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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루나 폭락사건' 의견서 아무도 안냈다…재판 뒤 숨은 신경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테라·루나 폭락 사건 첫 재판이 검찰 공소사실 등에 대한 테라폼랩스(이하 테라) 측의 의견서 미제출로 공전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부장 장성훈)는 10일 테라·루나 폭락 사건의 1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그러나 테라 측 변호인들이 이날까지 공소사실과 증거 인부(인정 여부)에 관해 아무런 의견서를 내지 않아 쟁점이나 입증 계획 등을 정리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원래 공소가 제기되면 공소장을 받고 7일 이내에 간략하게 의견서를 내는데 피고인 8명 중 아무도 내지 않았다. 오늘 진행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테라 측은 “이 사건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전문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건인 데다 기록이 방대해 6월 하순에야 열람·복사를 마쳤다”며 “6~8주간 기록 검토를 마친 뒤 조속히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인 신현성 차이페이홀딩스컴퍼니 대표 등 피고인 8명은 모두 불출석했다. 공판준비기일의 경우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다.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인 신현성(사진) 차이페이홀딩스 대표 측은 테라·루나 폭락 2년 전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와 결별해 그 이후의 테라 프로젝트는 자신과 무관하다며 선을 긋고 있다. 사진은 신 대표가 지난 3월 30일 두 번째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인 신현성(사진) 차이페이홀딩스 대표 측은 테라·루나 폭락 2년 전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와 결별해 그 이후의 테라 프로젝트는 자신과 무관하다며 선을 긋고 있다. 사진은 신 대표가 지난 3월 30일 두 번째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제사실부터 티격태격 

 앞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 단성한)는 지난 4월 25일 신 대표 등 전·현직 테라·커널랩스 관계자 8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이들은 가상자산을 지급수단으로 사용하는 전자금융거래 사업을 금융당국이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테라 코인의 가격을 고정하는 알고리즘에 오류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2018년 7월~지난해 5월 테라를 결제수단으로 사용하는 테라 프로젝트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는 것처럼 허위 홍보하고 자전 거래를 통해 거래량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속였다는 혐의(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를 받는다. 검찰은 이들이 최소 약 4679억원의 부당이득을 거두고 약 3769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테라 측은 ▶테라 프로젝트 자체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거나 ▶관련 사업을 허위로 홍보했다는 공소사실의 전제부터 틀렸다고 맞서고 있다. 테라 측은 “당시 국내 공신력 있는 대형 로펌들이 각종 법률을 검토하고 금융당국의 입장도 확인해 자문해 준 결과에 따라 적법하게 사업을 진행했다”며 “가상자산을 활용한 결제사업이 불가능하다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했다거나, 금융당국의 경고를 받았는데도 사업을 강행했다는 검찰 공소사실의 대전제가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치 고정 알고리즘에 대해서도 “블록체인 전문가 다수와 국내외 유수 투자자들의 검증을 거쳐 출시됐고, 초기 시장 형성 단계에서는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 단성한·사진) 테라·루나 수사팀(팀장 이승학)은 지난 4월 25일 신현성 대표 등 테라폼랩스 관계자 8명을 불구속기소하면서 루나 코인 등을 증권으로 판단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뉴스1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 단성한·사진) 테라·루나 수사팀(팀장 이승학)은 지난 4월 25일 신현성 대표 등 테라폼랩스 관계자 8명을 불구속기소하면서 루나 코인 등을 증권으로 판단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뉴스1

최대 쟁점은 루나 증권성

 검찰은 테라가 발행한 루나미러토큰(mAsset·미러프로토콜을 통해 미국 주식 가치를 추종하는 가상자산)을 각각 투자계약증권파생결합증권으로 판단, 한국에서 가상자산 관련 범죄로는 처음으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부정거래를 비롯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금융위원회 인가 없이 투자매매·중개업을 했다는 등의 혐의(공모규제위반·무인가영업)가 그래서 추가됐다.

이와 관련, 검찰은 루나 코인 보유자들이 테라 결제가 발생할 때마다 받는 거래 수수료를 테라 프로젝트라는 사업의 수익으로 본다. 그러나 테라 측은 루나 코인을 블록체인 검증에 활용하도록 맡긴 뒤(‘스테이킹’) 대가 또는 보상을 받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루나를 투자계약증권으로 인정하려면 ‘주로 타인이 수행한 사업의 결과에 따른 손익을 귀속 받는 계약상의 권리’란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거래 수수료를 ‘스테이킹’이라는 투자자의 노력에 따른 보상으로 간주할 경우 이 요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은 지난달 19일 테라폼랩스 권도형(사진) 대표와 한창준 CFO에 대해 위조 여권 행사 등의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비예스티=연합뉴스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은 지난달 19일 테라폼랩스 권도형(사진) 대표와 한창준 CFO에 대해 위조 여권 행사 등의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비예스티=연합뉴스

권도형 송환에 기대 거는 檢 

 또 다른 변수는 주범 격인 권도형 테라 대표의 송환 여부다. 테라의 권 대표와 한창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3월 23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위조 여권 행사 등의 혐의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같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19일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징역 4월을 선고받아 스푸즈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현지 법원은 지난달 15일 권 대표 측의 보석 청구를 받아들이면서도 한·미 법무부가 각각 청구한 범죄인 인도 절차를 고려해 6개월 구금을 명령했다. 검찰 관계자는 “법무부 국제형사과가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면서 필요한 서류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찰은 권 대표가 구금 기간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 소유 전자지갑에서 약 2900만 달러(378억원) 상당의 코인을 현금화해 빼돌린 정황을 포착하고 우선 남은 자산을 동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앞서 권 대표는 테라·루나 폭락 전 보유한 루나를 비트코인 1만개로 바꾼 뒤 스위스 시그넘 은행에 예치하곤 지난 2월까지 약 1억 달러(1304억원) 이상을 인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권 대표가 국내로 송환될 경우 신 대표 등 관련자들의 혐의 입증이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신 대표 측은 테라·루나 폭락 사태 2년 전 이미 결별하고 테라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다는 점을 강조하며 권 대표와 선을 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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