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프리고진이 안녹산? 러시아 사태를 중국이 주목할 이유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텔레그램 영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들은 애국자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자신을 반역자로 규정한 것을 정면 반박했다. 콩코드그룹 제공 영상 캡처. AFP=연합뉴스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텔레그램 영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들은 애국자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자신을 반역자로 규정한 것을 정면 반박했다. 콩코드그룹 제공 영상 캡처. AFP=연합뉴스

러시아 연방공화국이 역사적 사건을 맞았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반정부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이 일으킨 반란은 일단 하루 만에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23년간 유지해온 푸틴 체제가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는 말들이 무성하게 번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여파는 러시아와 가장 가깝고 강력한 우방인 중국에도 미치고 있다. 경제 매체인 차이신왕(財新網)은 프리고진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최대 군사적 변수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러시아 반란 사태를 중국의 역사적 사건들과 연결 지었다.

웨이보 등 SNS엔 “안녹산(安祿山)의 반란 같은 느낌이 든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양국충(楊國忠·양귀비의 사촌 오빠), 푸틴은 당 현종이고 대본도 거의 똑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네티즌들의 글이 올라왔다. 이 사건을 중국 당나라 때 현종의 신임을 받던 무장 안녹산이 일으킨 반란에 빗댄 것이다.

당나라의 장군 안녹산(安祿山). 755년 안녹산의 난을 일으켰다. 사진 바이두바이커

당나라의 장군 안녹산(安祿山). 755년 안녹산의 난을 일으켰다. 사진 바이두바이커

조광윤(趙匡胤)이 송나라를 건국한 일화인 ‘진교병변(陳橋兵變)’과 명나라 말기 무장 오삼계(吳三桂)가 산해관을 열어 청나라 군을 끌어들인 사건도 언급됐다. 조광윤은 부하들이 자신에게 술을 먹이고 황포(黃布)를 입혀 강제로 황제로 추대하자 못이기는 척 이를 받아들였다.

1989년 천안문 시위 주동자 중 한명인 왕단(王丹)도 트위터로 이번 일을 언급했다. “시진핑(習近平)이 (대만 통일) 전쟁을 일으키면 러시아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중국에서도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했고, “절대적으로 가능하다”는 답글이 달렸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이번 사태는 정치와 군의 관계를 새삼 돌이키게 만들었다. 민주적 정치 시스템이 취약할수록 군이 정치에 영향을 끼칠 개연성이 커진다. 한국을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 국가들 상당수에서 군부 쿠데타로 군인들이 권력을 잡았다. 마오쩌둥 사후 실권자가 된 덩샤오핑(鄧小平)은 공산당 총서기나 국가주석을 맡지 않았지만 중앙군사위 주석직만 보유하면서 권력을 유지했다.

시진핑도 군에 의지해 권력을 굳히고 반대 세력을 견제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대로 중국도 공식적으론 공산당이 군을 지배한다. 하지만 실제 권력 관계도 그러한지는 물음표다. 역대 공산당 지도자들은 선심 공세로 군심, 특히 장성들의 마음을 샀다. 진급은 가장 큰 당근이다. 장쩌민(江澤民)은 64명, 후진타오(胡錦濤)는 60명, 시진핑은 69명을 상장(한국의 대장에 해당)으로 진급시켰고, 이를 통해 각각 10년 동안 군권을 장악했다.

군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는 방법도 활용했다. 지난해 10월 열린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선 군 수뇌부가 대대적으로 물갈이됐다. 시진핑은 군권 안정을 위해 칠상팔하(七上八下·68세 이상이 되면 공직에서 은퇴한다는 관례)를 어기고 올해 73세인 최측근 장유샤(張又俠)를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유임시켰다. 또 다른 군사위 부주석 허웨이둥(何衛東)은 시진핑이 푸젠(福建)성에 근무할 당시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시진핑의 복심인 중사오쥔(鍾紹軍) 중앙군사위 판공청 주임은 군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다.

2012년 집권 이후 시진핑의 군 장악 시도와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다. 지난해 9월 북부전구(戰區) 사령관 왕창(王強) 한 사람을 위한 상장 진급식이 치러졌다. 전임 북부전구 사령관 리차오밍(李橋銘)이 노선 투쟁에 휘말렸고 반란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왕창은 올해 초 육군사령관에 부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진핑은 집권 1기 5년 동안 반부패를 내세워 200명에 가까운 고위 장성을 척결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민해방군에서 현재 실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전 정권인 장쩌민 시기에 발탁한 사람들이 주류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2017년 시진핑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이후론 군내 반부패 척결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고 있다.

2023년 2월, 중국 베이징.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셔터스톡

2023년 2월, 중국 베이징.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셔터스톡

2021년 말 상장으로 퇴역한 태자당 출신 류야저우(劉亞洲)가 체포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올해 들어 홍콩 언론들이 이 사건을 보도했지만 지금까지 공식 발표는 없다. 중화권 매체들은 군심 동요를 피하기 위해 비공개로 은밀히 사건을 처리한 것으로 해석한다. 부패한 장성들을 척결하고는 있지만 미국 등 서방 진영과의 대치, 대만 통일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군심을 안정시키려는 방향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인민해방군은 최근 ‘군 지도간부’의 사회적 교류 행위에 관한 문서를 발행했다. 간부들에게 “사교권, 생활권, 친구권을 지속적으로 정화하라”는 내용이었다. 과거에는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내용인데 군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프리고진 사태는 군부에 대한 시진핑 정권의 경각심을 일깨울 계기가 될 수 있다.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은 국민당, 일본과의 전투를 치른 야전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군부가 든든한 우군이었다. 하지만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진핑은 최고지도자가 되기 전까지 군 경력이 없었다. 3연임까지 성공시킨 시진핑의 권력체제가 얼마나 단단한지 곱씹어볼 만한 사건이 터진 셈이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