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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美정찰기 침범, 자작지얼될 것"…한밤에 '참변' 협박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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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0일 밤 담화를 내고 이날 새벽 "미국 공군 전략정찰기가 북한의 경제수역 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국방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 정찰기가 북한의 영공을 침범했다고 근거 없는 주장을 했던 것의 연장선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해외 순방에 나선 틈을 타 근거 없는 트집 잡기를 이어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여정 "美가 공중 정찰" 억지 주장

김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오늘 새벽 5시경부터 미 공군 전략정찰기는 또다시 울진 동쪽 270여㎞∼통천 동쪽 430㎞ 해상 상공에서 우리측 해상 군사분계선을 넘어 경제수역 상공을 침범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부 지역에 대한 공중정찰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김 부부장은 이어 "우리 공군의 대응 출격에 의해 퇴각했던 미 공군 정찰기는 8시 50분경 강원도 고성 동쪽 400㎞ 해상 상공에서 우리측 해상 군사분계선 상공을 또다시 침범하면서 공중정찰을 하는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걸어왔다"며 "우리 군대는 이미 미군 측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간첩 비행기들이 아군 해상 군사분계선을 넘어 침범하곤 하는 우리 경제수역 상공, 그 문제의 20∼40㎞ 구간에서는 필경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부부장은 또 "우리는 미군이 우리측 경제수역을 침범하지 않고 그 바깥에서 정탐 행위를 하는 데 대해서는 직접적인 대응은 하지 않을 것이지만 만약 또다시 해상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 측 경제수역을 침범할 시에는 분명하고도 단호한 행동으로 대응할 것임을 위임에 따라 반복하여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더우기 참변까지 당한다면 분명 그것은 자작지얼(自作之孼)로 될것이다"라며 위협했다. 자작지얼은 '자기가 저지른 일 때문에 생긴 재앙'을 뜻하는 말로 김 부부장이 '참변', '재앙' 등을 대놓고 언급하며 남측에 대한 노골적인 위협에 나선 것이란 지적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조선중앙TV.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북한이 말하는 경제수역은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보인다. EEZ는 기준선에서 200해리까지 영역으로 주권이 미치는 12해리 안의 지역을 뜻하는 영해와는 다른 개념이다. 북한이 경제수역을 빌미로 영해 침범을 주장한 것이 법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신빙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합참 "사실 아니다" 일축 

김 부부장의 담화가 나온지 1시간여 만에 합동참모본부는 공식 입장을 내고 "북측은 오늘 재차 한·미 동맹의 공해 상공에서의 정상적인 비행 활동에 대해 위협적 언동을 통해 의도적으로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바, 이 같은 행동을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며 "한·미 동맹의 정상적인 비행 활동에 대한 북측의 행동으로 초래되는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북측에 있다는 점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앞서 북한은 이날 오전에도 ‘위험천만한 미국의 도발적 군사활동들을 주시한다’는 제목으로 발표한 국방성 대변인 담화에서 "최근 미국은 각종 공중정찰수단들을 집중 동원해 조선반도와 그 주변지역에서 적대적인 정탐활동을 유례 없는 수준에서 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미 정찰기 RC-135, U-2S, RQ-4B(글로벌호크)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동해에서는 몇 차례나 미 공군 전략정찰기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이 행사되는 영공을 수십㎞나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도 했다.

미 공군 정찰기 RC-135S 코브라볼. 연합뉴스.

미 공군 정찰기 RC-135S 코브라볼. 연합뉴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북한의 주장이 나온지 3시간만에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군 관계자는 "미 정찰기가 북한 영공에 들어갔다는 말을 누가 믿겠느냐”며 “현실적으로 수백㎞ 밖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정찰기가 굳이 북한 영공에 들어갈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순방 틈타 '억지 주장' 

북한의 잇따른 억지 주장과 관련해 북한이 전승절이라고 부르는 오는 27일 6·25전쟁 정전 협정 체결일 전까지 의도적으로 한반도 주변의 긴장을 고조하려는 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윤 대통령이 10일 나토 정상회의 등 참석 차 4박 6일 일정으로 리투아니아·폴란드 순방에 나선 틈을 타 국내 혼란을 야기하려는 시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날 북한의 행태는 2020년 6월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 북한이 남한을 생트집으로 몰아붙였던 것과 유사한 패턴"이라며 "국방성에 이어 김여정 부부장까지 나서서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는 건 오는 27일 전승절까지 어떻게든 외부의 긴장을 유지해 추가 도발의 빌미로 삼으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김 부부장의 담화가 나온 시간대에도 주목한다. 북한은 김 부부장의 담화를 이례적으로 이날 오후 9시경에 발표했다. 미국 워싱턴 기준으로는 오전 8시경으로, 명확히 미국을 겨냥한 담화란 분석이 나온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이 김여정 담화를 통해 중대 도발을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선 모습"이라며 "미국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만큼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발언 수위를 가져갈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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