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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프리고진 암살? 용서? 재활용? 자존심 타격 푸틴의 계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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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의철 전 합참차장이 보는 러시아 반란 사태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이 발생(6월 23일)한 지 보름이 다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상황을 장악하면서 하루짜리 반란은 찻잔 속 태풍처럼 잦아드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러시아 국내는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도 적잖은 파문을 줄 전망이다.

총 잡은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2021년 12월 국방위원회 확대간부회의를 마치고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함께 군수 전시회를 방문해 무기를 살펴보고 있다. [AP=뉴시스]

총 잡은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2021년 12월 국방위원회 확대간부회의를 마치고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함께 군수 전시회를 방문해 무기를 살펴보고 있다. [AP=뉴시스]

바그너 사태 국내외 파문에도
푸틴의 국내 지지 흔들림 없어
군 지휘부 통일성·효율성은 커져
우크라 주춤, 전쟁 장기화 조짐
양국 내년 3월 대선 후 협상 전망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62)이 주도한 반란은 왜 일어났으며, 앞으로 러시아 국내는 물론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을 줄까. 휴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까, 오히려 전쟁을 장기화하는 작용을 할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윤의철(59)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예비역 육군 중장)을 인터뷰했다. 육사(43기) 출신으로 포병 주특기인 그는 28사단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장, 7기동 군단장, 교육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대중적 인기 얻은 프리고진 견제
 -이번 사태를 어떻게 지켜봤나.

 "서방에서는 러시아의 혼란을 유도하는 호기로 여겨 쿠데타라며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검찰은 형법 279조를 근거로 군사반란으로 규정했다. 쿠데타라면 정권 교체를 목표로 세우고 언론을 장악해 정당성을 국민 앞에 설득하는 계획과 행동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치밀한 정치적 행위는 없었다. 프리고진의 행위는 쿠데타보다는 무장반란으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윤의철 전 합참차장이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윤의철 전 합참차장이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번 사태의 원인은.
 "먼저 정치적·군사적 이유가 있다. 첫째, 정치적 이유는 내년 3월 실시하는 러시아 대선과 관련이 있다. 푸틴 대통령과 군 지휘부는 크림 반도에 이어 루한스크·도네츠크·자포리자·헤르손 주를 차지하며 전쟁을 잘 이끌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 심어줘 대선에서 확실한 지지를 얻고 싶어 했다. 그런데 비정치인이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은 프리고진이 군 지휘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파열음을 일으키자 그를 전쟁에서 배제해 정치적 싹을 자를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프리고진과 군 지휘부의 알력도 심했다던데.
 "푸틴과 군 지휘부는 지난 6월 10일 그동안 독자 행동을 해온 바그너 그룹의 용병들이 군 당국의 단일한 지휘 체계를 따르며 전투를 수행하도록 7월 1일까지 재계약하라고 요구했다. 프리고진이 이런 조치에 반발하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프리고진이 '계륵'이 된 셈인가.
 "그동안 러시아군이 총동원령을 발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공식적으로 병력을 모집하는 꼼수로 바그너 그룹이 용인되고 활용됐다. 그런데 군 지휘부의 작전 지휘에 따르지 않고 프리고진이 독자적 작전에 나서면서 군 지휘의 통일성이 약해졌다. 바그너 그룹이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만과 착각에 빠진 프리고진은 무능한 간신들인 군 지휘부를 징벌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여겨 반란을 일으켰지만,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6월 23일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텔레그램 영상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들은 애국자라고 주장했으나 하루 만에 회군했다. [AFP=연합뉴스]

6월 23일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텔레그램 영상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들은 애국자라고 주장했으나 하루 만에 회군했다. [AFP=연합뉴스]

'프리고진 암살' 명령설 더 지켜봐야
 -파죽지세였던 프리고진은 왜 모스크바 200㎞ 지점에서 회군했을까.

 "프리고진은 세르게이 쇼이구(68) 국방부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68) 총참모장의 농간을 문제 삼으면 푸틴이 바그너 그룹의 재계약 결정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도중에 푸틴의 결심이 확고하고 반란에 대해 진노하자 진격을 멈췄다. 프리고진의 잘못에 대한 선처를 중재한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역할도 주효했다."
 -러시아의 후방 방어 태세가 '종이 호랑이'처럼 허술해 보였다.
 "세계 2위 군사력을 보유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전선에 병력의 대부분을 투입해 모스크바에는 친위부대만 남아 있었다. 반란에 대응할 군사력이 제한적이었다는 이야기다. 예로부터 러시아는 광활한 국토 자체를 방어력으로 삼고, 적에게 땅을 내주며 시간을 벌었다. 전략적으로 꼭 지켜야 할 곳만 지키며 버텼다. 푸틴과 군 지휘부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바그너 그룹의 진격 과정에서 군사적 충돌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먹혔다."
 -푸틴의 리더십이 흔들릴까.
 "자존심에 상처가 났겠지만, 급변 사태가 일어날 상황도 아니다. 전쟁과 푸틴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관료와 언론은 슬라브주의 등 푸틴의 통치 이데올로기와 비전을 여전히 확고하게 지지한다.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로 진군할 때 보였던 시민들의 환호는 정치적 지지라기보다는 러시아를 위해 싸운 데 대한 감사의 응원으로 볼 수 있다."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이 2022년 12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합동참모본부 회의에 참석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두 사람을 간신이라 지목했다. [AP=연합뉴스]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이 2022년 12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합동참모본부 회의에 참석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두 사람을 간신이라 지목했다. [AP=연합뉴스]

