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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1세대 '꾼' 소탕전…檢, 441억 배임 '연예계 대부' 노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빗썸 관계사에 대한 수백억원대 배임 혐의를 받는 원영식(62) 초록뱀미디어 회장이 29일 구속됐다. 서울남부지법 김지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증거인멸과 도망할 우려가 있다”며 원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원 회장은 지난 2월 구속기소된 강종현(41)씨와 공모해 자신이 투자한 코스닥 상장사 비덴트·버킷스튜디오에 약 441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 채희만)가 지난 27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자본시장법상 사기적부정거래 등의 혐의로 청구한 원 회장의 구속영장에도 적시된 것으로 파악됐다. 비덴트와 버킷스튜디오는 강씨가 실소유주란 의심을 받는 암호화폐거래소 빗썸의 관계사다. 비덴트는 빗썸코리아의 단일 최대주주이고, 버킷스튜디오는 비덴트의 최대주주인 인바이오젠을 지배하고 있다.

빗썸 관계사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원영식 초록뱀그룹 회장은 29일 오전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혐의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했다. 연합뉴스

빗썸 관계사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원영식 초록뱀그룹 회장은 29일 오전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혐의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했다. 연합뉴스

검찰은 원 회장이 강씨와 공모해 비덴트·버킷스튜디오가 발행한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콜옵션(매수선택권) 권리 대부분을 원 회장이 소유한 초록뱀그룹 관계사와 조합에 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초록뱀 측에 무상으로 넘겨 부당이득을 취하게 한 동시에, 그만큼 비덴트·버킷스튜디오 등에는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검찰은 빗썸 관계사가 발행한 CB·BW 등에 1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이익을 거두는 과정에서 벌어진 주가조작 등도 원 회장이 배후에서 가담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확보한 강씨의 공소장에는 원 회장과 초록뱀그룹 관련사의 이름이 다수 언급돼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강씨 등은 지난해 3·5월 두 차례에 걸쳐 아이즈비전·빗썸코리아·비덴트가 보유하던 버킷스튜디오의 9·10회차 CB 일부의 콜옵션 행사자를 초록뱀그룹 관계사인 에즈모나투자조합·초록뱀이커머스신기술조합·밸류애드파트너스로 지정했다. 이후 당시 시가보다 약 900~2800원 낮은 가격으로 전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콜옵션 권리를 무상으로 부여해 초록뱀 관계사들에 각각 약 79억원(9회차), 98억원(10회차)의 이득을 보게끔 했다.

비덴트 관련 강씨의 사기적부정거래 혐의 공소사실엔 원 회장의 이름이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원 회장이 지난해 7~8월 에즈모나투자조합으로 받은 비덴트의 15회차 CB와 16회차 BW에 대해 각각 전환권과 신주인수권을 행사한 뒤 해당 주식을 모두 팔아 약 66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도 비덴트가 초록뱀 측에 무상 콜옵션 권리를 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빗썸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강종현씨는 최근 원영식 초록뱀미디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에 협조적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지난 2월 1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강씨의 모습. 뉴스1

빗썸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강종현씨는 최근 원영식 초록뱀미디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에 협조적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지난 2월 1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강씨의 모습. 뉴스1

막대한 현금 조달력으로 코스닥 시장의 ‘큰 손’으로 통하는 원 회장은 1세대 기업사냥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20여년 전 코스닥 상장사에 대한 무자본 인수·합병(M&A) 과정의 사채업자로 출발, 이후 상장사가 발행하는 CB·BW에 투자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를 축적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JYP나 YG 등 연예기획사에 투자해 큰 돈을 번 뒤 2015년 드라마 제작업체인 초록뱀미디어의 경영권을 인수하며 연예계의 대부로도 거듭났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그가 무자본 M&A 과정에서 허위·과장 공시 등 부정한 방법으로 주가를 띄운 뒤 CB 등으로 확보한 지분을 팔아 거액의 차익을 누려온 것으로 의심해 왔다. 이 때문에 2017년 4월 코스닥 상장사 홈캐스트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기소됐지만, 2020년 4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업계에는 이후 무자본 M&A 시장의 과열이 그의 무죄 확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가 폐지한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되살리는 등 수사 역량을 재정비한 남부지검에선 최근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배상윤 KH그룹 회장, 김우동 조광ILI 회장, 이준민 카나리아바이오엠 고문 등 원 회장과 같은 1세대 기업사냥꾼에 대한 소탕전이 한창이다. 검찰은 이들이 주로 에너지·바이오 관련 유망 상장사를 인수한 뒤 인위적으로 주가를 띄워 지분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차익을 실현한 정황을 포착해 수사 중이다.

금융범죄중점청인 서울남부지검은 최근 1세대 기업사냥꾼으로 꼽히는 주가조작 세력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9일 서울 신정동 서울남부지검 본관 로비의 모습. 연합뉴스

금융범죄중점청인 서울남부지검은 최근 1세대 기업사냥꾼으로 꼽히는 주가조작 세력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9일 서울 신정동 서울남부지검 본관 로비의 모습. 연합뉴스

김우동 회장의 경우 지난 4월 코로나 테마주와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사기적부정거래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준민 고문도 지난 19일 에디슨모터스 주가조작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 관계자는 “합수단이 폐지된 기간 금융당국 등으로부터 넘어온 관련 첩보나 진정 등이 상당히 누적돼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근 수사 상황에 밝은 한 법조인은 “강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것도 애당초 원 회장을 겨냥한 것이란 게 정설”이라며 “검찰이 지금은 강씨와 공모관계에 있는 범죄사실로만 영장 범죄사실을 구성했지만, 앞으로 강씨와 무관한 원 회장의 시장교란 행위 의혹으로 수사망을 넓힐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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