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버스 타러 갔다 거장을 만나다…예술 품은 ‘복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아트에 진심인 이영민 DTC 부회장 

더 컬렉터스

‘미래교통 허브’ 대전엔 이미 ‘아트 허브’가 있습니다. ‘복터’라고 불리는 대전복합터미널(DTC). 대형쇼핑몰·멀티플렉스 등도 유명하지만, 세계적 예술작품을 품은 복합공간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아트에 진심인 이영민 DTC 부회장 겸 DTC아트센터 관장을 만났습니다. 그의 컬렉션을 함께 감상하시죠.

이영민 대전복합터미널(DTC) 부회장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가까이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곳 터미널 전시 공간에서는 지난 10년간 임동식 특별전 등 미술품 전시가 50여 회 열렸다. 사진은 지난해 터미널 대합실에 설치된 로버트 테리엔의 ‘테이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영민 대전복합터미널(DTC) 부회장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가까이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곳 터미널 전시 공간에서는 지난 10년간 임동식 특별전 등 미술품 전시가 50여 회 열렸다. 사진은 지난해 터미널 대합실에 설치된 로버트 테리엔의 ‘테이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에 ‘고터’가 있다면 대전엔 ‘복터’가 있다. ‘고터’는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 ‘복터’는 대전시 동구의 대전복합터미널(DTC·Daejeon Termnial City)을 말한다. ‘고터’가 그렇듯이 ‘복터’에는 대형 쇼핑몰을 비롯해 멀티플렉스와 대형 서점이 있고 레스토랑과 병원 등 약 200개의 상점이 있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 대전복합터미널이 특별한 공간이 된 것은 미술관처럼 건물 안팎으로 예술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숲을 가꾸듯이 미술을 심고 가꾸며 키워 온 주역은 DTC 이영민 부회장 겸 DTC아트센터 관장이다. 1972년에 설립된 대전고속버스터미널과 1980년에 설립된 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이 통합한 것이 DTC다. 2011년 12월 DTC가 새 출발하면서 이 부회장의 예술 프로젝트도 함께 시작됐다.

2015년 야외 조각광장에 설치된 베르나르브네의 철 조각 ‘선’. [사진 DTC]

2015년 야외 조각광장에 설치된 베르나르브네의 철 조각 ‘선’. [사진 DTC]

이 부회장은 “DTC가 자리하기 전까지 대전 시내 주변에는 이렇다 할 문화시설이 없었다”며 “이곳 터미널을 단순히 버스를 타고 내리는 곳이 아니라 재미와 감동,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2년간의 공사 기간 이 부회장은 타일 하나 선정부터 외관 조경까지 모든 결정 과정에 깐깐하게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야외 광장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은 그가 가장 공들인 부분이다.

처음에는 설총식 작가의 ‘자리만들기-바라보는 이’, 옥현숙 작가의 ‘대전으로 가는 여행’, 전범주 작가의 ‘춘하추동’ 등이 설치됐다. 작품들에 대한 터미널 이용객들의 반응은 좋았다. 이후 베르나르 브네의 철 조각 ‘선(線)’(2015년), 토니 크랙의 작품 ‘러너(Runner·2019년)’, 하우메 플렌자의 ‘산나’(2020년) 그리고 대합실에 로버트 테리엔의 거대한 테이블 설치작품(2022년) 등 세계적인 미술품들이 더 들어왔다.

외부 조형물 설치에 이어 터미널 내부에도 전시 공간이 만들어졌다. 동관과 서관 두 건물을 잇는 2층 연결 통로(DTC 아트센터 d1)에서는 미술품 전시가 수시로 열린다. 또 동관 1층에도 전시공간(d2)이 있다. 이쯤 되면 DTC는 ‘아트’에 진심인 터미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설치된 하우메 플렌자의 ‘산나’. [사진 DTC]

2020년 설치된 하우메 플렌자의 ‘산나’. [사진 DTC]

이곳에서는 2013년부터 지난 10년 동안 전문 큐레이터를 영입해 초대전과 그룹전을 통해 다양한 작가를 소개하는 등 기획전시가 꾸준히 열렸다. 지금까지 총 50여 회, 참여 작가 수만 300여 명에 달한다. 특히 연례기획전인 ‘다큐멘타 대전’은 2013년 개관 전시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총 열 차례 열렸다. 2013~2020년은 황찬연 예술감독이, 2021~2022년은 조관용 예술감독이 맡아 진행했다. 코로나19로 인간관계의 단절을 경험하던 시기에는 ‘숨 쉬다’(2020), ‘그대가 오는 시간’(2021)으로 동시대 이슈를 살펴보는 전시를 열었다.

일반인들은 볼 수 없지만 터미널 건물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접견실 등 곳곳에 다채로운 미술품이 전시돼 있다. 대부분 DTC 법인 컬렉션이다. 김환기, 김창열, 박서보, 임동식, 강요배, 전뢰진 등 국내 거장들의 작품은 물론 김배히, 민병길 등 DTC 전시를 거쳐 간 작가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그동안 터미널 내부에 있는 전시 공간 d1, d2에서 많은 전시가 열렸지만 상업 갤러리처럼 작품을 판매하지 않아 수익을 내는 것도 아니다. 이 부회장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남편(이만희 회장)과 함께 미술강좌를 들으며 작품에 대해 교감하고 얘기 나눌 기회를 갖게 돼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터미널이 예술을 품은 독특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이 부회장에겐 어떤 의미일까.

“미술관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바로 곁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며 생활 한가운데서 문화를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의미 있는 일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