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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가 구세주? 낙관주의 대신 '인간적 통제' 강조하는 이유[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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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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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진보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휴대전화와 인터넷, 인공지능(AI)‧로봇‧자율주행차에서 내 장기 속을 이 잡듯 훑어 병의 원인을 찾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까지 우리는 기적 같은 과학기술 진보의 시대에 살고 있다. 테크놀로지가 암 같은 질병, 지구온난화 같은 전 지구적 문제, 심지어 빈곤까지 해결해 더 나은 세상을 열어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들 정도다.

하지만 두 지은이의 생각은 다르다. 한 사람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로 지난 25년간 빈곤·번영의 역사적 기원과 신기술이 경제성장‧고용‧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또 한 사람은 국제통화기금(IMF) 수석경제학자 출신으로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다. 이들은 테크놀로지-낙관주의를 경계하면서 빛과 그림자를 함께 살펴야 인간 중심의 세계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영국 유스턴 기차역에서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 '아르키메데스'호. 1880년대에 제작됐다. 철도 회사들은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했고 영국 산업의 팽창을 이끌었다.' [사진 생각의힘]

영국 유스턴 기차역에서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 '아르키메데스'호. 1880년대에 제작됐다. 철도 회사들은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했고 영국 산업의 팽창을 이끌었다.' [사진 생각의힘]

기술의 고속 발전과 확산이 인간의 이성적인 통제를 제대로 받지 않으면, 진보와 풍요뿐 아니라 병폐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기술이 인간에 맞서는 이야기는 1818년 출간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같은 과학 소설의 오랜 단골. 오늘날엔 환경오염과 생태파괴, 그리고 핵전쟁의 위협이 추가됐다. 인간소외도 문제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이미 1930년대에 새로운 생산방식이 인간 노동력의 필요성을 줄여 ‘기술적 실업’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1869년 완공된 수에즈운하와 1914년 개통한 파나마운하는 인간 상상력과 의지, 그리고 테크놀로지 혁신의 대표적 업적이지만 그늘도 짙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글로벌 물류시대의 상당 부분은 이 운하들에 빚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파나마운하는 건설 과정에서 2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풍토병인 황열병으로 목숨을 잃은 ‘산업재해’의 현장이다. 유럽과 미국 세력이 ‘동양’에 더 쉽게 진출해 자본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제국주의적 욕망의 발현장이기도 했다.

1851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 강철과 유리로 건설한 거대한 수정궁에서 최초의 세계박람회(엑스포)가 열렸다. 철도‧선박 등 인간의 이동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이동 기계, 그리고 새로운 산업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생산 기계들이 줄지어 손님을 맞았다. 기계 문명과 산업혁명으로 인간이 자연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게 됐음을 보여주는 인류사적 전시장이다.

헨리 포드는 “모터는 기계를 작업 순서에 따라 배열할 수 있게 했고 그것만으로도 산업의 효율성을 족히 두 배는 높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1919년 포드의 루지 공장. 공장 전체가 전기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 생각의힘]

헨리 포드는 “모터는 기계를 작업 순서에 따라 배열할 수 있게 했고 그것만으로도 산업의 효율성을 족히 두 배는 높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1919년 포드의 루지 공장. 공장 전체가 전기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 생각의힘]

하지만 인간은 도시화‧오염 등 기술로 인한 부작용은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산업혁명은 아동 노동 증가, 생필품 가격 상승, 기계에 의한 숙련공 퇴출, 스모그 발생, 대도시 사망률 증가 등 피해도 낳았다. 이런 희생 속에서도 노동자와 농민의 소득은 혁신적으로 증가하진 못했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자신들의 생각을 다듬은 도시가 런던인 이유일 것이다.

19세기 일자리를 찾아 공장과 도시에 몰린 사람들은 공동 이익을 위해 함께 손잡고 경제성장의 이득을 더욱 공평하게 나누도록 요구하는 시대도 열었다. 선거권 확대, 노동조합 강화, 노동자 권리와 보호의 법제화 등으로 사회혁신이 이뤄졌다. 기술도 노동자의 업무를 대신하거나 감시하는 쪽으로만 발달한 게 아니라, 노동자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재설정됐다. 지은이들은 이처럼 인간이 기술을 통제해 변화하는 세상을 인간적으로 재정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미자동차노조 조합원들이 1937년 미시간주 플린트의 제너럴 모터스 공장에서 생산을 멈추고 편안히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 [사진 생각의힘]

전미자동차노조 조합원들이 1937년 미시간주 플린트의 제너럴 모터스 공장에서 생산을 멈추고 편안히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 [사진 생각의힘]

지은이들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도 이득만큼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인간적 통제를 강조한다. 미국에선 사무자동화 등으로 국민소득 중 저학력 노동자의 몫으로 돌아가는 액수가 급감했고, 1980년대 이후 임금 불평등이 가속화했다. 디지털화는 세계화, 노조 약화와 함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

이는 미국이 자랑스러워했던 ‘아메리칸드림’을 짓눌렀다는 것이 지은이들의 지적이다. 평범한 사람도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얼마든 경제적으로 윤택해질 수 있고, 자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은 ICT 혁명 속에서 암울한 전망으로 바뀌어갔다는 것이다. 1940년대에 태어난 사람은 90%가 부모보다 소득이 많았지만 1984년 출생자에서 이 비율은 50%에 불과했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8%는 지금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부모세대보다 재정 여건이 더 나쁠 것으로 생각한다.

지은이들은 테크놀로지 혁신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을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늘어난 생산성·이윤이 임금 상승 등으로 노동자들에게 공유되는 것으로 본다. 전후 미국에서 ‘공유된 번영’이 가능했던 이유를 여기서 찾는다. 문제는 테크놀로지가 사회 변화를 몰고 오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이 두 기둥이 무너진 것. 저자들은 이를 불평등 사회의 근원 중 하나로 지적한다. AI 시대가 오면 이러한 테크놀로지와 인간 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온라인 검열과 디지털 감시 등이 판치는 중국의 경우처럼 테크놀로지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도구로 쓰이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원제 Power and Pro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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