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교육부 '꽃보직' 막았더니…타 부처와 짜고 바꿔챙겼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앞줄 오른쪽 세번째)이 지난 3월 충남대에서 열린 전국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앞줄 오른쪽 세번째)이 지난 3월 충남대에서 열린 전국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교육부의 대학 규제를 상징하는 ‘국립대 사무국장’ 제도가 부처 편의에 따른 ‘자리 짬짜미’로 변질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교육부가 독점해 온 27개 국립대 사무국장 자리를 외부에 개방했지만, 절반가량은 부처 간 인사교류 방식으로 다른 부처 공무원이 메우는 데 그쳤다. 대학 개혁이 교육부 관료사회의 ‘보신주의’에 가로막힌 사례다.

중앙일보가 27일 국립대 27곳의 사무국장 인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13곳이 ‘부처 간 인사교류’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지난 1월엔 방통대 사무국장에 신모 국무조정실 부이사관이 임용됐다. 대신 국조실 빈자리로 교육부 정모 부이사관이 이동했다. 4월엔 공주대 사무국장에 국민권익위원회 김모 국장을 임명했다. 권익위로는 교육부 이모 국장이 옮겼다. 5월엔 부산대 사무국장에 천모 국방부 국장을 발령했고, 국방부 산하 외청인 병무청으로 김모 교육부 국장이 인사 교류했다.

프로스포츠에서나 보던 '삼각 트레이드'처럼 여러 부처가 합의해 사무국장 인사를 돌려막기도 했다. 지난 3월 해양대 사무국장에 이모 해양수산부 부이사관을 임명하고, 해수부 빈자리를 김모 전남교육청 부이사관이 메웠다. 그리고 전남교육청엔 양모 교육부 부이사관이 이동하는 식이다. 1대1 인사교류가 여의치 않자 3개 부처를 동원한 ‘삼각 트레이드’ 인사를 한 셈이다. 나머지는 공모직 10곳, 개방직 2곳, 미정 2곳이었다. 순천대·군산대를 빼고는 모두 공석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2월 인재양성전략회의를 주재한 금오공과대도 10개월째 사무국장 자리를 비워뒀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국립대 사무국장은 대학의 예산 편성·운영과 교직원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전 정부까지 교육부 출신 고위공무원(2급) 또는 부이사관(3급)이 독식해왔다. 한 국립대 사무국장 출신 교육부 관계자는 “중요한 자리지만 상대적으로 본부보다 업무부담이 적어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한 뒤 상징적으로 거치는 ‘꽃보직’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현 정부는 대학의 자율성·독립성을 중시하는 기조다. 교육부가 파견한 사무국장을 통해 대학을 입맛대로 관리·통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보고 개선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인수위원회 시절 사무국장 인사개편안을 보고받았다. 같은 해 9월 교육부가 발표한 ‘국립대 사무국장 인사개편 추진안’은 교육부 고위공무원을 사무국장으로 파견하지 않는 대신 국립대 총장이 원하는 인재를 임용할 수 있도록 ▶민간에 완전 개방(개방직) ▶공무원 중에서 공개모집(공모직) ▶부처 간 인사교류로 대체하는 내용이다.

교육부는 개편안 발표 이후 기존 사무국장을 두 차례에 걸쳐 대기 발령했다. 업무 공백, 인사 적체 우려 등을 무릅쓰고 한꺼번에 고위공무원 10여명을 대기 발령한 건 이례적인 조치다. 당시 교육부는 “개혁을 확실히 하고, 좀 더 빠르게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무국장을 대기 발령했다”고 설명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해 10월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사무국장 개편안에 대해 “(대통령실과) 협의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교육부에 강력한 경고 신호를 보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민간 개방이나 공모보다 인사적체 해소를 위한 부처 간 인사교류를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12곳이 10개월째 공석이다. 부처 간 인사교류의 문제는 대학 행정에 전문성을 가진 인사를 선발하는 대신 부처 간 편의에 따라 인사가 물밑에서 짬짜미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현재는 교육부가 인사교류를 원하는 부처에 “OO 대학 사무국장으로 보내줄 테니 OO 국장을 받아달라”고 요청한 뒤 부처 간 의견이 일치할 경우 발령내는 식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고위공무원을 사무국장을 받아야 하는 대학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한 국립대 총장은 “전문성 있는 교육부 관료가 아니라면 차라리 예산을 따낼 수 있는 기획재정부나 산학협력에 이점이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이 왔으면 하는데 부처끼리 협의해 사무국장을 내려보내는 식”이라며 “지방대 위기, 학생 수 감소 등 과제가 쌓여있는데 공석인 사무국장 인사는 안중에 없다”고 우려했다.

개편 취지와 달리 사무국장을 민간에 개방한 경우가 강원대·강릉원주대 2곳뿐일 정도로 드물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이경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경력과 무관한데도 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이유로 교류하는 식의 인사 조처는 민간이라면 상상하기 어렵다”며 “교육부 관료를 사무국장에서 배제한 건 대학의 자율성·독립성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취지인데 부처 이해관계에 밀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가장 적합한 인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교육부가 손을 떼고 국립대가 사무국장 임용 방식을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사적체가 심한 교육부는 원래 있던 자리마저 사라져 난처한 상황이다. 교육부공무원노조는 사무국장 인사제도 개편안 철회를 주장해왔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부처 간 인사교류를 하더라도 해수부 출신을 해양대, 국토교통부 출신을 교통대, 문화체육관광부 출신을 한국체육대 사무국장으로 발령하는 등 최대한 전문성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다른 부처 관료가 사무국장으로 가면 새로운 시각에서 업무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공석을 메울 수 있도록 최대한 신속하게 공모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