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50억 퍼부은 강진항, 7년째 놀린다…딱 3주만 배 다녔던 이유 [영상] [2023 세금낭비 STOP]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난 6일 오전 전남 강진군 마량면 신마항. 이재인(61) 강진항운 노동조합장이 양식장 부표가 떠 있는 바다 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2016년 3월 완공된 항구가 7년 이상 방치되고 있어서다. 이 조합장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왔던 항만노동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떠난 항구”라고 말했다.

신마항은 전남도 등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국비 250억원을 받아 건설한 연안항이다. 당초 강진과 제주를 오가는 화물선을 운항하겠다던 계획이 빗나가면서 무용지물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신마항은 선박이 오가는 주요 항로에 양식장 허가를 내주는 바람에 화물선 운항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항만 건설 중인데…여객선 항로에 양식장 승인

전남 강진 신마항(現 강진항)에서 이재인 강진항운 노동조합장이 해역을 가리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강진 신마항(現 강진항)에서 이재인 강진항운 노동조합장이 해역을 가리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신마항은 2010년 12월 접안시설 180m, 화물부두 170m 규모로 착공했다. 5년 3개월여에 걸친 공사 후 2017년 10월 개항했으나 곧바로 암초를 만났다. 항만건설이 한창이던 2015년 화물선 뱃길 주변에 지자체가 어업권을 인정해준 게 화근이었다.

강진군과 인접한 장흥군은 2015년 6월 어민 요청에 따라 기존 8㏊ 규모였던 어업권 해역을 20㏊로 확장 승인했다. 이어 완도군도 같은 해 9월 기존 21㏊이던 어업권 구역을 45㏊로 늘렸다. 신마항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4㎞ 거리인 이곳엔 미역양식장이 들어섰다.

결국 신마항에선 2017년 10월 8일 3000t급 화물선이 첫 취항을 했으나 21일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지자체별 어업권이 설정된 해역을 피하려면 ‘ㄱ’자 운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초 항만 건설 전 400m이던 항로 간격도 어업권 확장 후엔 100여m까지 좁아져 안전운항을 위협했다.

어민들 “양식장 피해 크다” 반대 

전남 강진 신마항(現 강진항)이 2017년 화물선 첫 취항을 시작으로 21일만 운항하고 중단됐다. 사진은 화물선 항로 인근에 설치된 양식장.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강진 신마항(現 강진항)이 2017년 화물선 첫 취항을 시작으로 21일만 운항하고 중단됐다. 사진은 화물선 항로 인근에 설치된 양식장. 프리랜서 장정필

어민 불만도 운항 중단에 한몫했다. 신마항에서 제주로 향하는 항로에 김·미역·매생이·전복 양식장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어민들은 “3000t급 화물선이 지나면서 생기는 파도 때문에 양식 중인 해산물이 유실되는 등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화물선 운항이 중단되자 항만노동자 25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이 조합장은 “신마항 개항에 맞춰 2017년 7월 25일 항운조합을 설립하고 전국 각지에서 조합원을 모았는데 한 달도 못돼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화물선 운항이 중단된 직후만 하더라도 노동자들은 재취항을 기다렸다고 한다. 운항이 중단된 뒤에도 인근 지역에서 농사일이나 일용직 등을 하며 버텼으나 결국 뿔뿔이 흩어졌다. 신마항 개항 전부터 크레인이나 지게차 자격증을 따서 강진에 정착하려던 꿈도 물거품이 됐다.

재취항 기대하다 뿔뿔이 흩어져

전남 강진 신마항(現 강진항)에 위치한 강진항운 노동조합원 대기실에서 이재인 항운 조합장이 안전모를 만지며 옛 생각에 잠겨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강진 신마항(現 강진항)에 위치한 강진항운 노동조합원 대기실에서 이재인 항운 조합장이 안전모를 만지며 옛 생각에 잠겨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신마항 개항에 맞춰 설립된 항운조합 측 피해도 컸다. 이 조합장은 “당시 화물 하역을 위해 1년간 임차한 크레인과 지게차 등 중장비를 조기 반납해야 했다”며 “중장비 대여와 조합원 관리비 등으로만 5억원 이상 손해를 봤다”고 했다.

이 조합장은 전남도와 강진군 등을 다니며 화물선 재취항을 촉구하고 있다. 조합원 중 상당수가 재취항만 된다면 다시 강진에 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는 “짧은 동안이나마 희로애락을 함께한 조합원이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든 재취항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양식장 축소 등 ‘항로 변경’ 촉구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이 조합장 등은 기존 항로를 벗어나 완도군이 어업권을 허가한 해역 쪽으로 항로를 변경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어업권을 취소·축소해야 하는데, 어민과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완도군 관계자는 “어업권은 유효기간 10년이 지나면 연장 또는 재신청을 하는데 허가 난 어업권역을 줄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피해 보상을 하더라도 어민 생계가 달려있어 합의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마항 화물선 운항 중단은 지자체 간 소통 부재와 탁상행정 결과물이라고 한다. 항만 건설을 추진한 전남도가 완도·장흥군 어업권 확장 허가를 동시에 승인한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전남도 수산정책팀 관계자는 “어업권은 승인 기간이 한 달이어서 현장실사 등이 어려운 데다 당시 완도·장흥군이 올린 어업권 승인 요청서류에 법적인 문제가 없어 승인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강진군 “운항 불가능 땐 해양레저시설 등 검토”

전남 강진 신마항(現 강진항)이 2017년 화물선 첫 취항을 시작으로 21일만 운항하고 중단됐다. 사진은 최근 신마항의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강진 신마항(現 강진항)이 2017년 화물선 첫 취항을 시작으로 21일만 운항하고 중단됐다. 사진은 최근 신마항의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강진군은 신마항 활성화 방안을 찾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항로 확보 위한 시뮬레이션 용역’을 추진했으나 어민 반대로 무산됐다. 강진군은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한 화물선 운항 안전성 검사 등을 위해 8월 중 목포해양대와 용역계약을 할 예정이다. 신마항은 지난해 7월 주민 의견을 반영해 강진항으로 이름을 바꿨다.

오종숙 강진군 해양개발과장은 “올해 연말쯤 나올 용역 중간보고를 지켜본 후 어민과 항만 관계자, 주민 의견을 들을 예정”이라며 “화물선 재취항이 최우선적인 과제이지만 운항이 불가능하면 항만을 해양레저관광 시설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