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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상승률 유럽 6%, 美 4%인데…韓 '2%대' 선방한 이유 있다

중앙일보

입력

2.7%.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다. 지난해 7월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이 6.3%까지 오른 이후 서서히 둔화했고, 21개월 만에 2%대로 진입했다. 고물가 공포에선 일단 벗어났다는 평가다. 선진국 중심으로 아직 연쇄적인 물가 상승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다.

소비자물가상승률, 21개월 만에 2%대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소비자물가상승률, 21개월 만에 2%대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고물가 공포 먼저 벗어난 한국

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3.3%)은 OECD 38개 회원국 중 6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한국보다 물가가 덜 오른 나라는 스위스(2.2%), 그리스(2.8%), 덴마크(2.9%), 스페인(3.2%), 일본(3.2%)뿐이다. 한국의 6월 물가상승률(2.7%)로 비교한다면 2번째로 낮은 수준까지 기록하게 된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미국은 최근 들어 물가상승률이 둔화했다지만, 5월 기준 4%를 기록했다. 같은 달 유럽연합은 7.1%, 영국은 7.9%였다. 이 때문에 미국은 기준금리를 5%~5.25%까지 올리고도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고, 영국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으면서 5%대에 이르렀다. 반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하반기엔 (물가상승률이) 평균 2% 중반이나 후반대에 머물 것”이라고 말하면서 물가가 안정기에 접어들었음을 공식화했다.

왜? ①정부의 물가 관리

식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만 따로 보면, 5월 한국은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2.8% 올랐다. OECD 회원국 중 이스라엘(1%)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같은 달 OECD 평균 식료품 물가 상승률은 11%다. 프랑스(14.9%), 영국(18.4%) 등 유럽권은 한국과의 차이가 더욱 벌어진다. 식료품은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한국 정부가 간접적으로 민간 물가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다른 나라와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동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럽이나 미국 등과 비교해 한국은 정부가 물가를 관리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물가의 세부적인 지수를 보면서 많이 오른 게 있으면 기업에 조정해달라고 하는 게 대표적”이라며 “나쁘게 보면 간섭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효율적인 관리”라고 설명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실제 추 부총리는 지난달 라면업계를 겨냥해 “지난해 9~10월 가격을 많이 올렸는데 지금은 밀 가격이 내린 만큼 다시 적정하게 가격을 내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농심·삼양·오뚜기 등 라면업계는 일제히 일부 제품 가격을 낮췄다. 정부는 식품업계와 수시로 간담회를 열고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해왔고, 공정거래위원회도 담합 포착을 위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5일 서울에 위치한 한 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라면을 구매하고 있다. 뉴스1

5일 서울에 위치한 한 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라면을 구매하고 있다. 뉴스1

②애초 비쌌던 에너지 가격

역설적이게도 애초부터 한국의 에너지 수입 가격이 비싼 구조다 보니 물가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석유류·천연가스 가격 급등을 불러온 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독일 등 유럽 국가는 가스관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해왔는데 전쟁 이후 수입이 제한되자 배를 통해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LNG는 기체 형태의 천연가스보다 가격이 비싸다. 그만큼 유럽의 에너지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액체 상태의 천연가스는 가스관을 통해 기체 형태로 수입하는 것보다 가격이 1.5~2배 비싸다”며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에너지를 수입하던 유럽으로선 가격 부담이 더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OECD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에너지 물가는 전년 대비 19% 올라 네덜란드(70.6%), 독일(30.2%) 등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③공공요금 통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 전기·가스 생산 비용도 증가한다. 생산비용을 공공요금에 곧바로 반영하는 미국·유럽 등과는 달리 한국은 공공요금을 사실상 정부가 결정하는 구조다. 에너지 가격 급등 충격이 닥친 영국은 지난해 한때 전기·가스·수도 물가상승률이 전년 대비 88.9%에 달했다.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이 오르면 가공식품은 물론 외식 등 서비스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기재부 관계자는 “유럽의 경우 ‘원자재·공공요금 인상→상품·서비스 가격 인상→임금 인상→물가 상승’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선형 인플레이션 구조를 끊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다만 한국은 공공요금 인상을 자제하는 동안 한국전력의 부채가 대거 쌓인 만큼 추가 공공요금 인상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에너지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고 해도 지금껏 쌓인 적자를 메우기엔 역부족”이라며 “누적 적자를 해소하려면 전기요금을 한참 더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기요금을 내리는 추세인 다른 나라와 역행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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