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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3억은 지금도 된다"는데…결혼자금 세 공제 확대의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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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연수구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다. 김기환 기자

인천 연수구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다. 김기환 기자

이모(40)씨는 2019년 결혼할 때 서울 송파구의 신혼집을 전세금 5억5000만원에 구했다. 이씨 부부가 결혼 전까지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돈은 1억5000만원가량. 나머지 4억원 중 2억원은 대출을 받았다. 그러고도 모자라는 2억원은 양가 부모님께 손을 벌렸다. 증여세를 물지 않고 부모한테 물려받을 수 있는 돈이 5000만원이라, 양가에게 각각 5000만원씩 지원받은 것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남는 1억원은 따로 신고하지 않았다. 이씨는 “주변에서 부모님께 도움을 받은 다음 증여세를 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신혼부부 증여세 공제 한도 상향을 검토하는 가운데 과세 ‘그물망’을 촘촘하게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혼 비용 부담에 시달리는 청년층을 고려해 제도를 손질하더라도, ‘결혼자금’이 탈세 수단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부모·조부모 등 직계존속이 자녀·손주 등 직계비속에게 10년간 최대 5000만원(성인 자녀 기준)까지 비과세 증여할 수 있도록 한 공제 한도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혼인신고 전후 2년간 이뤄진 결혼자금 증여분을 일정 금액까지 증여세 과세 대상에서 공제해주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혼인신고 전 1년~신고 후 1년 사이에 전세 보증금, 주택구매자금 등을 부모로부터 지원받는 경우 일정 금액까지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기재부는 이달 하순 2023년 세제 개편안을 발표할 때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에 관한 세부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다. 어디까지를 결혼자금으로 볼지, 결혼자금을 입증하는 별도의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할지 등도 이때 함께 발표한다. 2014년 마련한 증여세 공제 기준을 10년째 유지한 만큼 그동안 오른 물가와 부동산 가격을 고려할 때 공제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통계청 ‘2022년 신혼부부 통계’에 따르면 1년 차 신혼부부의 주택 소유 비중은 30.7%다. 87.9%가 대출(대출액 평균 1억3500만원)을 받았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관건은 자녀가 증여받은 재산 중 어디까지를 ‘단순 증여’가 아닌 ‘결혼자금’으로 볼지 가려내는 것이다. 증여세는 재산을 받은 사람이 신고한다. 다만 어떤 목적으로 증여받았는지 구분하지 않아 말 그대로 결혼하는 데 필요한 돈을 물려받았는지, 단순 증여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탈세 소지가 있다.

기존에도 부모로부터 주택구매 자금을 증여받고도 증여세를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국세청은 스스로 힘으로 재산을 취득하거나 부채를 갚았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 ‘자금출처 조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2억~3억원 수준까지 자금은 출처 조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뒤늦게 증여세 탈루가 드러나더라도 차용증을 쓰는 등 과세를 피해갈 수 있다는 맹점도 있다.

기재부는 일단 결혼과 가까운 시기에 발생하는 금전 거래에 주목할 예정이다. 증여의 가장 큰 목적이 신혼집 마련인 만큼 주택 매수 혹은 전세 계약 시기에 목돈을 지원받는 경우 결혼자금으로 볼 수 있을지 등 구체적인 기준을 검토 중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신혼부부 증여세 공제 한도 확대는 정부 설명대로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는 측면보다 결혼을 계기로 사전 증여(피상속인이 사망하기 전 재산을 물려주는 것)를 늘려 부의 세대 간 이전을 촉진하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며 “증여세 공제와 관련해 혼인신고한 날짜부터 몇 개월 이내라거나, 주택 구매·전세 계약에 보탰다거나 하는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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