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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신경과·산부인과 못받아요"…최후의 응급센터까지 난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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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관련 의료진 부재로 외과, 신경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일반골절) 환자 수용 불가”

13일 오후 서울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이 서울 지역 119 구급대원들이 보는 종합상황판에 띄운 메시지다. 고려대구로 병원은 이날 대동맥응급(복부)ㆍ산부인과 응급(분만)ㆍ장중첩/폐색(유아) 등 모두 10개 분야의 응급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이 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권역의 가장 중증 응급 환자들을 받아야 한다. 병원은 환자를 못 받는 이유로 ‘파업’을 명시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 병원 간호사의 약 10%(200여명)가 파업에 참여했다.

이날 병원에서 수술 중인 남편을 기다리고 있던 이 모(62)씨는 "안 그래도 이런 상황에 수술을 할 수 있겠느냐"고 병원 측에 미리 물어봤다며 "남편 수술은 좀 큰 수술이라 끝나고 바로 중환자실에 가야 해 괜찮다고 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수술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 의료 인력은 남기겠다고 얘기해왔다. 이씨는 "그런데 병원에서 수술 받고 나면 바로 일반 병실로 가야 하는 환자들은 안 받는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9시 45분쯤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주차장엔 집회 장소인 광화문으로 가는 관광버스 너댓대가 주차돼 있었다. 비옷을 걸친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보건의료노조) 노조원들이 바쁘게 버스에 올라탔다. 병원 로비에선 들어오는 환자들에겐 직원들이 “예약 안 했으면 진료가 불가능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병원 전체 직원이 약 1700명인 중앙의료원의 노조원은 1000명 이상이다.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가 13일 오전 7시부터 총파업에 들어가면서 의료진 부족 사태가 현실이 됐다. 보건의료노조엔 간호사를 중심으로 간호조무사ㆍ의료기사ㆍ약사ㆍ요양보호사ㆍ치료사 등 보건의료 직역들이 대부분 가입돼 있다. 의사들은 일부만 가입했지만 병동 간호사 등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응급실 수용과 수술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는 모양새다. 수도권 뿐 아니라 대전 충남대 병원도 “입원과 수술 못할 수 있다”고 공지하는 등 전국에 비상이 걸렸다. 일단 오는 14일까지 예고된 파업엔 사립대병원지부 28개, 국립대병원지부 12개, 특수목적공공병원지부 12개, 대한적십자사지부 26개, 지방의료원지부 26개 등이 참가한다. 노조가 밝힌 파업 참가자 수는 4만5000명이다. 고대구로병원ㆍ고대안암병원ㆍ이대목동병원ㆍ한양대병원ㆍ한림대성심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18곳도 참여했다. 노조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를 열었다.

"노조 파업으로 13~14일 수술을 전면 취소한다"고 밝혔던 국립암센터는 12일 밤까지 협상을 이어간 끝에 심각한 상황은 피했다. 서홍관 암센터 원장은 "당초 노조원 1100명 중 90%가 (파업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150명만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노조가 요구해온 사안에 대해 어느정도 합의를 이뤘다고 한다. 서 원장은 "병상도 이미 300개 이상 비웠고, 수술을 총 120건 취소했다"며 "다시 환자들한테 전화 돌리고 있는데 오늘 수술 1건, 내일 7건 정도 다시 하기로 했다"고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파업하는 이유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확대, 보건의료인력 확충,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 의사 확충과 불법 의료 근절, 공공의료 확충과 코로나19 대응에 따른 감염병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 확대 등을 들고 있다. 모두 사용자가 아닌 정부에서 정책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보건복지부가 "파업의 명분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이유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13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노조법에서 허용하는 파업의 권한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협상을 하라는 것이고, 근로조건 협상의 당사자는 사용자 측"이라며 "이렇게 하는 건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이날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를 기존의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높였다. ‘의료기관 파업 상황점검반’을 ‘중앙비상진료대책본부’로 전환하고 시ㆍ도 및 시ㆍ군ㆍ구별로 비상진료대책 본부를 구성해 진료 차질이 생기면 대응할 계획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보건의료 당정 현안점검 회의를 마친 뒤 “정당한 쟁의 행위를 벗어나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막대한 위해를 끼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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