의 관객이 든 이유다.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이니셰린은 아일랜드 자체를 상징한다. 영화에서는 바다 건너에서 종종 포성이 들리는데 아일랜드 내전이 벌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때는 1921년이고 영국과 아일랜드 독립운동 조직 간 협상이 체결됐던 때이다. 이때 영국과 아일랜드 독립세력은 아일랜드를 아일랜드 자유국이란 이름의 영국 자치령으로 하되 군사권과 외교권은 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 영국 국왕이 국가 원수이고 아일랜드에 영국 총독을 둔다는 일종의 식민지 계약에 합의한다. 당연히 아일랜드 내부는 들끓을 수밖에 없다. 수년 간의 독립운동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스터 지역, 곧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의 직접 통치로 놔둔 상태이다. 일종의 분단이 이루어진 셈인데 당연히 아일랜드 내부는 조약 찬성파와 조약 반대파로 나뉘어 격렬한 내전에 휩싸이게 된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그렇게 둘로 나뉘어진 정치세력 간 갈등을 두 남자의 우정이 깨지는 과정을 통해 보여 주는 셈이다. 역사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 각 개인의 일상은 또 얼마나 그 하나하나가 정치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지를 역설하는 작품이다. 역사는 개인이고 개인은 역사이며, 영화는 정치고 정치는 역사다.

사진 2. [사진 각 영화사]

사진 2. [사진 각 영화사]

1921년 아일랜드 독립운동 세력 중 일부가 영국과의 불완전한 조약에 합의한 것은 오랜 기간 영국과의 전쟁 아닌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와 민생 문제로 지칠 대로 지쳤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한편으로는 독립의 배신자이자 권력의 화신 쯤으로 격하되기도 하는 마이클 콜린스이다. 아일랜드 공화군이자 테러 조직인 IRA 창시자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1년 조약 체결의 주역이었으며 1922년 조약 반대파를 숙청하고 탄압하는 과정에서 암살당한다. 그 전 과정을 그린 영화가 바로 닐 조단 감독이 만들고 리암 니슨이 주연한 1997년 영화 ‘마이클 콜린스’다. 영화는 마이클 콜린스가 얼마나 위대한 영웅이었으며 동시에 인간의 역사적 선택은 종종 얼마나 큰 오류로 점철될 수 있는가, 역사 문제에 있어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는 늘 상충될 수 있으며 때로는 상극의 지경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상극의 정점을 보여주는 영화가 영국의 고집스럽고 일관된 사회주의자 영화감독 켄 로치의 2006년 명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다. 같은 해 칸영화제는 이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한다. 잉글랜드 런던에서 의사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해 나가던 데이미언(킬리언 머피)은 친구의 죽음으로 정치의식이 깨어난다.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와 형인 테드(패드레익 딜레이니)와 함께 IRA 단원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다. 데이미언의 삶은 역설적으로 그때까지가 좋았다. 형제는 용감했으며 서로를 사랑했다. 그러나 조약이 체결된 후 두 형제는 점차 갈라서기 시작하고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형인 테디는 조약 찬성파가 되고 동생인 데미니언은 조약 반대파가 됐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에게 총을 쏜다.

‘마이클 콜린스’ 독립조약의 오류 지적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란 제목은 아일랜드 시인 로버트 드와이어 조이스의 동명 시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산골짜기의 미풍이 보리밭 전체를 뒤흔들었다는, 사소한 형제의 갈등처럼 보이지만(마치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파우릭과 콜름이 싸우는 것처럼) 사실은 아일랜드 역사를 뒤흔들었던 엄청난 갈등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국은 아일랜드를 사실상 갈라치기로 분할 지배(divide and rule)에 성공한 셈이며 이 과정에서 많은 아일랜드 양민이 희생됐다. 아일랜드의 식민 조약은 1921년에 체결됐지만 사실상의 독립(북아일랜드 제외)은 1937년에 이루어졌다. 형제간 골육상쟁이 무려 16년이나 이어진 것이다.

다른 수많은 아일랜드 영화들은 사실은 북아일랜드 분쟁 사태를 다룬 것들이 많다. 대중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영화는 ‘아버지의 이름으로’다. 짐 셰리던이 만들었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의 한 선술집, 길포드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1976년의 일이다. 이때 한 히피 젊은이가 체포되는데 그의 이름은 제리 콘돈이다. 그는 영국 경찰의 고문과 회유에 못이겨 거짓 진술을 하고 이후 14년의 옥살이가 이어진다. 그는 점차 각성된 정치역사 의식으로 옥중 투쟁에 나선다.

북아일랜드 갈등은 세가지의 중층 모순이 깔려 있다. 제1의 모순은 영국 대 아일랜드의 갈등이다. 제2의 모순은 가톨릭 대 개신교인데 아일랜드인들 대다수는 가톨릭이지만 북아일랜드에는 영국이 분할 통치를 위해 1700년대에 의도적으로 집단 이주시킨 개신교도인들이 많고 이들 대부분이 벨파스트에 몰려 산다. 가톨릭이 다수였지만 소수인 개신교도들이 구교도를 밀어 내고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됐다. 북아일랜드의 종교 갈등은 뿌리가 깊고 정치경제적이다. 제3의 모순이 바로 아일랜드 대 북아일랜드이다. 북아일랜드 문제는 지역과 종교, 국가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컨대 2016년에 나온 ‘71 : 벨파스트의 눈물’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벨파스트 출신의 영국 정규군 병사 게리 후크(잭 오코넬)로, 가족 생계를 위해 영국군에 지원한 상태다. 그런 그가 1971년 벨파스트에서 벌어진 격렬한 소요사태 진압군으로 투입됐다가 어느 골목에서 고립된다.

이 벨파스트 소요는 1969년 벨파스트 내 개신교들의 가톨릭 지역 봉쇄로 시작됐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2021년 케네스 브래너가 만든 수작 ‘벨파스트’에 담겨져 있다. 이 영화는 자신이 겪었던 어린 시절의 벨파스트 소요 사태를 다룬 자전적인 작품이다. 1969년의 유혈 충돌은 37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008년 스티브 맥퀸 감독이 만든 마이클 패스벤더 주연의 ‘헝거’는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며 옥중 단식 투쟁을 벌이다 사망한 보비 샌즈의 얘기를 다룬다. 제이슨 본 시리즈로 유명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명작 ‘블러디 선데이’는 1972년 북아일랜드 데리 시에서 벌어진 영국 공수부대의 대학살 사건을 그린다. 2013년작 ‘섀도우 댄서’는 IRA와 영국 정보부 사이에서 곤욕을 치르는 한 여성 폭탄 테러범의 기구한 사연을 실어 낸다.

역사가 깊을수록 영화가 범람한다. 기구한 사연이 많아서다. 아일랜드를 보면 한국이 보인다. 우리의 분단과 진영간 갈등이 보인다. 그 해법도 보인다. 영화가 종종 세상의 답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이유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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