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디스플레이 업계의 실적이 심상치 않다. 한국 디스플레이의 시장점유율이 올해 10%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DSCC)은 올해 한국의 디스플레이 출하량(면적 기준) 시장점유율이 9%로 전년보다 3% 포인트(p)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020년까지만 해도 19% 수준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2021년 14%, 지난해에는 12%로 점유율이 급감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LCD 패널 사업을 접거나 출하량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 생산 점유율은 2020년 53%에서 지난해 65%까지 상승했다. DSCC는 올해 중국의 점유율이 67%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7년에는 중국의 디스플레이 출하량 기준 시장점유율이 70%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같은 해 한국의 점유율은 올해보다도 더 줄은 8% 수준까지 하락할 전망이다.
중국 점유율을 끌고 가는 디스플레이 업체는 ‘BOE’(京東方·징둥팡)다. 세계 최대의 LCD, OLED 및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중 하나다.
중국 업체라고 마냥 무시할 수 없다. BOE는 2023년 1분기 플렉시블 폴더블 OLED 시장에서 27%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삼성과의 격차를 좁혔다. BOE는 전년도 대비 81% 성장했으며 올 1분기에만 약 3천만 개의 패널을 출하했다 (스톤파트너스).
2022년 중소형 아몰레드(AMOLED) 시장에선 삼성이 4억 2900만 개 패널을 출하하며 1위 자리를 지켰지만. 그 뒤로는 BOE가 12%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2위에 올라섰다. LG 디스플레이는 11%의 점유율에 그쳤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의 중소형 OLED 시장 점유율(매출 기준)은 지난해 4분기 61.2%에서 올해 1분기 54.7%로 하락했다. 반면 BOE 점유율은 이 기간 13.9%에서 19.2%까지 오르며 2위를 차지했다.
BOE 만든 왕둥성, 대체 그는 누구인가?
중국 디스플레이의 강자, BOE를 만든 사람은 왕둥성(王東昇)이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부침을 겪으며 60여 년을 버텨낸 거인이다. 1993년, 파산 직전의 베이징진공관공장(北京電子管廠)을 인수해 지금의 BOE를 설립했다.
당시 경험이 풍부했던 왕둥성은 ‘인수 합병, 소화 흡수, 재혁신’의 3단계 전략에 따라 2002년 하이닉스의 LCD 자회사 하이디스를 인수했다. 주기적인 테스트와 반복적인 개선·확장 과정을 거쳐 박막트랜지스터(TFT) LCD 생산 라인을 10.5세대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이어 글로벌 유통 네트워크와 능력을 구축하기 위해 홍콩의 모니터 제조업체인 TPV 테크놀로지의 주식을 26% 취득하며 세력을 강화했다. LCD 생산기술과 네트워크, 공장을 확보한 뒤 대량 생산과 저가 물량 공세로 글로벌 액정표시장치(LCD) 1위로 도약했다.
2015년부터 애플에 맥북, 아이패드용 LCD 패널 납품을 시작했다. 글로벌 최대의 LCD 패널 제조사로 입지를 확고히 한 뒤 OLED 시장에도 손을 뻗는다. 이후 중국 최초로 6세대 플렉시블 OLED 양산(대량생산) 개시를 선언하면서 업계의 시선을 끌었다. 2018년에는 플렉시블 OLED 양산에도 성공했다.
현재 중국 전역에만 15곳의 공장을 두고 있으며, 올 초 베트남에 2개의 신규 공장 설립 추진 계획을 밝혔다. 그렇게 업계 거물들과 어깨를 견주며 세를 키웠던 왕둥성은 2019년, 20년 넘게 이끌어온 BOE를 내려놓게 된다.
상장, 또 상장… 왕둥성 손 닿는 곳마다 ‘잭팟’
그러나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왕둥성은 디스플레이의 신화를 다시 써 내려 가게 된다. 2019년 칩 분야의 발전 잠재력을 확인하고 베이징 에스윈(ESWIN·奕斯偉) 설립을 고안해냈다. 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이 한때 부회장으로 영입됐던 바로 그곳이다.