 -앞으로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
 "반란 수습 과정에서 푸틴의 민간 군사 기업에 대한 장악력이 확고해질 것이다. 제2의 반란과 쿠데타는 어려울 것이다. 푸틴은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의 국고 횡령 수사 등 다양한 법적 조치로 행동의 자유를 옭아맬 것이다. 연방검찰청이 프리고진의 친인척과 측근 및 사업체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별건 수사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의 운명은.
 "프리고진에 대한 암살 지시가 있었다는 우크라이나 국방 당국의 발표는 러시아 지도부와 프리고진을 분열시키려는 심리전일 수 있다. 그가 암살될지, 또 다른 충성 기회를 받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푸틴은 굳이 바그너 그룹을 해체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별도의 임무를 부여하는 등 다른 활용 방안을 찾을 거다."

러시아, 양동작전 펼 가능성도
 -미국은 반란에 모종의 역할을 했을까.
 "러시아군 지휘부와 프리고진 사이를 벌려 놓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정보작전을 전개해왔을 수 있다. 다만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푸틴이 '치명적으로 실패'하기보다는 글로벌 전략적 안정이 무너지지 않는 수준에서 '전략적으로 실패'하길 바랄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미국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줄곧 지원해왔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미국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줄곧 지원해왔다. [AFP=연합뉴스]

 -반란은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 어떤 영향을 줄까.
 "전술적 전투에 능한 정예 바그너 그룹 용병(5000~8000명 추산)들이 돈바스 지역에서 이탈함으로써 러시아에 부분적 전투력 감소가 생겼겠지만 감수할 수준이다. 오히려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이 돈바스 전선에서 제외되면서 전쟁의 효율과 효과 측면에서 보면, 얻는 이익이 손실을 상쇄하고 남을 것이다. "
 -이익이 크다는 판단의 근거는.
 "첫째, 러시아가 전장에서 지휘의 통일을 이루게 됨에 따라 작전과 전술적 전투의 효율성이 증진된다. 둘째, 정규군과 바그너 그룹의 분열, 나아가 러시아군 지휘부의 분열을 노린 우크라이나의 심리전과 여론전에서 벗어났다. 셋째,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이 벨라루스로 이동함에 따라 동부전선에서 있을 우크라이나의 반격 압력을 북부 전선으로 분산할 기회를 얻었다. 양동작전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대반격을 노리고 있는데.
 "가을까지 잃었던 땅을 되찾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방어 취약점을 찾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찔러보는 '위력 수색'을 진행 중이지만 성공적이지 못하다.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항공 지원으로 취약점을 만들고 대규모 기계화 부대를 편성해 집중적으로 돌파하기 전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휴전이나 종전 가능성은.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내년 3월에 대선이 있다. 푸틴이 무난하게 승리하면 대선 이후에 평화 협상의 여지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서로 지지 않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서방과 러시아는 어느 시점에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중앙포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중앙포토]

장기적 관점서 한·러관계 관리해야
 우리 입장에서는 이번 반란이 앞으로 한반도 주변에 끼칠 영향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한반도와 육지를 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 와중에 북·중·러가 밀착하면서 한·미·일과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란 이후 중국과 북한의 움직임은.
 "중·러 외교차관 만남에서 러시아는 변함없는 중국의 지지와 전쟁 물자 지원을 당부했을 것이다.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지지에도 변함이 없어 보인다. 김정은 정권은 지금처럼 러시아가 요구하는 포탄을 포함한 다양한 탄약과 무기를 계속 지원할 거다. 호위사령부와 평양방어사령부의 능력을 보강하고, 보위사령부나 총정치국의 위상을 더 올려 군부에 대한 감시 및 통제를 강화할 것이다."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준 시사점이 있다면.
 "러시아의 전쟁 지휘 체제가 안정되고 작전의 효율성이 증가할 경우 우크라이나가 전쟁 목표를 연내에 달성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줄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요구가 증가할 거다. 비살상 무기에 한정된 지원 정책을 기본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살상 무기를 지원할 수밖에 없는 전략적 상황이 되더라도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제3국을 통한 우회 지원으로 가야 한다. 능력에 맞게 지원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 장기적 안목에서 한·러 관계를 관리하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윤석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교훈은.
 "전쟁은 사람이 중요하다. 전쟁은 국민 의지의 싸움이다. 국민의 전쟁 의지와 군의 전투 준비 태세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월남전에서 봤듯 좋은 무기는 그다음이다. 적이 도발할 때 몇 배 보복하고 강하게 나가면 함부로 못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 반란 사태를 정치적 시각보다는 군사·안보적 관점에서 냉정하게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