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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판사가 줄었다"…법조일원화 10년차 법원의 고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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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가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법조일원화의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로 10주년 심포지엄(학술토론회)을 열었다고 밝혔다. 사진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환영사 하는 모습. [대법원 제공]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법조일원화의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로 10주년 심포지엄(학술토론회)을 열었다고 밝혔다. 사진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환영사 하는 모습. [대법원 제공]

사법연수원 졸업 후 곧바로 판사가 되지 않고, 변호사 등으로 경험을 쌓은 뒤 판사가 되도록 하는 ‘법조 일원화 제도’ 시행 10년을 맞은 가운데, 현직 판사 등 법조인들이 모여 ‘괜찮은 판사가 줄었다’는 고민을 공유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14일 법조 일원화 제도 도입 10주년을 맞아 ‘법조 일원화의 성과와 과제’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기조 발제를 맡은 박영재 법원행정처 차장은 판사 수가 줄었단 얘기부터 꺼냈다. 박 차장은 “제도 시행 전 매년 170명 가까이 대규모 임용됐던 신임 판사가 법조일원화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13년 100명 수준으로 떨어졌고, 최소 법조경력 요건이 3년에서 5년으로 확대된 2018년에는 39명을 고용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법조일원화는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갖춘 이들을 법관으로 뽑아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겠다는 사법개혁의 하나로 도입됐다. 법원 내부 문화에 길들지 않은 중견 법조인을 판사로 임명해 법원의 엘리트주의, 순혈주의 등을 깰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이에 따라 법관 임용이 되기 위해선 단계적으로 ▶2013년부터 3년 이상 ▶2018년부터 5년 이상 ▶2025년부터 7년 이상 ▶2029년부터 10년 이상의 변호사 경력이 요구된다.

2017년을 끝으로 사법시험은 폐지됐고, 2018년부터는 5년 이상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법관으로 임용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21년 신임 법관 임명식 당시 모습. [연합뉴스]

2017년을 끝으로 사법시험은 폐지됐고, 2018년부터는 5년 이상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법관으로 임용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21년 신임 법관 임명식 당시 모습. [연합뉴스]

법조계는 10년 이상으로 조건을 격상하는 2029년부터 ‘판사 부족’ 사태가 본격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변호사 10년 차 전후로 파트너 변호사 발탁이 결정되는 현실에 비추어 유능한 법조인력 자원이 줄어들 수 있다”(박영재 차장)라거나, “지원할 수 있는 경력 연차가 5년~7년~10년으로 길어질수록 지원자 수는 감소할 것”(이태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등의 관측이 우세했다.

판사 수급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법관 개개인의 업무 부담이 커져 판결의 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은 2021년 법관 임용 자격 기한을 현행 5년으로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국회에서 “의무경력 단축은 순혈주의 등을 깨겠다는 법조일원화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법안이 부결돼 무산됐다.

‘법관 고령화’도 제도 시행의 또 다른 암(暗)으로 지적됐다. 박영재 차장은 “법관 평균 연령은 2012년 39세에서 2022년 44세로 늘어났고, 부장판사의 평균 연령도 같은 기간 46.5세에서 49.7세로 늘어났다”며 “(경력 요건이 10년 이상으로까지 늘어나게 되면) 고령화에 따른 업무 효율 저하를 방지하는 방안 강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신유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장(부장판사)도 “많은 판사가 10년 이상 고연차 경력자들로만 판사 임용이 이루어지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력 법관 자질 문제에 대해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는  “전문지식과 성품 면에서 우수한 지원자가 충분하지 않아 좋은 법관을 선발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부장판사들을 인터뷰한 결과, 일부 초임·2년 차 배석 판사들의 실체법과 절차법에 대한 지식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면서 “(변호사 중에) 소위 ‘워라밸’을 찾기 위해 판사직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도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참석자들은 법관 처우 개선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한상규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7년, 10년 경력 가진 법조인들은 현실적으로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뒤집어 얘기하면 법관이 받는 보수보다 적은 보수를 받는 법조인들이 법관직을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주영 변호사도 “법관 정년 연장 및 정년 후 시니어 법관제도 도입, 급여 및 연금 등 경제적 보상의 개선, 전근·이동의 최소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관직의 다양화 필요성도 거론됐다. 박영재 차장은 “우리나라 법관의 업무량, 법관 처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전면적 법조일원화 시점에서 법관 충원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비교적 경미한 사건을 전담하는 법관직, 파트타임으로 근무하고 실비 변상적 보수만을 받으며 이익충돌이 없는 한 본래의 변호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법관직 등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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