에스윈은 OLED 구동칩셋 등 시스템반도체를 설계·생산하는 업체로, ‘리스크 파이브(RISC-V)’를 핵심으로 하는 차세대 컴퓨팅 아키텍처 칩 및 솔루션을 제공하며 스마트 홈·스마트 파크·지능형 교통·무선에 중점을 뒀다.
에스윈은 설립 이후 무려 7차례의 자금 조달을 완료했다. 제일재경(第一財經)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에스윈은 2020년 6월 레노버 모기업인 레전드홀딩스 계열 벤처캐피털과 미국 IDG가 주도한 20억 위안(3642억 2000만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마쳤다. 지난해 12월엔 25억 위안 규모의 C라운드 자금 조달을, 올해 6월엔 30억 위안 이상의 시리즈 D 투자를 마쳤다.
베이징 에스윈은 2023년 글로벌 유니콘 기업 리스트 705위에 오르며 105억 위안(약 1조 8979억 원)의 가치 평가를 받았다.
베이징 에스원뿐만 아니다. 왕둥성에겐 대형 실리콘 제품 제조 기업도 있다. 같은 ‘에스윈’ 간판을 달고 있는 시안에스윈 재료과학기술회사(西安奕斯偉材料科技股份)다.
시안 에스윈은 반도체용 12인치 대형 실리콘 웨이퍼 제품 및 서비스 제공 업체다. 중국의 집적회로 산업의 부족한 생산능력을 보완하며 5G·신에너지차 등 산업의 대형 실리콘 웨이퍼 수요를 만족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올해부터 시안에스윈은 생산에 박차를 가해 현재 월간 실리콘 웨이퍼 생산량이 36만 개에 달한다. 이로써 반도체 실리콘 재료 기술 수준과 집적회로 산업 사슬의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시안에스윈은 40억 위안에 육박하는 시리즈C 투자를 완료하여 중국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 산업에서 최대 단일 사모 투자 자금 조달 기록을 세웠다. 지난 4월, 시안에스윈은 CITIC증권과 상장지도계약을 체결하고 IPO 절차를 밟고 있다.
이처럼 왕둥성의 두 에스윈은 벤처 캐피털 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베이징 에스윈은 4년간 6회의 투자를, 시안 에스윈은 4년간 7차례의 투자를 받으며 두 회사의 기업 가치는 모두 유니콘 급에 달한다. 그는 어떻게 세 기업을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이끌었을까.
왕둥성은 ‘창의적 기술’과 ‘제품 혁신’을 줄곧 제창해왔다. 업계는 BOE 설립 당시 그가 제안한 ‘왕의 법칙’이 지금의 BOE와 에스윈을 이끈 원동력이라 평가한다.
그는 디스플레이 산업의 ‘생존 법칙’을 제시하며 디스플레이 산업의 ‘왕의 법칙’ 개념을 제시했다. “LCD 패널 가격은 3년 주기로 절반씩 떨어지며,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 주기는 짧아질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주기(36개월)마다 성능을 2배 이상 높여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생산해 내야 한다”
한때 BOE도 2008년~2012년에 걸쳐 5년 연속 손실을 보며 만성 적자 늪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왕둥성이 제시한 생존 법칙으로 BOE는 기술 개발에 전념하며 적자 구조에서 벗어났다.
그의 생존 법칙은 비단 BOE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왕둥성의 반도체와 실리콘 분야는 글로벌 산업의 화두로, 경쟁 업체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에스윈은 대규모 자금력을 앞세워 반도체 기술 혁신과 자립에 더욱 속도를 낼 예정이다. 게다가 현재 두 에스윈은 투자 기관과 지역 산업의 신뢰도가 상당히 높은 상황. 왕둥성의 법칙은 이번에도 통할 수 있을까?
김은수 차이나랩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