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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침대는 과학입니다” 스프링 손수 꼬아가며 독자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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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63년 에이스침대를 설립해 한국 침대 산업의 개척자로 불린 안유수 회장. [사진 에이스침대]

1963년 에이스침대를 설립해 한국 침대 산업의 개척자로 불린 안유수 회장. [사진 에이스침대]

한국 침대 산업의 개척자로 불리는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이 별세했다. 93세.

에이스침대는 27일 안 회장이 전날 오후 늦게 별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30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한국전쟁 중인 1951년 1·4 후퇴 때 가족과 헤어져 남쪽으로 내려왔다.

부산 미군 부대에서 잡역부를 하다가 침대를 처음 접했다. 이후 침대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63년, ‘세상에 없던 시장을 개척해 보자’는 생각으로 29세 나이에 서울 금호동에 에이스침대공업사를 설립했다.

에이스침대는 숱한 시행착오 끝에 탄생했다. 처음엔 스프링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스프링 모양으로 깎고, 손에 물집이 생길 때까지 강선을 감아 보기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1년여 만에 스프링을 찍어내는 기기를 개발했다. 제품 테스트 중 매트리스에 100㎏의 힘을 8만 번 가하는 ‘내용성 시험’ 일화도 유명하다. 처음엔 몸무게 60㎏가량 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등에 업고 100㎏ 정도 무게를 만들어 측정하기도 했다.

창업 후 10여 년 뒤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 때문에 공장이 모두 불에 탄 적도 있다. 이때 고인은 ‘기술은 불에 타지도 않고, 물에 떠내려갈 일도 없는 무형의 재산’이라는 것을 뼈에 새겼다고 한다. 1992년 ‘에이스침대 침대공학연구소’를 설립하고 한국인 체형에 맞는 매트리스 등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이어갔다. 이 시기 에이스침대의 유명한 광고 캐치프레이즈인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도 선보였다.

고인은 생전에 “‘침대는 과학’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았던 것은 내 손으로 직접 강선을 꼬아가며 개발한 침대가 곧 우리나라 침대 산업의 역사가 됐기 때문”이라며 “지금의 에이스침대를 만든 건 최초와 최고를 향한 굳은 신념과 도전 정신”이라고 말했다.

에이스침대 측은 “국내 최초 매트리스 스프링 제조 설비, 업계 최초 KS 마크 획득, 300개 특허 획득 등은 고인의 경영 철학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론 꾸준히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고인은 1999년부터 25년 동안 설과 추석 명절마다 지역사회에 백미를 기부했다.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해 15억원을 내놓기도 했다. 금탑·철탑산업훈장, 이탈리아 국가 훈장과 기사 작위 등을 받았다.

유족은 안성호 에이스침대 대표, 안정호 시몬스침대 대표 등 2남 1녀다. 고인은 지난달 딸인 명숙씨에게 에이스침대 지분 5%를 증여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30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용인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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